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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정지아
Album: 입수
Released: 2021-11-24
Rating:
Reviewer: 김효진
정지아가 2019년에 발표한 첫 EP [재생]에는 낙관을 찾아볼 수 없다. 침울한 단어들이 파도친다. 대표적으로 “세상은 우리의 것”이 그러하다. 태연하게 흐르는 건반과 ‘세상은 온통 우리의 것 어지럽혀진 우리들로 채워진’이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한 편의 잔혹 동화를 읽는 것 같다. 그러나 정지아는 이야기의 방향을 비관적이거나 냉소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길을 튼다. 끝을 알기에 지리멸렬한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이토록 아름답다.그때 그 마음이 진정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수]는 누군가를 갈망하는 모습들로 빼곡하다. ‘널 사랑하는 날 사랑하는가 / 날 사랑하는 널 사랑하는가’(“영”)라고 자문하며 상대와 나 사이의 간격을 재는 등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결국 상대의 마음이 한치의 의심없이 확실하길 바라는 것이다. 연인을 만났다는 행복이 사랑받고 싶은 불안함으로 상쇄되어 그 어떤 상태도 아닌 ‘0’이 되었을 때를 훌륭하게 표현한다.
[입수]는 한 권의 사랑이다. 직설적으로 구원을 바라는 “구해줘”부터 불완전한 사랑일지언정 모든 걸 던지고 싶다고 말하는 “그물”, 사랑의 끝을 직감하며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어린 날”, 사랑의 기간을 하나의 앨범으로 비유한 “앨범”까지 정지아는 사랑의 생애를 [입수] 전체에 녹여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따라서 ‘입수’는 앨범 내에서 애정 상대에 푹 빠진 마음과 그 마음을 숨기고 싶은 욕심을 모두 함의하는 단어로 다가온다. 그러나 완벽하게 빠져 있거나 꼼꼼히 숨겨진 모양새는 아니다. 물 속은 투명하다. 침몰이 두려워 도망갈 곳을 마련한 마음, 꼭꼭 숨기려고 해도 삐죽 솟는 마음이 투영된다. 정지아의 언어는 이 모든 형상을 꼿꼿하게 세운다.
전작 [재생]은 피아노가 메인으로 자리해 모습을 달리하며 사운드의 층계를 쌓았다. 그러나 [입수]에선 메인인 피아노에 기타 사운드를 쌓고, 울먹한 소스를 활용하는 등 변화를 준 모습이다. 성공적인 변화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영”부터 “그물”까지 둔중한 비트 위에 익숙하고 쉬운 리듬 패턴이 수놓아져 감흥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마지막 트랙인 “꿈”에서는 활용된 사운드스케이프가 바닷가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반짝거리는 소스로 버석거리는 마음을 그려낸다. [입수]를 트랙 순으로 따라가며 일어난 감정을 한 데 모아 피어나도록 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꿈”에 모든 마음을 풀어내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때때로 그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일이다. 나를 구해줄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 사람만이 나를 구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사랑의 기간 내내 속을 비틀고 쥐어짠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힘마저 전가한 뒤 끝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손에 쥐고 있는 게 없는 사람만이 새로운 생애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정지아는 마음과 사랑을 저울에 올려 미세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노래하는 듯하다. 아무리 요동쳐도 수평선 위로 올라가지 않은 쪽을 무심한 듯 바라본다. 어쩌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누구도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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