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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에픽 하이(Epik High)
Album: 99
Released: 2012-10-19
Rating:
Reviewer: Quillpen
정상에서 나락을 오갔던 드라마를 음악적으로 멋지게 승화시켰던 타블로의 솔로 앨범은 힙합 뮤지션이 거대 메이저 레이블과 만나 내놓은 가요 역사 속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결과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성과는 어느샌가 매너리즘에 봉착한 듯하여 기대감이 줄어들던 에픽 하이(Epik High)의 앨범에 대한 기대치까지 상승시켰다.일단 [열꽃]은 타블로가 앨범의 전반적인 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YG가 그 뒤를 받쳐주는 형식이었을 정도로 YG의 색깔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 결과가 성공적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프로덕션 면에서 YG 특유의 사운드가 좀 더 가미되었어도 흥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픽 하이의 앨범 역시 YG에서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번엔 좀 더 적극적인 결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 이번 앨범에서는 디.피(Dee. P), 초이스37(Choice37), 최필강 등, (비록, 테디가 빠졌지만) YG 측의 주축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타블로와 합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와 같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앨범은 당황스럽다. 호불호를 떠나, 우울함과 희망을 동시에 노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멜랑꼴리함으로 귀결되는 에픽 하이 특유의 무드와 가사적 쾌감이 살아있지도 않고, 다른 장르와 크로스오버를 하든, 미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를 하든, 세계적 수준의 스타일과 사운드를 구현하던 YG의 힘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동안 에픽 하이 앨범들 중 가장 단조로운) 가사 속 어휘와 문장들은 힘없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아마도 그동안 에픽 하이 앨범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크로스오버되어 탄생한 음악들은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린 데이(Green Day)의 [Dookie]에서 영감을 얻은 컨셉트 앨범’이라는 설명은 앨범을 듣고 몰려드는 난감함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보컬의 비중도 랩이 채우지 못하는 감흥의 빈공간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어서 그 시도의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몇 발자국은 후퇴한 스타일로 록과 어프로치를 시도한 타이틀곡 “UP”을 비롯하여 타블로와 관련된 기존 드라마를 이어가면서도 전혀 반대의 분위기의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한 시도는 돋보이나 역시 다소 단편적인 록과 어프로치 때문에 빛을 바랜 “Don’t Hate Me”,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선공개 곡으로서 역할을 하기엔 너무나도 기존 스타일의 답습으로 식상함을 안긴 “춥다”, 소극적인 덥스텦의 구현이 오히려 곡의 감흥을 허물어트린 “Kill This Love” 등등, 본작은 ‘YG와 결합이 낳은 결과물치고는 아쉽다.’의 수준이 아니라 에픽 하이로서, 혹은 YG에서 나온 앨범으로서, 어느 한 쪽 측면에서만 따지더라도 분명 당황스러운 작품이다.
이제 곧 에픽 하이는 데뷔 10주년이 된다.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서 유명 베테랑 뮤지션들이 리스너의 기대에 어긋나는 앨범을 커리어에 한두 개 정도 보유하고 있는 건 흔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의 삐걱거림에도 그들의 다음 작품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여전하다. 분명 이번이 정상의 뮤지션과 레이블이 만나 주조해낼 수 있는 결과물의 제대로 된 순도는 아닐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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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엔 너무너무너무너무 아쉬운 앨범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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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 비추 0
저도 처음엔 당황하긴 했으나 조금 마음을 열고 가볍게 즐겨듣고있습니다
다음번엔 더 죽이는 음악과 앨범으로 돌아올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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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트헤이트미나 킬디스러브 같은 트랙들 조금만 손봤으면 좋았을텐데...
몇몇 트랙들은 그냥 스킵스킵스킵
뭐 그래도 항상 평균이상은 뽑아주던 에픽하이였으니 이런 앨범 하나 정도는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