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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시비에 대처하는 창작자/기획사들의 5가지 자세
강일권 작성 | 2013-11-08 22:4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9 | 스크랩스크랩 | 40,001 View




부두의 이별처럼 언제나 찾아오는 가요계 표절 시비는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 진위를 떠나서 로이킴, 아이유, 프라이머리 등등, 나름 굵직한 이름들이 표절 시비에 휩싸였고, 박진영 역시 지난해 1심 판결 이후, 2심에서도 패소하며, 여전히 표절 문제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제 나올만한 멜로디는 다 나왔다는 것이 중론인 상황에서 개중에는 진짜로 억울한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교묘한 논점 흐리기, 터무니없는 주장, 눈 딱 감고 버티기 등을 시전하며 난국을 헤쳐나가는 기지를 발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같은 뮤지션과 기획사들의 대처 방식은 크게 5가지 유형별로 나눠볼 수 있다.


 

1. 진심호소형 '전혀 들어본 적 없다.'

 

가장 일반적이며 많이 하는 해명이다. 연이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많은 저작권료를 벌어들이고 있는 메이저의 몇몇 작곡가들이 이 케이스에 속한다. 원곡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붙는 미국 팝계와 달리 국내에서는 세계적인 정보력을 자랑하는 누리꾼들이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비슷한 곡을 찾아내면서 표절 논쟁에 불이 붙는다(주로 표절 대상이 외국 곡이어서 이기도 하다). 이후, 연예 매체들이 뒤늦게 기사들을 뿌려대고, 표절 의혹으로 공격받던 뮤지션은 정색하며 이야기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을 표절했다니 억울하다." 이 경우는 두 가지다. 진심으로 원곡을 들어보지 않았거나 베끼고서 (또는 레퍼런스 삼다가) 시치미 떼는 것이거나. 때문에 실제로 억울하게, 혹은 의도치 않게 오명을 뒤집어 쓰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케이스다. 하지만 비틀즈(Beatles)의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유명한 표절 판정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잠재의식적 표절', , 의도적이지 않았더라도 무의식 중에 작업한 곡이 문제된 원곡과 비슷하다면, 표절로 인정한 것처럼 설사 진심이라 하더라도 시비에서 온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예전에 인상 깊게 들었던 음악이 자신도 모르게 작업 시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 같은 판단의 배경 중 하나다. 아래 거론할 나머지 유형들보다는 진심이 담겨 있을 확률이 높은 해명이지만, 가요계의 표절 역사 속에서 그 진심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함정.   


 

2. 힙합팔기형 '샘플링이었다.'

 

일부 힙합 뮤지션들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운 해명방식이다. 세계대중음악계에서 연구 대상이 된지 오래이고,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오늘날 힙합 음악을 있게 한 샘플링(Sampling)이 국내에서는 장르 뮤지션들의 표절 시비 방패로 전락한지 오래다. 리쌍이 지난 2009년에 발표했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는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이 곡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 "Superstar"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리쌍 측은 원작자 측으로부터 샘플링 허락을 받고 작업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앨범 크레딧 어디에도 원곡을 만든 이들의 이름은 없었고, 해당 곡을 샘플링했다는 표기도 없었다. 게다가 그 이유란 것이 "현재 원저작자가 리쌍의 곡을 샘플링으로 볼 것인지 리메이크로 볼 것인지 정리를 해주지 못했기 때문(2009 MK 뉴스 기사 참고)"이라는 앞뒤가 안 맞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처음 얘기한대로 이미 계산과 합의가 다 끝난 적법한 샘플링이었다면, 원저작자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거니와 앨범 크레딧에 표기하면 그만이다. 다만, 미 힙합 씬(특히, 인디, 언더)에서도 원곡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 할 정도로 샘플링을 한 경우에는 표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물론, 이후에라도 원저작자가 알아차리면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표절'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원곡의 존재가 뚜렷한 경우가 태반인 국내의 케이스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비록, 표절은 아니었지만, 힙합을 잘 모르거나 관심없는 대중에게 샘플링과 힙합음악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대표적인 예였다. 이 외에도 메이저의 많은 힙합 뮤지션들과 기획사, 게다가 이제는 장르 무관한 작곡가들마저 샘플링을 표절 시비를 쳐내는 방패로 사용해왔다. 최소한 힙합 뮤지션이라면, 샘플링으로 방어막을 쳐선 안 된다. 그건 정말 지질하고 못된 짓이다.


 

3. 존경심호소형 '오마주였다.'

 

사실 이 경우는 '표절'보다 '레퍼런스' 관행에 대한 변명으로 쓰일 때가 많다. , 엄밀하게 표절이라 하긴 어렵지만, 누가 들어도 특정 곡을 따라서 만든 게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경우 얘기다. 따라서 법적으론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매우 구린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그들의 변명을 보고 있으면, 오마주(hommage)에 대한 기본 개념은 물론, 활용하는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느껴져 안타까울 정도다. 음악에서 오마주란 일반적으로 특정 음악, 또는 뮤지션의 작법에서 영향받아 만든 곡을 말한다. 곡 전반에 걸쳐 느껴질 때도 있고, 의도적으로 표현한 일부분에서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 오마주로 방어하는 음악들은 곡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카피캣임을 노출하는데, 진정한 오마주라면, 창작자가 일부러 드러냈건, 숨겨놓았건 간에 청자가 알아차렸을 때 쾌감을 느껴야 한다. 원곡자의 쾌감은 옵션이겠다. 그리고 대부분은 앨범 발매 전이나 후에 공식적인 경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마주한 대상을 직접 거론하거나 암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평소 자신이 영향받거나 좋아하던 음악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않다가 표절 시비가 나니 오마주였다고 밝히는 건 개나 줘버린 예의와도 같다. 한편, 국내에서 오마주 논란은 음악 자체보다 뮤직비디오 표절 시비에서 자주 일어나곤 하는데, 2000년대에도 이지혜, 아이비, 비스트, 손담비 등의 뮤직비디오가 표절 논란이 일자 관계자 측이 오마주라고 해명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오마주의 기본은 존경심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다. 


 

4. 장르전문가형 '장르의 유사성 때문이다.

 

최근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두 표절 시비건 아이유의 "분홍신"과 프라이머리가 만든 "I Got C(거머리)", "미스터리(박지윤)"가 이 케이스에 속한다. 물론, 아이유와 프라이머리 건은 논란의 성질만 비슷할 뿐, 놓인 상황이나 주장을 둘러싼 배경, 그리고 대체적인 반응이 다르긴 하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앞서 1번 유형처럼 창작자가 의도치 않게 오명을 뒤집어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재즈나 블루스처럼 일종의 공통된 코드가 존재하고, 비슷한 진행 패턴과 멜로디 라인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장르를 추구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장르를 추구한 모든 곡에 면죄부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정도라는 게 있고 접근 방식에서 의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계는 최근의 대표적인 두 케이스의 표절 시비 건에 대한 대중과 전문가들의 반응으로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할 듯하다. 더불어 설사 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고려하여 표절이라 보기 어려운 곡임이 드러났다 해도 께름칙한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는 건 그동안 국내 뮤지션들이 장르 음악을 대해온 태도 탓이다. 창작자들마저 장르에 대한 탐구나 존중심이 부족한 현실은 몇 번이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5. 호박씨까기형 '뒤에서 합의보고 저작권 등록' 

 

마지막으로 겉으론 결백한 척하면서 뒤에서 수습하는 형이다. 표절 시비가 나고, 언론을 통해서는 1번부터 4번까지 유형을 예로 들며 적극 해명에 나서지만, 그와 동시에 원저작자 측과 접촉하여 금전적, 도의적 문제를 해결하고 저작권자를 바꾸는 방식이다. 사실 이 경우는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합의 방식이 어떤지 알려진 바 없이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어서 특정 케이스나 뮤지션을 예로 거론하기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야기하기엔 민감한 이 사안은 고맙게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대신 증명해준다. 지금이라도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동안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곡들을 검색해보시라. 어느 샌가 작곡자 명단에 국외 뮤지션들의 이름이 추가되어 있는 광경을 꽤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절 판정을 받지 않은데다가, 그들이 그토록 결백하다고 외쳐댔던 곡임에도 말이다. 이 유형이야말로 가장 악질이다.

 

흔히 표절은 양심의 문제라고들 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얘기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다. 그러므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표절 근절 방안을 논할 때 창작자들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은 실로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얘기다. 이전부터 누차 강조하지만, 창작자의 양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창작물과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칼럼'은 그 어느 기사보다 필자 개개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는 글입니다. 그러므로 리드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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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등록
  • routss
    1. routss (2013-11-10 01:06:50 / 14.54.235.**)

      추천 2 | 비추 0

    2. 장하준교수가 자꾸 머리속을 멤돈다.뜨억!
      요즘 드는 생각이 표절이야!.아니야!.보단
      논란자체가 양산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 무서운...
  • Pret-A-Porter
    1. Pret-A-Porter (2013-11-10 00:35:54 / 218.237.6.**)

      추천 2 | 비추 0

    2. 시기적절한 칼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준민
    1. 이준민 (2013-11-09 13:33:05 / 175.253.83.**)

      추천 3 | 비추 0

    2.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문제인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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