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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비프리(B-Free)
Album: FREE THE BEAST
Released: 2020-11-15
Rating:
Reviewer: 남성훈
비프리(B-Free)는 힙합 마니아는 물론 평단의 큰 지지를 얻은 [희망]과 [Korean Dream]을 발표하며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프론트맨으로 활약했었다. 2016년 독자노선을 택한 후에도 스타일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꾀한 싱글과 앨범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아무래도 예전 같지 못했다. 특히, 음악 스타일의 전환점인 2016년작 [Free From Seoul]과 이를 확장한 [MacGyver], 그리고 2019년작 [FREE FROM HELL]의 음악적 방향성이 확실했음에도 아쉬움만 컸다. 비프리를 여타 래퍼들과 구분 짓던 요소가 부재한 탓이다. 예를 들어 고단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며 깊은 여운을 안기던 가사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런 가운데 또 한 장의 새 앨범 [FREE THE BEAST]가 발표됐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사이즈다. 뉴웨이브 레코즈 설립 이후, 상대적으로 짧게 구성했던 앨범들과 다르게 총 18트랙, 러닝타임 50분에 이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하고 인상적인 감흥이 응집된 앨범이다. 첫 트랙 "이번에는"의 도입부에서 ‘90년대 초반의 '건전 비디오 광고' 내레이션 샘플을 배치하여 앨범의 유해성을 경고한대로, [FREE THE BEAST] 속엔 무정부적 혼란이 넘실댄다.
이러한 무드를 조성하기 위하여 비프리는 현재의 서던 힙합을 만든 토대 중 하나인 멤피스 랩(Memphis Rap) 프로덕션을 더욱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멤피스 랩 특유의 끈적한 신시사이저 멜로디와 치찰음에 가까운 스네어 사운드가 만들어낸 음산함은 [FREE THE BEAST]의 컨셉에 딱 들어맞는다. 특히, 단순한 스타일 차용을 넘어 주목할 지점이 많다. 비프리는 빈약한 제작환경에서 연유한 초창기 멤피스 랩 프로덕션 특유의 조악한 맛을 제대로 구현했다.
개별적인 악기와 샘플 자체의 선명도는 최상급으로 유지하면서, 섬세한 사운드 조절로 자극을 주는 의도된 조악함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죽음의 골짜기”, "드라큘라 2020" 등에서 한국 고전 공포영화 장면을 샘플링해 빈티지하고 그로테스크한 기운을 효과적으로 불어넣는다. 이미 2013년 옵티컬 아이즈 엑셀(Optical Eyez XL)과의 EP [Nightmare Project]를 통해 호러 랩(Horror Rap)을 시도했던 비프리의 극적인 연출력이 절정에 다다른 듯하다.
전 트랙에 걸쳐 감각적으로 배치한 사운드 소스들은 불협화음을 이루며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순간적인 환기와 집중을 이끌어내는 변주의 타이밍도 탁월하다. 후반부를 여는 스킷(Skit) "천국" 이후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몽롱하지만, 밝은 분위기로의 전환도 어색하지 않다. 컨셉을 위해 차용한 프로덕션 스타일을 세련되게 구현하고, 여러 장치를 활용한 신선한 아이디어로 여유 있게 자기화 하는데 성공했다. 전 트랙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비프리의 역량은 그야말로 놀랍다.
랩 퍼포먼스는 프로덕션의 성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음울하게 읊조리다가 급작스레 폭발하듯 내지르는 비프리의 랩은 위압감과 공포감 사이에 안착한다. 아드레날린 넘치는 랩 퍼포먼스를 굉장히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데뷔 초부터 비프리 랩의 핵심으로 여겨진 천부적인 박자감각 덕분이다. 격한 감정선으로 쉽게 어그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이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결국 비트와 차진 합을 이루는 랩이 즉흥성과 견고함을 동시에 잡아낸 것이다.
참여진의 퍼포먼스도 만족스럽다. 다수의 트랙에 참여한 신인 권기백의 이름이 눈에 띄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EK, 먼치맨(Munchman), PNSB다. 이들이 각자의 스타일을 통해 연이어서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붙이는 “개새x”, “부활절”, “구명조끼” 구간은 단연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가사도 흥미롭다. 시종일관 치열한 현실과 망상, 혹은 판타지 사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호하여 당혹스럽게 하지만, 과잉된 감정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발견의 재미가 있다. 군대를 향한 혐오를 숨기지 않았던 그가 군대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활용한 “휴식”은 아는 이들만 아는 농담 같고, 앨범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인 “드라큘라2020”이 드라큘라를 빗대 약물의 위험성을 그려냈다는 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한, 중반 이후 “구멍조끼”, “친구들 2016”, “변화”의 가사에 심어 놓은 페이소스는 앨범 전체의 강렬한 무드와 대비되며, 차분하게 삶을 관조하는 마지막 트랙 “설계”가 괜한 사족처럼 느껴질 정도로 묘하게 감정선을 건드린다.
비프리의 경력과 행보를 주목해 왔다면, 이 앨범을 대하는 입장이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2014년 [Korean Dream]으로 동시대 한국힙합 씬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통하여 2020년 다시금 정점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FREE THE BEAST]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장르음악으로서의 성취가 매우 명확히 읽히는 앨범이지만, 그러한 사유와 분석은 어디까지나 압도적인 감흥 이후의 것이다. 비프리의 최고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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