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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Bad Rabbits
Album: American Love
Released: 2013-05-14
Rating:
Reviewer: 현승인
한때 알앤비 밴드가 음악계를 평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70년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 팔러먼트/펑카델릭(Parilament/Funkadelic) 등등, 수많은 알앤비 밴드의 음악이 세계 각지의 댄스 스테이지를 뜨겁게 달구곤 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알앤비 밴드의 전설적인 행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70년대 펑크(funk)의 열기를 이어받은 80년대의 디스코(disco)는 음악적 도구로서 밴드 세션보다 미디와 신시사이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본래 보컬 중심의 성격이 강한 알앤비라는 장르에서 밴드는 더 이상 흥행을 담보하는 요소가 아니게 된 것이었다.지금 소개하는 알앤비 밴드 배드 래비츠(Bad Rabbits)는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흥미로운 점이 참 많은 팀이다. 최근 몇십 년간 주목할만한 알앤비 밴드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미국에서 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갑다. 사실 여러 장르에 걸쳐 비교적 밴드음악을 고수하고 있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는 70년대 미국 알앤비 밴드를 계승하는 여러 가지 음악적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미국에서는 보컬, 혹은 댄스 위주의 알앤비를 선보였을 뿐, 알앤비 밴드에 대한 주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힙합 전설 슬릭 릭(Slick Rick)의 백업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던 배드 래비츠는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프로듀싱을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맡으면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들의 음악적 완성도가 없었다면, 이조차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배드 래비츠의 밴드 구성이 인도, 아르헨티나, 가나 등, 다양한 배경의 이민 2세들로 이루어졌고, 앨범의 타이틀이 [American Love]라는 사실이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앨범은 전체적으로 ‘Love’에 초점을 맞추고 미국의 흔한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참고로 다음에 예정된 앨범의 타이틀이 'American Dream'이다). 이는 특별한 장치 없이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미국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성조기의 별 대신 여성의 엉덩이를 표현한 듯한 이미지를 삽입한 밴드의 심볼 역시 그들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볼만하다.
[Americam Love]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통해 70년대 펑크의 기본적인 정서와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가장 록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We Can Roll”과 “Dance Moves”, 그리고 “Fall in Love”는 록과 네오-소울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펑크의 질감을 살리는 데 성공하며, 흡사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의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Can’t Fool Me”의 신시사이저 루프와 변조된 보컬은 펑카델릭(Funkadelic)의 영향을 떠오르게 하며, 앨범 중 가장 신나는 곡인 “Dirty”에서는 대놓고 부치 콜리스(Bootsy Collins)의 음악을 (인상적으로) 오마쥬한다. 힙합의 향을 느낄 수 있는 “Take It Off” 역시 놓치면 아까울 트랙. 전신인 크로스오버 밴드 이클레틱 콜렉티브(The Eclectic Collective)에서부터 지금의 배드 래비츠까지, 이들의 방향성은 알앤비와 록을 동시에 기반으로 삼는 밴드라는 점에서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절묘하게도 이러한 방향성이 최근 장르를 막론하고 불고 있는 복고 열풍과 자연스럽게 접점을 이룬다.
결과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음악적 완성도는 배드 래비츠가 단순히 밴드여서 반가운 걸 넘어 여러모로 주목해야 할 지점이 많은 팀이라는 걸 부각한다. 물론, 그들이 밴드를 경시하는 현재의 알앤비 씬에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언급했듯이 알앤비 밴드라는 성격 자체가 현재 음악 씬을 고려해봤을 때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드 래비츠 이전에도 몇몇 알앤비 밴드들이 70년대 부활을 꾀했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단순한 복고의 재현이라기보다 장르의 크로스오버와 현대적인 감각을 통한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배드 래비츠에게는 어느 정도 희망을 걸어봄 직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됐든 밴드음악을 재현하는 데는 밴드가 더 유리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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