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
Artist: LL Cool J
Album: Authentic
Released: 2013-04-30
Rating:
Reviewer: 강일권
힙합 역사 속에서 엘엘 쿨 제이(LL Cool J)만큼 오랜 시간 특별한 하강 곡선 없이 커리어를 쌓아온 랩퍼도 드물다. 그는 1985년, 힙합의 성지라 불리는 데프 잼(Def Jam) 최초의 풀렝스(full-length) 앨범 [Radio]를 발표한 이래 무려 28년 가까이 수많은 여인과 힙합팬의 사랑을 받아왔다. 다른 랩퍼가 했다면, 조롱 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낯간지러운 사랑 이야기도 그가 하면 한없이 섹시하고 로맨틱한 랩송으로 둔갑했고, 그 틈을 비집고 간혹 외부의 공격이 들어올 때면, 기존의 하드코어 랩퍼 못지않은 살벌한 랩핑으로 응수하며 자신이 구축해놓은 영역을 확실하게 보호했다. 그야말로 상업적인 힙합의 극단에 있는 팝-랩과 하드코어 랩 사이를 비슷한 비율로 오가면서도 욕이 아닌 존경을 쟁취한 이는 그를 제외하고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무려 정규 13집이자 약 5년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Authentic]에서도 그는 여전히 전천후 랩퍼로서 분한다. 트렌디한 클럽튠, 달짝지근한 팝-랩, 하드한 붐-뱁 비트 등, 어느 스타일에서도 어색함이 없다. 게다가 아주 초기적, 그러니까 데뷔작인 [Radio](1985)부터 [Mama Said Knock You Out](1990)사이의 자신까지 소환한 것을 비롯하여 오늘날 잘나가는 스타 뮤지션들이 아닌, 진정한 베테랑 뮤지션들을 초빙하며 앨범의 무게감을 높이려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척 디(Chuck D), 찰리 윌슨(Charlie Wilson), 스눕 독(Snoop Dogg), 팻맨 스쿱(Fatman Scoop), 어쓰,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붓시 콜린스(Bootsy Collins), 트래비스 바커(Travis Barker), 지-트립(Z-Trip), 모니카(Monica), 씰(Seal), 여기에 록 뮤지션들인 에디 밴 해일런(Eddie Van Halen), 톰 모렐로(Tom Morello)와 컨트리 뮤지션 브래드 패이즐리(Brad Paisley)에 이르는 이 관록 넘치고 다양한 참여 진을 보라. 무엇보다 엘엘과 찰떡궁합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트랙마스터즈(Trackmasters)가 프로덕션의 절반가량을 책임졌다는 사실은 그의 또 한 장의 클래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본작은 화려한 외양이 낳은 기대를 그 내용물이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반반하다. 사운드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고, 대부분 비트에서는 윤기가 흐른다. 그런데 정작 엘엘의 활약과 음악적인 감흥이 영 밋밋하기만 하다. 기술적으론 잘빠졌지만, 가슴을 움직이는 곡은 찾기 어렵다. 한 마디로 찬의 구성과 재료는 참 좋은데, 정작 조리된 음식의 맛이 매우 심심한 상황인 거다. 가장 대표적인 게 팝-랩 트랙들의 부진이다. 이번에는 엘엘의 랩핑과 비트의 완성도 모두 엇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례로 “Give Me Love”라는 곡을 보자. 씰의 허스키하고 여운 깊은 보컬이 인상적으로 시작을 알리지만, 시대를 너무 거슬러 올라간 듯 감각이란 찾아볼 수 없는 엘엘의 가사와 플로우가 이어지는 순간 감흥은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만다. 달달한 힙합 러브송을 이끄는 엘엘의 랩핑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다소 감정 과잉의 스타일로 일각에서 비판의 지점이 되기도 했으나(예로 “I Need Love”), 90년대 나온 클래식 [Mr. Smith]에서 선보인 담담하면서도 쫀득하게 내뱉는 스타일에 이르러 약간의 비판마저 상쇄하기에 이른다(예로 “Hey Lover”).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흡사 ‘한국형 감성 힙합’에서 들을 수 있는 랩핑과 별다를 바 없는 가사와 플로우로 일관하여 상당한 실망감을 안긴다. 후자에 속하는 유일한 곡 “Take It”을 왜 정규 트랙이 아닌, 디럭스 버전의 보너스 트랙으로 배치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야말로 구성에서부터 뼈아픈 실패다.
그리고 이러한 단점은 기존 엘엘 쿨 제이표 러브송에서 경험할 수 있던 멜로디컬함보다 구성과 진행의 진부함이 먼저 느껴지는 “Closer”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또한, 소울 거성들과 함께한 “Something About You”는 그동안 나왔던 브라스 샘플을 운용한 진취적인 연출의 힙합 트랙을 답습한 데 그치고 있으며, 굉장히 의외의 조합으로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게 했던 두 곡, "Not Leaving You Tonight"과 "Live For You"는 참여 진의 성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데다가 음악마저 평범한 팝 트랙인 탓에 맥만 빠지는 형국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난국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지점은 있다. 피-펑크(P-Funk)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힙합 비트와 효과적으로 만나 어우러지고, 게스트의 적절한 초대(붓시 콜린스와 스눕 독)가 돋보이는 "Bartender Please", 라이브 질감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올드스쿨 비트와 척 디의 무게감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Whaddup”, 신예 미카엘라 실로(Michaela Shiloh)의 매혹적인 보컬이 귀를 잡아끄는, 곡의 완성도 면에서도 본작의 랩 러브송 중 가장 성공적이라 할만한 “Between The Sheetz” 등, 세 곡이 이어지는 라인은 꽤 만족스럽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원래 ‘Authentic Hip-Hop’이었다가 지금의 ‘Authentic’으로 바뀌었다. 완성된 결과물을 듣고 나니 최초의 타이틀은 너무 거창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엘엘의 내공과 멋진 게스트 구성, 그리고 원래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는 (앨범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엘엘의 야심을 생각하면, 더불어 그의 음악적 고향인 데프 잼(Def Jam)과 결별하고 내디딘 첫 발걸음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작에 대한 아쉬움은 더더욱 커져만 간다. 엘엘 쿨 제이는 여전히 존경할만한 힙합 뮤지션이지만, 본작은 그의 역대 커리어 중 최악의 평을 들었던 93년 작 [14 Shots to the Dome]과 함께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P.S 감흥 없는 정규 트랙 두 곡과 보너스 트랙 중 "Jump On It"과 "Take It"의 자리를 맞바꿨다면 조금 나아졌을지도....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강일권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
추천 0 | 비추 0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히 맛깔스럽고, 아직도 팝-랩을 가장 멋지게 소화할 능력을 가진 랩퍼이긴 하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연기 활동도 하되, 랩 씬에서 조금 더 활동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0 | 비추 2
추천 0 | 비추 0
추천 1 | 비추 0
추천 0 | 비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