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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수다쟁이
Album: 북가좌동 349-17
Released: 2015-02-16
Rating:Rating:
Reviewer: 남성훈
'80년대 미 올드 스쿨 힙합에 영향받은 작법과 랩을 선보였던 그룹 수퍼랩핀 피제이(Superrappin' PJ)를 통해 인상적으로 등장한 수다쟁이는 결코 풍족해 보이지 않는 현실 안에서 반대로 현실과 한참은 동떨어진 기운을 전달하며 순수함과 흥겨움을 자아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데뷔 8년만에 여러 팀 활동을 거친 뒤 내놓은 솔로 앨범의 타이틀은 현실의 특정한 지점을 명시하는 [북가좌동 349-17]이다. 따라서 이 앨범의 적극적인 감상을 위해선 반드시 수퍼랩핀 피제이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가좌동 349-17]이 바로 수다쟁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떠안은 시간의 무게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완전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전부를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현실에 치여왔지만, 뒤섞이지도 벗어나지도 못한 나이 든 수퍼랩핀 피제이의 그 수다쟁이와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상의 깊이와 집중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인트로격인 "349-17"에 이어 "구원", "건배", "갈증" 구간은 랩퍼로서 자조 섞인 넋두리로 시작하여 조금씩 불만을 토로해가며, 마치 취기가 올라오듯 흥분의 상승을 이끄는 흡입력 강한 전반부다. 연이어 힙합 음악을 만나 힙합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동경", "수은주", "유랑가" 구간에서 서글픔이 깔린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그런 전반부를 거쳐왔기에 가능한 감상이다. 더불어 본격적으로 장르 음악인이자 예술가로서 고집을 드러내는 "Paradox / Irony", "덫" 구간까지 구축되는 구성미는 착실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런 단계별 구성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게 해주는 것은 각 구간이 담고 있는 정서를 설득력 있게 그려 낸 수다쟁이의 랩이다. 곡마다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문학적인 접근과 세밀한 표현력은 이름에 걸맞게 많은 양의 가사를 담아 내는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마주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차분하게 풀어내는 톤 역시 이를 돕는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이러한 스타일이 때때로 결정적인 약점을 만들기도 한다. 몇몇 부분에서 너무 많은 단어를 담으려다가 성급히 플로우를 끊어치며 리듬을 잃는 바람에 감상의 흐름마저 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수다쟁이 특유의 기술적인 기교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있다. 랩핑 자체가 자아내는 쾌감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프로덕션과 랩 모든 면에서 [북가좌동 349-17]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후반부를 장식하는 타이틀 곡 “북가좌동”과 “뱃놀이”다. 앞의 아홉 트랙이 결국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면, 이 두 곡은 꽤 명확하고 통쾌한 결론이다. “북가좌동”은 마치 수퍼랩핀 피제이의 수다쟁이와 다시 만난듯한 흐뭇함을 끄집어내는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현실의 깊이를 껴안은 성숙한 시선은 “북가좌동”을 여러 면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곡으로 만들었다. ‘손에 든 총은 없어 이곳은 빈민가도 아니지 차별은 없어’ 후에 ‘소리 없는 총성’과 ‘남보다 못한 대우 받거나 돈 안 되는 한심한 자’와 같은 가사가 한 곡 안에서 대응할 때 풍기는 기운은 북가좌동이라는 지역의 정서와 엮여 대단한 힘을 보여준다. 고민에서 시작하여 분노에 이르는 과정으로 현실을 껴안고는 결국,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처럼 들리는 “뱃놀이” 역시 앨범의 손꼽히는 트랙이자, 멋진 마무리다.
많은 공식 작업물과 경력을 지닌 랩퍼의 첫 솔로 앨범이 자신의 길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모험에 가깝지만, 감정선의 구분이 확실한 구성미와 개별 곡의 완성도는 [북가좌동 946-17]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신예 디프라이(Deefry)가 전체를 책임진 프로덕션이 이를 확실하게 지원한다. 소울풀하면서 재지한 사운드에 기반을 두고 곡의 성격에 맞춰 적절히 펑키함을 부여한 비트로 앨범의 콘셉트와 좋은 궁합을 보여주었다. 특정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한 흔적도 엿보이지만, 그것이 앨범을 관통하는 랩퍼의 감정선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점 역시 돋보인다. 비록, 랩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나 수다쟁이는 자신의 데뷔 시점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간의 내공이 잘 담긴 앨범으로 솔로 랩퍼로서 나름 성공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씁쓸하면서도 희망찬 기분이 드는 마지막 트랙 “출입문”을 지나 그가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 기대 어린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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