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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진보(Jinbo)
Album: KRNB
Released: 2012-08-29
Rating: Not Rated
Reviewer: 오이
음악을 포함해 창작물이라는 게 어떤 것이든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여 타인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침범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뚜렷한 목적 없이 자기만족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그와는 다르게 대의적인 목적이나 공적인 관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 줌의 좁은 창작자의 심상에서 출발한 것이 점점 더 큰 영역으로 확대될 때 더욱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진보의 [KRNB]는 창작자로서 대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 혹은 만족에서 출발한 앨범에 가깝다.2010년 [Afterwork]로 국내 알앤비 씬의 신세대를 열었던 진보는 첫 등장부터가 단비와도 같았다. 발라드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모호한 진행과 진부한 감성이 즐비하던 국내 알앤비 음악 틈새 속에서 본연의 세련된 어반 사운드로 무장한 그의 앨범은 장르적인 면에서 순수하게 근접했던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일반 대중이 착각하고 있던 ‘한국의 감성이 깃든 알앤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도 같았다.
이번에 진보가 발표한 디지털 앨범 [KRNB]는 비록 정식으로 발표한 게 아닌, 무료 공개 앨범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수준 높은 스타일과 사운드를 담아낸 ‘케이팝(K-POP)’ 리메이크 앨범이다. 이미 이전에 먼저 공개되었던 “Damn”과 “Love Game”으로 차기작의 형식을 암시했던 [KRNB]는 기존 리메이크 앨범들과는 사뭇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원곡이 가진 원초적인 느낌은 그대로 남기되, 그 뒤를 잇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선택된 장르에 맞게 편곡된 사운드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신곡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창조적인 재해석이라 할만하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곡들 위주로 선별된 이번 앨범은 “Game”이나 “아파” 같은 최근 발표된 싱글부터 “빨간 우산”, “오래된 친구”, “알고 있었어” 등 90년대 히트했던 곡들까지 골고루 포진되어 다양한 재미를 주고 있는데, 조금 특별한 것은 이들의 곡을 위해 선택한 것이 클래식이란 점이다. 요즘 한참 뜨고 있는 90년대뿐만 아니라 7,80년대 유행했던 장르를 데려와 패치워크를 엮듯 골고루 조합하여, 장르의 고유성을 유지한 현대적 알앤비 사운드로 이뤄냈다. 물론, 이런 향수를 자극하는 사운드가 기존의 리메이크 앨범이 갖는 특징과는 확실히 차별화되긴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진보 개인의 심상에서 출발하여 타인에게 확대된 개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좀 더 사적으로 접근해 들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거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해 그와 듣는 음악적 취향이 맞는다면, 더없이 좋은 앨범이 된다는 말이다.
이미 발매 전부터 앨범의 기대를 증폭시켰던 “Damn”은 소녀시대의 히트곡 “Gee”를 커버한 곡으로 원곡이 가벼운 소녀들의 수다였다면, “Damn”은 그 수다의 성인버전이다. 섹스장면을 떼어 넣은 곡 사이사이에 소녀시대의 목소리를 삽입하여, 듣는 이들에게 엉큼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이미 오래전 유행했던 장르가 되어 버린 네오 소울을 전면에 깐 이 곡은, 세련된 진행과 가사를 살리는 가벼운 터치의 사운드가 아이돌 히트곡을 국내에선 보기 드문 수준의 소울 트랙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앨범에서 가장 최근 곡인 “Love Game”은 보아의 “Game”을 원곡으로 하고 있는데, 원곡이 현재 트랜드를 위시한 일레트로닉한 사운드라면, 진보의 곡은 기존의 방식을 다른 의미로 뒤집은 클래식한 펑크사운드로 갈아치웠다. 팔러먼트(Parliament)나 부치 콜린스(Bootsy Collins)의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펑크 리듬은, 원곡이 가지고 있는 차갑고 금속적인 질감을 올드패션하고 익살스럽게 꾸며주었다. 마치 원래 있던 곡처럼 진보의 오리지널리티가 산 이 곡은 이번 앨범에서 주목하여 듣게 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실비아 스트리플린(Sylvia Striplin)의 “Give Me Your Love”를 바탕으로 가벼운 디스코 펑키 리듬과 결합한 듀스의 “알고 있었어”는 그루브한 디스코 리듬과 어울리게 의미를 바꾸어, 댄서블한 트랙으로 탄생되었다. 진보의 빈티지한 목소리의 변형과 보컬 방식이 원곡의 느낌을 거의 잊게 할 정도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이런 수준급 리메이크는 특히, “아름다운 그녀”에서 빛을 발한다. 사실 알앤비란 장르가 바다를 건너온 탓에, 외국의 것을 국내의 정서에 맞게 변형시키다 보니 실질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근본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건모의 “빨간 우산”을 원곡으로 한 이 곡은 그 근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국내 정서를 품는 좋은 예가 되어준다. 비록, 사운드가 90년대에 맞춰있고, 원곡이 존재한다는 점이 다소 의미를 퇴색하게 하지만, 어쨌든 국내 정서를 바탕으로 한 알앤비를 맛볼 수 있는 간접경험이 되어줄 듯하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곡인 “Best Friend”는 빛과 소금의 “오래된 친구”를 각색한 곡으로 멜로디의 순서를 그대로 쫓아가기보다는 원곡에서 얻은 영감을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빌어 표현하듯, 사운드에 집중해 있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멜로디의 뻔한 형식이 아닌, 좀 더 리스너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행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보의 [KRNB]는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리메이크 앨범이다. 멜로디는 두고 사운드만을 갈아 끼우는 식이 아닌, 진보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넣어서 원곡을 뒤집어 놓는 것에 더 주력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이번 작업이 씬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었는지, 농담처럼 던진 가벼운 작업이었는지를 따져보는 건 별로 의미 없다. 앨범 속에 녹아있는 진보의 ‘Korean Blues’는 새로운 국내 알앤비 세대가 열렸음을 알려주는데 다시 한 번 일조했다는 게 중요하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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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 참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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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앨범이 무료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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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뽀뽀라도 해주고싶은 심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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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무료라는게 더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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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게 들었습니다 bb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