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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에서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CD와 MD, MP3. 음악을 담고 있는 매체는 계속해서 변화, 발전해왔고 각자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접한 매체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리드머 대부분 회원에게는 CD가 그것이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유년시절 카세트 테이프에서 자연스레 CD로 넘어오면서 지금까지도 CD를 사 모으고 있다. 이것은 흔한 CD(음반) 구매자의 체험기다.1. 어린 시절 듣던 음악들
유년시절 가장 많이 접했던 레코드는 동요 모음집이었다. 똑순이(김민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든지 혜은이의 “파란나라”가 들어있던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동요, 지금은 개그보단 뉴스에 더 많이 나오는 영구 심형래의 캐럴, 장화홍련전 같은 동화를 성우들이 읽어주는 음반들이었다. 대부분 정식 레코드샵이 아닌 길보드라 불리던 동네 리어카에서 엄마가 사다 주신 음반이었다. 장화홍련전 같은 무서운 내용의 동화 레코드를 들을 때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들었었으니, 안 들으면 그만인 것을 왜 그랬을까?
2. 처음 구매했던 음반 기억해내기
음반 수집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처음으로 산 레코드를 기억해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초등학생들이 뉴 키즈 온 더 블락(New Kids On The Block)과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장기자랑에서 부르던 시절의 어느 날 친척 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 음반을 들었다. 그해 모두가 열광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렇게 내 귀에 들어왔다. 동요와 안녕을 고하고 대중가요 음반을 사기 시작한 시간이다. 당시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안에 있던 조그마한 레코드샵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라이브 음반과 철이와 미애의 데뷔 음반을 카세트 테이프로 구매했다. 초등 5년 때다. 물론, 돈은 엄마 주머니에서 나왔지만….
내가 처음 음반을 구매했던 동네 레코드샵은 문을 닫았다. 그렇게 추억의 장소 하나가 사라졌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지인에게 요즘 초등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곡을 물어보니 오렌지 캬라멜의 “마법소녀” 같은 곡이란다. 안무는 기본이라고….
3. 용돈 그게 뭐야? 음반 살 때 쓰는 거야?
내게도 용돈이란 게 생겼다. 중, 고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만 원씩 한 달에 사만 원이다. CD 서너 장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데 동네 레코드샵엔 원하는 음반의 재고가 없을 때가 있다.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의 대형 서점 안에 있던 레코드샵에 가기로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껴안고 지하철을 탄다. 소풍 가는 기분이다. 또래의 아이들이 학습지를 보고 있는 시간 나와 음악을 즐겨 듣던 친구들은 CD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그렇게 CD 서너 장을 산다. 한 달 용돈을 고스란히 음반 구입에 쏟아 부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친구가 내 손에 걸린 CD들을 보고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한 달 용돈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왠지 모를 우월감이 생긴다.
4. 싱글 구매해보기
현재는 디지털 싱글을 비롯하여 싱글이 활성화되었다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싱글 시장은 조용했다. 간혹 한두 장씩 나오더라도 정규 앨범과 별반 차이가 안 나는 가격 탓에 대중에겐 큰 메리트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시장은 달랐다. 고교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자드(Zard)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용산 등지에서 그녀의 얼굴이 담긴 엽서를 사 모은 일은 내 생애 가장 강력한 덕후 행위였다. 어느 날 목동의 모 레코드샵에서 일본 정품 CD를 판매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당시 음악을 비롯하여 일본의 전반적인 문화산업이 수입되지 않던 시절 엄연한 불법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은 역시나 불법으로 대만이나 중국에서 찍어낸 빽판 CD를 구매해 듣곤 했다. 이왕 불법인 거 정품 불법으로 듣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이번엔 대형 레코드샵이 아닌 목동으로 가기로 한다. 또 소풍이다. 때마침 시험도 끝나 오후에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곳에서 처음 자드의 정품 싱글을 접했다. 정규 앨범 사만 원, 싱글은 만 오천 원. 한 달 용돈으로 겨우 정규 앨범 한 장을 구매할 수 있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싱글 두 장을 사 들고 왔다. 얼굴이 가려지는 일반 CD보다 약 1/3 크기의 조그마한 CD가 귀엽게 느껴진다. CDP에 넣고 돌리면 가끔 튕긴다. 세로형으로 장착된 컴퓨터 CD롬에 싱글을 넣을 때는 멘붕을 피할 수 없다.
5. 손끝의 희열
중학교 시절 담임이자 체육 선생님은 항상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남자라면 항상 세 끝을 조심해야 돼 새끼들아. 혀끝, 손끝, 그끝. 알았냐?”
30년 넘게 살면서 조그마한 실수들은 있었지만, 이 세 가지 끝을 난 조심스레 운용해 왔다. 이중 법, 도덕적으로 문제없이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희열은 뭐니뭐니해도 CD의 비닐을 벗기는 일이다. 마구잡이로 잡아떼는 스타일, 조심조심 섬세하게 끈을 풀어헤치는 스타일. 사람마다 벗기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CD를 사서 그 자리에서 바로 비닐을 벗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 가서 벗기는 타입 등 비닐을 벗기는 시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는 주로 버스나 지하철 안에 앉아서 섬세하게 비닐을 벗기는 타입이다. 어느 날 친구 녀석과 지하철에 앉아 CD의 비닐을 벗기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지하철에서 이러고 있는 애들 보면 완전 지질해 보여!”
아니 대체 뭐가?!
참고로 비닐 벗기기 외에 스티커 떼기도 있다.
6. 천국의 장소
지금이야 인터넷과 핸드폰을 켜고 클릭 몇 번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15년 전만 하더라도 음반 매장에 직접 가야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힙합과 알앤비라는 단어가 국내에 상륙했지만, 라이센스되는 음반은 극히 적었다. 그러던 중 ‘수입음반’이란 것을 판매하는 곳을 알게 됐다. 강동, 남쪽 지방 사람들은 주로 S 레코드 샵을, 그리고 그 반대쪽 사람들은 주로 신촌의 H 레코드 샵이란 곳에 가서 음반을 구매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지금이야 프렌차이즈 커피샵이 온 동네를 지배한 신촌에 독수리 다방이 있던 시절, 또 어김없이 소풍이다. 지금껏 갔던 소풍과는 전혀 다른 천국과 다름없는 장소다. 처음 천국에 들어 갔을 땐 동네 레코드샵보다 협소한 공간에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웬걸, 한쪽 벽에 빽빽하게 자리한 듣도 보도 못한 힙합 음반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현장에 없는 음반을 물어보자 얼굴 예쁜 알바 누나가 전화를 하고, 곧이어 어떤 남자가 창고에서 음반을 들고 오기도 한다. 천국 위에 또 다른 천국이 있는가 싶었다.
7. 음악을 대하는 독특한 표현
내게 있어 음악은 크게 좋은 음악과 안 좋은 음악으로 나뉘었다. 간혹 TV나 라디오에 출연한 비평가들은 불필요한 미사여구와 뜬구름 잡는 소리로 가득한 비평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녀석 하나는 내게 이런 표현을 썼다.“네가 듣는 음악 재미있어?”
음악과 재미라니? 아니 어떻게 음악을 두고 재미있느냐는 표현을 하지? 음악은 그저 좋고 안 좋은 거야. 그런데 재미라니?
15년 전 내게 음악을 두고 재미가 있느냐던 친구의 질문은 내게 잊지 못할 독특한 표현이자 여태껏 음악을 듣고 있는 정답을 준 것 같다. 재미가 있기에 지금껏 이러고 있는 게 아닐까?
8. 카드가 필요해
동네 레코드 가게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오프라인 매장들이 온라인 매장의 범위를 넓혀가던 시기. 정말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는데 국내 어느 매장에도 재고가 없다. 세계 각국의 온라인 레코드샵을 뒤져본다. 이럴 수가!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의 레코드샵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In Stock(재고 있음)’이라는 글씨가 나를 환영한다. 예상 출고일도 하루나 이틀이란다. 환율을 계산해보고 관세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내 신용카드에 비자(VISA)라는 글씨가 있는지 살펴본다. 주문한 지 며칠이 지나 음반이 바다를 건너 내 손안에 들려지는 순간, 전 세계가 내 손바닥 안에 있는듯한 착각을 느낀다. 물론, 다음 달 카드 고지서를 보는 순간 약간의 멘붕은 어쩔 수 없다.
9. 변화 하나
MD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CD를 들었다. MP3플레이어라는 게 생기자 주변에서 변화가 생겼다. CDP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기계는 큰 음질저하 없이 음악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CDP를 고수했다. 무수히 훌륭한 기종의 MP3플레이어가 생기고 잠깐씩 써보더라도 얼마 못 가 CDP를 들고 다녔지만, 결국엔 나 역시 변했다. 스마트폰이 나온 것이다. 전화기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그렇게 무겁던(?) CD플레이어를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넣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자 내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고정적으로 소비하던 CD 지출액이 확 줄어든 것이다.
10. 변화 둘
홍대의 모 레코드샵에서 수년간 일하고 있는 친구 놈은 어느 날 출근하자 자리 위에 소주 두 병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사장님 이게 뭔가요?”
“마시고 일하자”
“아니 마시는 건 좋은데 아침부터 이러시면…”
“오늘 DB 정리할 음반이 100장이 넘어”
“평소보다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맨 정신에 하면 되죠”
“다 아이돌 음반이야”
“아….”
이상은 홍대 레코드샵에서 일하는 친구 놈과 마포대교 아래에서 소주를 마시며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아이돌의 음반을 파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주로 록이나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 마니아 음반을 판매하던 홍대의 레코드샵이 몇 해 전부터 메인스트림의 아이돌 음반까지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CD 판매량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친구 녀석의 샵은 CD의 재고량을 대폭 줄이고 LP의 재고를 늘리는 복고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이미 동네 레코드샵은 사라진 상황.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네 샵에서 아이돌 음반이 전혀 안 나간다는 게 함정.
11. 변화 셋
아무리 스마트폰을 쓴다고 하더라도 십 수년간 해오던 CD 구매를 멈출 순 없다. 여전히 음반을 사 모은다. 그런데 어느 샌가 앨범 속지에서 큰 재미를 주던 ‘Thanks To’가 사라진 음반들이 늘어난다. 요즘에야 SNS를 통해 뮤지션의 인맥을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CD의 속지를 통해 뮤지션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CD를 사 모으며 느꼈던 재미가 하나 사라진 거 같아 아쉽다. 그리고 요즘에는 CD를 사면 사진집과 엽서가 잔뜩 들어있다. 뭔가 양적으로 풍성해진 느낌이지만, 뭔가 중요한 게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12. 그래도 희망
지난 비 오던 주말, 나와 와이프는 주변의 친한 커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은 바로 앞 건물엔 레코드샵이 있었고 나는 CD를 한 장 사오겠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CD사는 사람이 있구나.”
지극히 평범하다 느낀 내가 희귀종자가 된 기분이다. 한쪽 귀로 흘리고 CD를 집어 계산대에 서자 뒤에 서 있던 모자간의 대화가 들렸다.
“어우 얘, 이제 CD 좀 그만 사라.”
“그만 사다니 엄마, 새로운 음악은 계속 나오는데.”
“CD말고 다운받아 들으면 되잖니?”
“에이~ 음악은 CD로 들어야 제대로지.”
말 한마디 못 나눠본 생전 처음 본 학생의 CD를 대신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CD를 그만 사라는 얘기는 언젠가 나도 한번은 들어본 말이다. 절망과 희망을 함께 느낀 비 오는 저녁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유년 시절 듣던 레코드가 기억나시나요?
처음 샀던 음반은요?
수입음반과 싱글음반을 구매해보셨나요?
국외 사이트에서 음반을 구매해보셨나요?그렇다면, 손끝의 희열을 느껴보셨겠네요.
주변의 변화도 느껴지셨을 테고요.그리고
혹시 지금 듣고 있는 음악,
재미 있으신가요?-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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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이글은 같은 '희귀종자'로써 리플을 달아야만할거같은 흥미로운 글이네요.
어찌 처음샀던 음반과 구입하며 있었던 이런저런일들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전 생전 처음으로 내의지로 구입했던 음반은 희대의 명곡인
'한국을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수록됐던 동요모음집이었습니다.
몇일동안 리슨앤리핏을 반복하여 다음날 학교에서 아이들앞에서
4절까지 전혀 망설임없이 불러제껴 환호를 받은 기억이 뚜렷합니다.
하룻동안이지만 반아이들의 영웅으로 지낸 뜻깊은 하루였던 기억입니다.
훗날 가요음반중 내의지로 샀던건 리어카표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음반이었습니다.
길보드음반이라서 음질은 별로였지만 세상을 다가진듯했죠.
그리고 동네형이 소유하고있던 몇천원 더비싼 초록색라벨의 서태지와 아이들정품음반을 부러워하며 내 기필고 2집이 나오면
그땐 정품을 구입하리다 맹세했던 원대한 포부도 기억이 나네요.
어릴적 그 원대했던 포부가 시발점이 된거겠죠.
나에게 있어서 '음반을 사서 듣는다'라는 말은 동심을 자극하는
향수와도 같아서 끊을수 없는듯 합니다.
아주 특별한 의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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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누고와서 또 듣고 하는데 요즘은 다운로드랑 인터넷에 치면 금방나오니
가끔 궁금해서 들어보면 아 좋다 하는데 예전처럼 미친듯이 반복하면서
듣지는 않는거 같애요 ㅠ ... 씁슬하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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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 1집을 15일 할부로 사던 그때 그시절도 있었고.
여전히 씨디피를 들고 다니고 있는데 과연 저는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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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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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지하상가 레코드점은 혹시 '예술의 전당' 아닌가요?
옛날엔 일반 레코드점과 달리 힙합 앨범을 팔아서 저도 가끔 들렀던 곳인데요.
거기 들리면 알바생이 우탱클랜 들어보셨나요? 하고 유명한 힙합 앨범만
소개해주던 기억이 나네요 ^^;;
지금은 예술의 전당도 아마 없어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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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도 마찬가지일듯하네요.
물론 주류 형태는 바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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