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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이스37 – LA서부터 꿈 키운 힙합 키드, YG에서 꽃 피우다
- 박배건, 송은하 작성 | 2013-04-01 18:35 업데이트 | 추천하기 33 | 스크랩 | 88,637 View
초이스37(Choice37)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미국에서 조직된 언더그라운드 랩 그룹 롱제비티 크루(Longevity Crew)의 멤버로서였다. 2005년 당시 그들의 앨범을 수입했던 한 음반사의 부탁으로 리드머를 통해서도 그룹과 앨범을 소개한 바 있는데, 소소한 반응 끝에 롱제비티 크루는 잊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룹의 프론트맨이었던 초이스37이 가요계에 등장했고, 그것도 다름 아닌 굴지의 레이블 YG 소속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음악 스타일도 이전과는 확 바뀌어 있었다. 그는 돈을 위한 타협이 아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다양한 음악적 감성을 밖으로 터트렸고, YG의 재능 있는 멤버들과 융합하며 탁월한 결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G-드래곤의 “One of a Kind”, 빅뱅의 “Bad Boy”, 이하이의 “1,2,3,4” 등등, 2012년에도 많지는 않지만, 큰 한 방이라 할만한 트랙을 탄생시켰고, 우린 ‘제3회 리드머 어워드’에서 ‘올해의 프로듀서(Producer of the Year)’ 부문 수상자로 초이스37을 선정했다. 그리고 여기 아직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정식으로 한 적 없던 그와 그의 음악 이야기를 공개한다.
리드머(이하’리’): 안녕하세요? 어워드 수상에 이어 이렇게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초이스37(이하’초’): 네, 저도 반가워요.
리: 이름부터 좀 짚고 넘어갈게요. ‘Choice37’의 발음이 ‘초이스 써리세븐’ 맞죠?
초: 원래 발음은 초이스 ‘쓰리세븐’이었어요. 근데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써리세븐’이라고 부르다 보니 지금은 ‘초이스 써리세븐’이 됐죠. (웃음)
리: 그렇군요. (웃음) 힙합 음악에 처음 빠진 시기는 언제에요?
초: 힙합을 처음 들었던 건 MC 해머(MC Hammer)의 [Feel My Power] 앨범이었어요. 그때는 그냥 이런 음악도 있구나 싶었죠. 힙합과 사랑에 빠진 건 웨스트코스트의 갱스터 랩 음악을 들었을 때였어요. 특히, 제가 LA 태생이라 자연스럽게 N.W.A를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 들었을 때 놀랐어요. 욕이 나오는 걸 듣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죠. 원래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프린스(Prince)의 광팬이었거든요. 덧붙이자면, 어렸을 때 마이클 잭슨을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서 악수도 했어요. (웃음)
리: 오, 부럽네요. (웃음)
초: 어쨌든 한국식으로 5학년쯤에 본격적으로 힙합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테이프도 많이 샀어요. 처음 선물받은 CD는 다스 에펙스(Das EFX)의 [Dead Serious]였고, 두 번째 CD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The Low and Theory]였어요. 당시 TV에서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특히, MTV에 빠졌죠.
리: MTV 키드였군요.
초: 네 맞아요. 거의 매일 봤어요. MTV를 통해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언더그라운드 갱스터 랩도 좋아했는데 사우스 센트럴 카르텔(South Central Cartel) 같은 뮤지션도 들었어요. BET 덕분에 나스(Nas)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리: 캬~ 사우스 센트럴 카르텔은 정말 언더그라운드 갱스터 랩계의 전설이죠. 굉장히 다양하게 들었군요.
초: 91년도부터 힙합음악을 쭉 들어왔거든요.
리: LA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으면, LA 폭동도 직접 겪었을 것 같은데, 당시 어땠나요?
초: 아, 저는 한인타운에 살지 않아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저희 아버지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셨죠. 아버지가 자동차 수리하는 가게를 운영하셨거든요. 그런데 흑인들이 다 불태우고 부수고 했었어요.
리: 아… 살벌했네요.
초: 네 꽤….
리: 그럼 힙합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롱제비티 크루(Longevity Crew)로?
초: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아는 형 집에 원타임의 대니, 테디와 함께 놀러 갔어요. 그때 라임 쓰는 걸 시작했는데, 음악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리: 대니, 테디 씨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죠?
초: 매일 같이 점심 먹고 놀러 다니는 친구들이었어요. 테디와는 제가 CD를 사서 제일 먼저 들려주곤 했던 사이었어요. 음악을 공유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저는 대니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전학을 왔고 대니와 먼저 친해졌어요. 그 뒤에 테디가 뉴욕에서 저희 학교로 와서 친해진 거죠.
리: 대니와 테디 씨가 한국에서 원타임으로 데뷔하는 걸 봤을 때 기분은 어땠어요?
초: 정말 신기했어요. 저도 서태지, 듀스의 팬이었거든요. LA에서 맨날 비디오 빌려서 가요프로그램들을 보곤 했죠. 지누션의 [The Real] 앨범에 대니와 테디가 피처링한 트랙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곡이 뮤직비디오로 나왔다 하더라고요. 곡 제목이 “이제 더 이상”인데,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받았죠. 저와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TV에 나오는 걸 보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리: 원타임 데뷔를 위해 한국으로 친구들이 떠날 때 함께 하고픈 생각은 없었나요?
초: 저는 가수가 되고픈 생각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했을 거예요. 제 외모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음악 좋아하는 너드(Nerd)일 뿐이었거든요. (전원웃음)
리: 왜요. 초이스37 씨도 이 정도면….
초: (웃음) 테디는 언제나 인기가 많았어요. LA에선 언제나 간단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만 즐겨 입는데, 테디는 뉴욕 스타일로 팀버랜드 부츠에 팻 팜(Phat Farm) 신상을 입고 다니니까 문화적 충격이었죠. 대니도 인기가 많았는데, 터프가이였고요.
리: 지금의 초이스37 씨의 음악은 롱제비티 크루 때와 많이 달라요. YG에 오면서 변화했는데, YG와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게 된 건지?
초: 2008년 미국에서 롱제비티 크루를 한 이후에 계속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했어요. 일본의 레코드회사와도 잠깐 일하면서 컴필레이션 앨범작업도 함께했고요. 롱제비티 크루의 앨범은 언탭드 사운드(Untapped Sound)라는 회사에서 발매가 되었는데, 제 친구 둘이 만든 회사였어요. 둘이 출자하고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아서 앨범을 내왔는데 롱제비티 크루에서 같이 랩하던 친구가 여자를 만나면서 음악에 소홀해지는 바람에 제가 하는 수 없이 솔로 앨범을 내고 언탭드 사운드의 컴필 작업도 했었죠.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일본에서는 계속 재지한 힙합을 원했기 때문에 주문을 해오는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부담을 느끼게 되었죠.
리: 일본 쪽이 재지한 힙합이 강세긴 해요.
초: 솔직히 지금은 일본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시대가 변하고 음악도 달라지는데 계속 이런 사운드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 기도를 계속했어요. LA에서 굉장히 오래 살아왔지만, 변화가 필요했거든요. 당시 28살에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았죠. 근데 일이 있어서 일본에 갔다가 한국에 들렀을 때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원타임을 시작한 이후로 테디가 바쁘다 보니 연락이 닿지 않았거든요. 아무런 계획 없이 한국의 이모 댁에 잠시 머무는 중에 테디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한국에 왔는데 보고 싶다.’라고. 그리고 답장이 왔는데, 아직도 음악 하냐고, 곡 좀 보내달라고 해서 곡을 보냈는데, 그 곡이 결국, G-드래곤 1집에 수록됐어요. “Butterfly”라는 곡. 이를 계기로 YG에서 현석이 형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2008년 12월부터 YG에서 함께하게 되었어요.
리: 다시 만났다면, 이전에도 양현석 씨를 만난 적이 있었어요?
초: 옛날에 대니와 테디가 원타임에 들어가기 전 두 번째 미팅쯤에 LA에서 함께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2001년에 작업한 비트들을 들고 한국에 왔는데, 현석이 형이 마스터 우랑 같이 작업해보라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아 다시 미국에 돌아온 적이 있죠.
리: 어쩌면, YG에서 데뷔가 좀 더 일찍 이루어질 수도 있었군요.
초: 그럴 수도 있었죠. (웃음)
리: 예전에 이현도 씨와도 작업을 했었죠?
초: 현도 형 2집 [The Saga Continues…]에 수록된 “Accorade (of Hiphop)”에 피처링했었어요. 그 때는 제 이름이 프롤릭스(Prolix) 였어요. 그게 제 첫 랩 레코딩이었고요. 근데 제가 아마추어 같이 랩을 해서 부끄러워요. 그때는 캐니버스(Canibus)처럼 어려운 단어를 썼거든요. 그래서 더 창피해요. (웃음)
리: 이번 ‘리드머 어워드’ 수상 당시 G-드래곤 씨와 호흡이 잘 맞고 편하다고 언급했잖아요? 어떤 측면에서 그런지 좀 더 얘길 듣고 싶은데….
초: 우선 G-드래곤은 굉장히 자유롭고 확실히 창의성이 있어요. 그래서 함께 작업하기 편해요. 아이디어와 컨셉트도 빨리 잡는 편이에요. 좋은 곡을 만들려면 단순히 16마디에 랩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컨셉트가 있어야 하는데, G-드래곤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죠.
리: “One of Kind”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거예요?
초: 회사에서는 매월 ‘비트 미팅’이라고 해서 모든 프로듀서들의 비트를 스튜디오에 모여서 듣는 시간이 있어요. 그때 제가 비트를 만들어서 테디에게 들려준 후에 비트 미팅에 가지고 갔거든요. 사장님이 그 곡을 듣더니 ‘아, 이건 지용이한테 주라.’라고 했어요. 그 곡만큼은 사장님이 직접 지용이한테 주라고 한 거죠.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음악을 다 듣고 직접 결정하는 편이에요.
리: 평소 사장님이 초이스37 씨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피드백 좀 받아봤을 텐데요.
초: 음… 글쎄요. 저는 지용이 첫 앨범의 “소년이여”, “Butterfly” 작업이 끝난 뒤에 다음 곡들 프로듀스를 위해 YG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었잖아요. 그러면서 음악이 뭔가 억지스러워졌어요. 힘이 들어간 나머지 너무 팝적인 곡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사장님이 곡들을 계속 커트했죠.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과 테디가 제게 음악을 만들 때 히트 곡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자유롭고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제 느낌엔 사장님이 언제나 히트 송만 원하고 팝 멜로디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거죠.
리: 히트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군요.
초: 네 맞아요. 곡을 만들 때 솔직한 음악을 해야 하는데, 당시 제 곡들을 듣고 사장님하고 테디는 저의 강박관념을 알아차렸죠. 둘 다 센스가 대단해요.
리: 그러면 지금 YG의 프로듀서들 가운데 서열이 제일 높은 분이 테디 씨 인건가요?
초: 분명히 테디에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하고요.
리: 혹시 YG의 고참 프로듀서 페리 씨 근황도 아시나요?
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 아직도 YG소속인 건 맞는 거죠?
초: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저도 어디에 계신지 궁금해요.
리: 이번에 이하이 씨의 앨범작업에도 참여했는데, 어떤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나요?
초: 목소리가 굉장히 특이하잖아요. 소울풀한 목소리라 작업하기에 편했어요.
리: 이하이 씨에게 준 곡들도 사장님이 다 결정한 곡?
초: “1,2,3,4” 같은 곡도 저와 리디아 팩(Lydia Paek)이 함께 작업하라고 했죠.
리: 원래 만들어 둔 곡이 아니라 이하이 씨를 위한 곡을 만들었군요?
초: 그 곡은 이하이를 생각하면서 직접 만들었어요.
리: 다른 YG아티스트들과 관계는 어떤가요?
초: YG의 분위기는 운동장 같아서 굉장히 좋아요. 복도에 보면 세그웨이(Segway)도 있고 여러 가지 팝 아트 작품들도 걸려있잖아요. 그래서인지 함께 작업할 때에도 재미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와 컨셉트를 잡아가는 과정이 즐겁죠. 영배나 탑도 음악적으로 열정이 넘쳐요. 제가 작업실에 가만히 있으면 음악 좀 들려달라고 찾아오죠.
리: 어느 분이 제일 (음악을 들려달라며) 귀찮게 하나요?
초: (웃음) 영배가 제일 많이 찾아와요.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져요. 항상 에너지가 넘치거든요. 특히, 음악에 대한 센스가 남다르죠. 미겔(Miguel)이나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을 같이 듣기도 하고요.
리: 주로 빅뱅 멤버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군요.
초: 제일 친하기도 하고 잘 통해요.
리: 투애니원(2NE1)은 어떤가요?
초: 투애니원도 좋죠. 그런데 투애니원은 테디가 총괄하는 프로젝트에요. 사장님이 테디에게 일임을 했죠. 그리고 여자라 그런지 스튜디오에서는 자주 못 봐요. 그런데 영배는 놀러 와서 컴퓨터도 쓰고 지용이도 자주 왔다갔다해서 대화가 많죠.
리: 요즘 함께 모이면 주로 어떤 음악을 들어요?
초: 힙합 쪽으로는 에이샙 록키(A$ap Rocky),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함께 듣고요. 알앤비는 아까 말했던 미겔이나 프랭크 오션을 듣죠. 그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의 음악을 들어요.
리: 요즘 등장하는 신예 아티스트의 음악이 주 리스트네요.
초: 요즘 나오는 젊은 피 아티스트들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그 친구들과 연령대가 비슷해서인지 자극을 많이 받더라고요.
리: 대부분 YG의 음악은 아이돌 팬덤을 제외하더라도 팝 팬들과 흑인음악 마니아들까지 사로잡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YG음악의 힘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초: 준수한 퀄리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갈수록 음악을 듣는 귀가 높아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사장님부터 음악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겉으로만 반짝거리는 것보다 솔직한 음악이 어필하잖아요. 우선적으로 지용이나 영배 모두가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니까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아요. 판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심지어 아기들에게 들려줘도 진짜인지 아닌지 알거든요. 음악에 진심이 담겨있는지 아닌지 누구나 알 수 있으니까요.
리: 한국힙합 씬에서는 끊이지 않고 논쟁 거리가 되는 떡밥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샘플링이에요. 힙합음악에서 샘플링에 대해 초이스37 씨의 철학이 어떤지 듣고 싶어요.
초: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하면서 디제이들 옆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더 얼(The Earl)이라는 친구는 저희 크루의 첫 번째, 두 번째 싱글을 프로듀싱했거든요. 그 친구는 정말 비트 디거(Digger)에요. 바이닐 콜렉션도 어마어마해서 집에 놀러 가면, 학교에 다녀온 기분이었어요. 힙합앨범에 샘플링으로 쓰인 곡들의 바이닐을 보여주면서 직접 들려줬기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죠. 아무거나 선택해서 루프시키는 것은 정말 (음악적으로) 아닌 것 같아요. 피트 락(Pete Rock)이나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e) 같은 뮤지션들은 콜렉션이 장난 아니잖아요. 저는 사실 지식이 그렇게 깊지는 않지만, 스네어나 드럼에 쓰인 샘플까지 다 아는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죠.
리: 최근 작업도 샘플링을 고수하는 편인가요?
초: 저는 요즘 드럼 위주의 샘플링을 해요. 드럼은 거의 챱해서 쓰거든요. 그런데 YG에 와서 샘플링을 많이 줄였어요. 제게는 일종의 레슨이죠. 테디는 미디작업을 엄청 잘해요. 저는 애초에 언더그라운드에서 샘플링으로 시작을 해서 신시사이저라면 무그나 베이스만 써왔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걸 미디로 하는데, 미디를 사용해서 샘플링한 느낌이나 바이브 있게 살리는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현재는 미디작업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리: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을 말씀한다면?
초: 어떤 하나의 장르에 구애받고 싶지는 않아요. 분명히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여기오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히트할 수 있는 곡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거에요. 작업하면서도 제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려고 해요.
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초: YG에 와서 많은 축복을 받았어요. 계속해서 이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며 좋은 음악으로 아티스트를 서포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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