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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끝자락이다. 매년 시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라디오에서는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 가사 중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하는 부분이 애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용은 1년 수입 중 대부분을 시월에 벌어들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인데,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노래방에서 이 곡을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아버지도 이런 로맨틱한 모습이 있구나!’ 했었다. 아버지에게 CD를 선물해드린 적이 얼마 없는데, 그중 한번이 이용의 히트곡 모음집이었을 정도로 내게는 깊게 각인된 곡이다. 이용의 곡뿐만 아니라 국내외에는 가사 중에 ‘달(Month)’을 나타내는 곡들이 많이 있다. 바로 그런 곡들을 모아봤다.
Nujabes “Luv Sic Pt.4” Feat. Shing02 A.K.A Shing02
음악사에 유명한 시리즈가 있지만, 일본 힙합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마에스트로 누자베스와 싱고가 합작한 “Luv Sic” 시리즈는 그야말로 믿고 들어볼 만한 작품이다. “Luv Sic” 파트 1, 2, 3은 그야말로 감성을 건드려주는 힙합 곡으로 아직도 많은 힙합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시리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누자베스가 생을 달리한 후, 디지털 싱글로 발매된 “Luv Sic Pt.4”에서는 1년 열두 달이 모두 가사에 담겼으며, 랩을 맡은 싱고는 이 곡이 첫사랑에 관한 곡이라고 밝혔다.
‘Snow Flakes In January. Heart Warm Like February/I Wouldn’t Ordinarily March To The Drum, Play a Fool Like April/1월의 눈송이, 2월처럼 따뜻한 마음/난 내 마음대로 살지만, 4월처럼 바보짓은 안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1월의 곡은 시나위와 김종서의 “겨울비”가 아닐까 싶다.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라는 구절이 나오며, 윤종신이 피처링한 015B의 곡 “1월부터 6월까지”, 신효범의 곡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에서는 ‘널 처음으로 사진으로 본 그날 99년 1월 31일’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또한, 리쌍의 최요삼 추모곡 “챔피언”에서는 최요삼의 기일 이 되어버린 ‘2008년 1월 3일 조금만 더 버텨주길’ 이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Jay-Z & T.I “Swagga Like Us” Feat. Kanye West, Lil Wayne
티아이(T.I)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Paper Trail]과 제이지(Jay-Z)의 싱글로 동시 발매된 트랙이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릴 웨인(Lil Wayne)이 피처링으로 조력했으며, 곡에는 미아(Mia)의 “Paper Planes”의 한 구절이 샘플링되었는데, 51회 그래미 어워드 공연에서는 이 다섯 명이 한꺼번에 출연하여 “Paler Planes”와 “Swagga Like Us”를 시전하기도 했다. 서로 ‘나 잘났네! 수액수액’하는 가사 와중에 티아이는 'Flow Colder Than February With Extraordinary Swag/놀라운 스웩과 함께 2월보다 차가운 플로우'라며, 2월보다 차가운 플로우를 선보인다.
화나의 1집 [Fanatic]의 수록곡 “샘, 솟다”에서는 ‘그래 기억나 2004년 2월 말쯤이었나? 가슴 깊이 열망을 키워나갔던 이 11명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금은 해체된 소울컴퍼니의 시초를 표현하고 있다.
Canibus “Second Round K.O”
엘엘쿨제이(LL Cool J)의 디스곡으로 유명한 캐니버스(Canibus)의 살인적인 트랙 “Second Round K.O”에서는 ‘The Greatest Rapper Of All Time Died On March 9Th/가장 위대한 랩퍼는 3월 9일에 죽었지.’라는 구절이 나온다. 캐니버스가 말한 3월 9일에 사망한 위대한 랩퍼는 노터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일 것이다. 이 날 사망한 다른 유명한 뮤지션으로는 밴드 보스턴(Boston)의 보컬이던 브레드 델프(Brad Delp)가 있으며, 이날 태어난 랩퍼로는 바우와우(Bow Wow)와 칭기(Chingy)가 있다. 그리고 첨언한다면, 필자의 아들도 3월 9일에 태어났다. 많은 힙합 팬들이 노터리어스를 기릴 때 난 우리 아들 생일 축하.
Lil Wayne “Mr. Carter”
4월은 국내에서는 4.19 혁명이 있었던 달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단 하루 거짓말을 해도 용서가 되는 만우절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음악사에도 만우절에 관한 많은 곡이 있다. 국내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류로 평가받던 그룹 플러그(Plug)의 앨범에 “4.19”라는 트랙이 있었는데, 바이오 해저드(Biohazard)와 오닉스(Onyx)가 함께한 “Judgment Night”와 몹시도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허클베리 피와 수다쟁이의 듀오 앨범 [Get Backers]에는 알앤비 보컬 콴(Kuan)이 피처링한 “만우절”이라는 트랙이 있으며, 릴 웨인은 “Mr. Carter”에서 ‘I Call Them April Babies, Cause They Fools/난 걔들을 4월의 아해들이라고 불러 바보들이거든 (만우절을 뜻하는 'April Fool’s Day'를 이용한 펀치라인)’라는 펀치라인을 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4월에 찾아 듣는 곡은 코코어(Cocore)의 “4월”과 푸른새벽의 “April”이다. 딥 퍼플(Deep Purple)의 “April”을 비롯하여 많은 곡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영국 작가 T.S 엘리어트의 詩 “황무지”에 등장하는 이 같은 표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Notorious B.I.G “Respect”
비기의 “Respect”에서 그는 세 개의 벌스에서 엄마 뱃속, 청소년기, 성년기를 가사로 풀어냈다. 그중 1절의 가사('Then Came The Worst Date. May 21st/그 최악의 날이 왔지 5월 21일’)를 통해 자신의 탄생을 표현했다. 1년 열두 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비기의 생일과 사망일이 모두 나왔다.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더 훌륭한 곡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국내에서는 절정신운한아와 디제이 우지(Uzi)가 함께 했던 “고백”이라는 곡에서 ‘5월의 여행의 아름다운 느낌’이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하며, 015B는 “5월 12일”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Montell Jordan “Coulda, Woulda, Shoulda”
90년대 NBA에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있었다면, 흑인음악 씬에는 몬텔 조던이 있었다. 자신의 앨범뿐만 아니라 시스코(Sisqo)의 “Incomplete”, 데보라 콕스(Deborah Cox)의 “Nobody’s Supposed To Be Here” 같은 양질의 트랙을 제공하기도 했던 몬텔 조던의 “Coulda, Woulda, Shoulda”에서는 떠나간 여성을 그리워하며 6월에 데이트를 잡을 수도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In The Afternoon, It Woulda Been So Cool Surprise You With Ice, And Set a Date For Next June/오후에는 쿨하게 보석을 들고 널 놀래주고는 6월의 데이트를 준비했어야 했어.’
아마도 음악 속 화자는 햇살 좋은 5월쯤에 헤어진 게 아닌가 싶다. 노래 끝자락에는 ‘Can I Sing To Ya?’ 하고 노래하는데, 어찌 그녀가 마다할 수 있을까? 동명의 제목으로 셀린 디옹(Celine Dion)의 곡이 있으며, 비슷한 제목인 “Shoulda, Woulda, Coulda”라는 곡을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과 베벌리 나이트(Beverley Knight)가 불렀다. 물론, 네 곡은 서로 전혀 다른 곡이다.
Ne-Yo “So Sick”
대식가들마저 모두 소식하게 만들었던 니요의 “So Sick”이다. 데뷔 싱글 “Stay”는 큰 재미를 못 봤지만, 두 번째 싱글 컷된 “So Sick”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발매된 2006년 당시에 이 곡을 거리 곳곳마다 접했던 본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느낌까지 받았다. 이별한 화자가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슬픔을 느끼지만, 라디오는 끌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 중간에 ‘Gotta Fix That Calender I Have That’s Marked July 15th/7월 15일 달력에 적어놓은 기념일을 고쳐야겠어.’ 라는 부분이 나온다. 과연, 7월 15일은 니요에게 무슨 날이었을까?
Ciara “Sorry”
몬텔 조던도 그렇고 니요도 그렇고 시애라도 그렇고 미국의 알앤비 싱어들은 여름에만 이별하기로 모종의 약속이 되어 있는 건가? 시애라의 다섯 번째 앨범 [One Woman Army] 발매에 앞서 싱글로 나온 “Sorry”에서는 1절부터 정확한 월일이 나온다. 8월 4일부로 헤어짐을 맞이하고는 울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구질구질한 내용의 가사다. 결론은 떠나간 남자에게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한다는 가사인데, 정작 남자가 ‘미안해.’라고 얘기한다면, ‘뭐가 미안한데?’라고 하지 않을까…?
Earth, Wind & Fire “September”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흑인음악 씬의 살아있는 전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큰형님들의 “September”는 매해 9월만 되면, 라디오에 주야장천 리퀘스트되는 클래식이다. 제목 그대로 9월에 있었던 일이지만, 가사를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다. 별 고민 없이 몸 흔들고 싶을 때 들으면 좋은 곡이다. 최근에는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에 흘러 나오면서 영화 속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많은 리메이크 버전이 있는데, 가스펠 싱어인 커크 프랭클린(Kirk Franklin)의 버전을 추천한다. 9월과는 별개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치 미니멀한 “We Are The World”처럼 느껴지는 “Lean On Me”에서 알켈리(R.Kelly),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ry J. Blige), 보노(Bono) 등을 한자리에 소환시키기도 했던 커크는 능력자! 할렐루야 아멘!
Jay-Z “Blueprint”
제이-지의 명반 [Blueprint] 중 히든 트랙(“Breathe Easy”와 “Girls, Girls, Girls Pt.2”)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인 “Blueprint(Mama Loves Me)”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Birth Of My First Nephew. Time To Slow It Down October 21st. Lavelle Came To the world/내 조카의 탄생. 천천히 할 시간 10월 21일 라벨이 태어났지.
’. 첫 조카의 탄생을 노래하던 제이-지도 이제는 어엿한 아이 아빠가 되었다. 세상에 나와보니 아버지는 제이-지요, 어머니는 비욘세(Beyonce)라……에픽하이 “11월 1일”
필자가 방위산업체로 매일 ‘수출의 다리’를 보며, 공돌이 생활을 하던 20대 초반, 매년 11월 첫날이 되면, 찾아가는 술집이 있었다. 녹차 티백을 담가놓은 언 소주와 사케, 각종 튀김을 파는 일식집이었는데, 사장님이 김현식의 광팬이었기에 매년 11월 1일이 되면, 일식집에서는 김현식의 곡이 흘러 나왔고, 난 사장님과 김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술집을 찾곤 했다. 나보다 스무 살은 많았을 사장님은 어린 내가 김현식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선 놀라워하면서도 대견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에픽하이의 2집에 수록된 “11월 1일”은 김현식과 유재하에 대한 추모와 존경의 의미가 담긴 곡이다. 유재하는 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정확히 3년 후, 같은 날 김현식은 간 경화로 생을 달리했다. 음악 속에는 김현식과 유재하의 곡 제목들이 가사로 쓰이기도 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11월에 관한 곡은 역시 건즈 앤 로지즈(Gun’s & Roses)의 “November Rain”.
Will Smith “Will 2K”
12월은 크리스마스에 관한 곡이 많이 있지만, 너무 뻔하다. 1999년 12월 8일에 풀린 윌 스미스의 싱글 “Will 2K”는 보통의 12월 말일이 아닌 새천년을 앞둔 12월 말일을 노래하는 곡으로 케이씨(K-Ci)가 보컬 피처링했으며, 지구 종말의 걱정 따윈 전혀 없어 보이는 아주 신 나는 분위기의 곡이다.
국내에서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소울 트레인 크루의 단체곡 “Y2Soultrain”이 공개되기도 했으며, 곧 품절녀가 될 가수 별이 있지도 않은 “12월 32일”을 노래한 탓에 수많은 군인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매해 12월 마지막 날 찾아 듣는 곡은 클라투(Klaatu)의 “December Dream”이다.
이제 시월이 가고 남면 올해도 딱 두 달 남는다. 리드머 회원 여러분 모두 깔끔한 마무리와 상큼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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