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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콰이(Kwai)
Album: Flowering4
Released: 2020-09-18
Rating:
Reviewer: 강일권
음악을 통해 개인적인 얘기를 토해내는 래퍼에겐 직접 자기소개를 적는 것보다 랩으로 말하는 게 보편적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이력 없이 앨범부터 발표한 신예, 콰이(Kwai)는 가장 기본적인 바이오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6개의 타이트하고 짜릿한 음악을 떨어트려 놨다.앨범을 매개로 그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에 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음악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Flowering4]는 콰이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게 한다.
많은 래퍼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혹은 경계에서의 고민을 토로해왔다. 콰이도 앨범 전반에 이를 흩뿌려놨다. 하지만 주제를 표면화하고 라임으로 구성하는 수준이 남다르다. 태도를 불씨 삼고, 생존에 템포를 맞추지 않으며 나아가는 아티스트로서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본인의 처지와 그가 바라보는 한국힙합과 사회를 이물감 밴 언어로 그렸다.
이제 막 판에 발을 디뎠음에도 씬, 혹은 시장에 관한 그의 시선과 현실 인식은 날카롭다. 대다수의 아티스트에게 실상은 여전히 열악한 내수시장과 힙합 문화라는 허상 뒤에 있는 민낯을 꼬집고, 도무지 개선될 것 같지 않은 현실을 조소하다가도, '뭐 이런 말도 내가 풀림 못할 얘기 맞지'라며,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염세주의에 함몰되는 듯하다가 유연하게 한 발 빠져나와 냉철하게 상황을 보는 점이 인상적이다.
[Flowering4]의 처음부터 끝까지 랩 가사 특유의 함축미를 잘 살린 라인과 순간순간 빛나는 비유가 이어진다. 그리고 앨범 전반에 깔린 어둡고 축축한 밑바닥 삶의 무드가 이 같은 이야기에 극적인 감흥을 더한다. 염세주의, 현상비판, 자기연민 등이 어지럽게 뒤섞인 가사, 그림자 속으로 끊임없이 침잠하는 듯한 프로덕션, 이죽거리다가도 독사처럼 잔뜩 독을 품은 채 웅크린 랩이 한데 어우러져서 나온 결과다.
첫 곡 “정신”부터 강렬하다. 보컬 샘플을 챱드 앤 스크류드(Chopped and screwed/*필자 주: 보컬, 혹은 비트의 템포를 극단적으로 느리게 하고 늘여서 연출하는 리믹스 기법) 시킨 도입부를 지나 본궤도에 돌입한 비트는 작은 싱크홀에서 새어나와 수렁으로 끌어들이려는 듯한 요상한 기운과도 같다. 그 위로 옹골지게 흐르는 랩에선 현실이 이상을 짓누른 상황에 선 화자의 혼란스러운 심경과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유일하게 스토리텔링 기법을 부각한 “low life”는 콰이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또한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곡이다. 인력소, 게임장, 노래방 등에 둘러싸인 거리의 저층상가에서 일하는 그가 가게 단골인 택시 기사의 (아마도) 절도 행각을 마주한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기사와의 불편했던 일화를 반추하는 것으로써 저층상가의 본판, 즉, 본인이 처한 밑바닥 삶의 적나라한 현실을 대변하는 작사 기술이 베테랑 래퍼 못지않게 노련하고 탁월하다.
곡 전반에 흐르는 일그러진 신스와 뒤를 받치는 소리들이 조합한 불길한 기운의 프로덕션이 이야기의 몰입감을 더욱 높인다. 곡이 끝나고 나면, 마치 듣는 내가 현장에서 괴로운 현실에 부대끼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피로감을 주는, 그래서 탁월한 곡이다.
바로 이어지는 “never no problem”과 “moneychase”도 빼놓을 수 없다. 전자엔 전곡을 통틀어 가장 재치 있고 능란한 비유와 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담겼으며, 후자엔 가장 타이트한 랩 퍼포먼스가 담겼다. 특히, 일부러 딜리버리를 희생하며 멈블 랩(Mumble Rap)을 구사한 “never no problem” 바로 다음곡으로 “moneychase”가 흘러나와 상반된 감흥을 안겨 흥미롭다. 이것이 의도적인 배치였다면, 절묘한 한 수다.
콰이는 [Flowering4]의 분위기를 대변할만한 이른바 타입 비트(Type Beat)를 끌어모아 탄탄한 프로덕션을 구축했고, 개성과 스킬을 겸비한 랩으로 주목해야 할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그의 랩이 자아내는 감흥은 강렬한 타격이 아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잔상과도 같다. 근래 이처럼 정서적으로 깊은 몰입감을 준 힙합 앨범은 오랜만이다. 이 비범한 재능이 부디 무관심 속에서 사그라지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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