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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나플라(nafla)
Album: Angels
Released: 2017-10-22
Rating:
Reviewer: 남성훈
나플라(nafla)는 독자적으로 제작한 “Wu”와 “Locked and Loaded” 비디오를 통해 힙합 커뮤니티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어 공개곡과 믹스테입으로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빠르게 씬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특히, 기존 힙합 씬의 조력을 받거나 [쇼미더머니]로 대변되는 거대 미디어 플랫폼에 투신하지 않고 스스로 몸값을 올렸다는 사실은 그의 귀중한 자산이 됐다. 힙합 아티스트가 자리를 잡는 평범한 과정일지 모르지만, 현재 한국 힙합 시장에선 꽤 희귀한 경우라 할만하다.이후 동료들과 레이블 메킷레인(MKIT Rain)을 설립하고 발표한 데뷔 EP [New Blood]는 결코 새롭지 않은 구성과 프로덕션임에도 한국 힙합 씬에서는 확실한 색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는 참 부지런히, 그리고 열렬히 달려왔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한 건 특출한 퍼포먼스 능력이었다. LA출신임을 드러내는 타이틀의 정규 데뷔작 [Angels]의 감흥 대부분 역시 나플라의 퍼포먼스에서 비롯한다.
3개의 스킷(Skit)을 포함해 16트랙을 꽉 채운 [Angels]는 늘어난 분량만큼 그의 재능과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프로덕션이다. 각 트랙에서 확연히 드러난 여러 스타일의 조합은 나플라가 천생 힙합 키드임을 느끼게끔 한다. 그는 특정 비트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레퍼런스 삼기보다는 그가 푹 빠졌던 힙합 음악의 바이브를 최대한 받은 느낌 그대로 전달하는데 공들인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힙합 명곡에 샘플로 사용된 “Bumpy’s Lament”를 사용한 “kickback”을 포함해, “Fly High (M&H)”, “Dead Tree”, “호피(dime)” 등, 특정 아티스트나 스타일, 그리고 그것이 자리했던 시대를 은근슬쩍 떠올리게 하는 프로덕션이 대부분이다. 가사 속에 비트와 어울리는 클리셰를 살짝 녹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미 그가 “Wu”라는 곡을 통해 선보였던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효과는 꽤 성공적이다. 이미 검증된 다양한 무드의 충실한 재연, 혹은 오마주라 부를 수 있는 비트들이 산만하게 튀지 않고 자리잡은 것은 바로 나플라의 랩 덕이다.
그는 비트 위를 자유자재로 뛰노는 물오른 박자감의 랩으로 앨범을 장악한다. 그중에서도 특유의 차가운 느낌의 보이스톤과 즉흥적으로 끊어 치는 듯하지만, 정교하게 짜인 플로우가 만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초·중반의 트랙은 압권이다. “Taxi(skit)”이후 톤 다운된 랩을 담은 “혼자가 편해”와 “smile”에서도 유려한 랩핑을 들려주며 현재 한국 힙합에서 가장 뛰어난 퍼포머 중 한 명임을 보여준다. 루피(Loopy), 블루(Bloo),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의 피처링도 적절한 타이밍에 잘 어우러진 편이다.
그러나 [Angels]에선 이 같은 강점과 동시에 그동안 나플라가 보인 한계 역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사 탓이다. 꽤 많은 양의 랩으로 채웠지만, 주목할만한 라인이나 표현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가사는 앨범이 더 이상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다. 주로 문장의 끝에 예상 가능한 영어단어를 배치하여 만든 라임은 신선함과 거리가 멀고, 다양한 주제를 풀어내지만, 흥미를 자아내는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작 앨범에서 듣는 이를 집중시키는 이야기가 담긴 트랙은 3개의 스킷이다.
그의 가사는 의도적인 단순화가 주는 느낌을 노리거나 의외의 단어선택으로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고자 한 것도 아닌 듯하다. “사과상자”에서 단어 하나가 만드는 의외성의 효과를 생각하면, 다른 트랙의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결국, [Angels]는 랩을 정말 잘하는 ‘힙합 키드’라는 나플라의 외피를 더욱 견고히 하는 앨범이 되었다. 그것이 나플라를 주목하게 만든 이유의 핵심이고, 그의 캐릭터이자 매력이며, 그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요소는 충분하다. 다만, 그것이 나플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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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 | 비추 1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랩 퍼포먼스가 주는 청각적인 쾌감이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봅니다.
Fly High에서의 퍼포먼스는 개인적으로 올해 들은 국내 랩 중 최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