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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던말릭 & 마일드 비츠
Album: 탯줄
Released: 2015-03-31
Rating:Rating:
Reviewer: 남성훈
믹스테입 [Hashtag(#)] 발표 이후,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에 합류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랩퍼 던말릭(Don Malik)이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팀을 이뤄 발표한 이번 앨범이 펼쳐놓고자 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하며 분명해 보인다. 힙합의 황금기라 불리는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에 기댄 프로덕션으로 스타일의 영역을 선명하게 하고, 이를 통해 신인 랩퍼와 베테랑 프로듀서가 각자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하려는 것이다. 과연 성공적일까? 아니, 이런 방향성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일단 [탯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90년대 힙합' 코드에 대한 인식 자체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힙합'이라는 가치의 맥락 자체가 한국 힙합 안에서 꽤 뒤틀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편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정서가 강하다. 오히려 이를 건너뛰고 '80년대 힙합의 가치를 끌어 보이는 것이 쿨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이유는 뻔하다. 가치의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이유가 크며, 안이한 수준의 붐뱁 비트에 전설적인 아티스트나 추억을 나열하면서 진중한 톤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를 표방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스튜디오 레코딩으로 대중음악에 편입한 힙합은 '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산업화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산업계는 힙합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변주해야 하는지 몰랐다. 따라서 되도록 있는 그대로를 끌어올려 이용해보려는 영악함과 순박함이 공존했었다. 그 결과, 대중은 생경한 멋에 호응했고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상업적 시너지에 탄력을 받아서 랩 기술과 고유한 프로덕션의 성취 자체에 잔뜩 취해있을 수 있었다. 결국, 지역별로 확실한 스타일이 존재하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업적으로도 그것이 유지되던 짧은 시기로 남았는데, 그런 장르 아티스트의 치열함과 상업적 폭발력이 교차하던 시기는 어느 때보다 지역과 아티스트, 그리고 음악이 명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걸작이 많이 탄생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높게 평가받는 앨범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지금도 많이 나오지만, 이처럼 시대적 절묘함과 맞물리며, 전 세계 힙합 애호가들의 문화적 로망으로 자리매김한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힙합 산업계와 작가, 모두가 영민해지면서 상업적 변주와 예술적 가치의 절묘한 협업 수준이 최전방 아티스트들이 따라야 하는 치열함이 되면서 '90년대 힙합 코드가 담긴 작품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은 달라졌다. 힙합을 새로운 영역으로 데리고 간 2000년대 이후, 예전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두고 게으르고 안이한 고집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이는 유독 한국 힙합 팬들 사이에서 더욱 짙어졌는데, 이러한 행보가 비로소 삐딱한 시선 없이 쿨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90년대 힙합에 아무런 적을 두고 있지 않은 '90년대생들이 본인의 스타일로 이를 택했을 때이다. '90년대 힙합의 재현'이라는 거창한 의도, 혹은 책임 의식과 상관없이 하나의 스타일로써 추구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인 것이다.
던말릭은 바로 이런 흐름에 올라탄 랩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미국 힙합 기준의) 황금기는 '96년생인 그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되었고, '90년대 말까지 이렇다 할 힙합 앨범이 거의 없었던 한국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첫 트랙의 제목이 “90’s Freestyle”인 것은 90년대생의 프리스타일로 '90년대 힙합을 컨셉트로 택했다는 선언이자 흥미로운 접근이다. 마치 자신이 황금기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그 적자인양 가사를 써내려 가 민망함을 유발하는 여느 한국 랩퍼들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센스다. 이어지는 “Old School”과 “About Muse”에서 던말릭이 시대의 역행이나 막연한 동경이 아닌 고유의 스타일로 앨범의 성격을 규정해 나가는 작법 역시 깔끔하다. 프로덕션과 후렴구에서 다스 이펙스(Das EFX)의 명곡 “Real Hip Hop”에 영향받았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Old School”을 보자. 던말릭은 특정 시기와 무드를 향한 애정을 한없이 드러내는 한편으로, 당대에 실질적인 지분은 두고 있지 않다는 걸 확실히 하고, 교조적 자세를 취하거나 억지로 가치를 끌어내는 것과도 거리를 둔다. 특히, 이 곡의 비트와 랩은 과도한 레퍼런스 작법이 자주 오마주로 설명되는 한국 힙합의 현실에서 다소 뻔한 듯하면서도 적잖은 의미를 남긴다. 대신 그는 “About Muse”에서 앨범의 컨셉트가 가지는 당위를 재치 있게 풀어낸다. 곡의 후반부에서 방 안의 시간을 되돌리며 동시에 자신은 ‘엄마의 배’로 돌아간다는 식의 표현을 통해 자신과 스스로 택한 스타일을 일치화하거나 아예 앨범의 마지막 “첫울음”으로 출생과 앨범의 프로덕션, 그리고 랩퍼로서 등장을 같이 배치하는 식이다.
던말릭의 이러한 작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는 랩의 기술적 완성도이다. 많은 양의 다채로운 단어를 맹렬하게 욱여넣듯 배치하지만, 절묘하게 설계한 라임으로 박자를 타며 벌스를 뻔뻔하게 빠져나가는 랩핑은 놀라운 순간을 자주 보여준다. 적절한 속도감이 실린 톤의 높낮이로 긴장감을 유발하다가 여유 있는 호흡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천부적인 재능은 뛰어난 랩 기술에 대한 시선과 평가를 모호하게 취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오늘날, 더 주목해 볼 만하다. 더구나 실력으로 조명받은 랩퍼가 데뷔작에서 이를 온전히 보여주는 경우가 극히 드문 한국 힙합 씬에서 던말릭은 적어도 마감된 결과물을 통해 랩퍼로서 수준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런 던말릭의 랩이 온전히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마일드 비츠의 프로덕션이 잘 받쳐준 덕이다. 동부 힙합 특유의 로우한 붐뱁 사운드 안에서도 '90년대 초·중반으로 스타일을 한정하고, 마일드 비츠가 짜낸 명료한 드럼과 베이스의 유려한 운용, 그리고 그 구분점 사이를 채우는 깊은 질감에서 비롯한 안정적이면서 단조롭지 않은 루핑은 던말릭 랩 스타일과 잘 부합한다. 초반 세 곡에서 그 효과는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의 전작 [Beautiful Struggle]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가벼움이 교차한 아쉬운 사운드를 성공적으로 만회했다.
그러나 초반 세 곡의 타이트한 기운을 이어가지 못하는 트랙 배치는 아쉽다. 맥을 끊는 느낌이 강한 인스트루멘탈 “Interlude” 이후, “첫울음”이 흥을 완전히 가라앉히며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상의 약점은 적은 트랙의 EP일수록 더욱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탯줄]은 베테랑의 지원 아래 제대로 발휘된 신예의 랩 실력을 만끽하는 것과 함께 던말릭의 영민함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신선한 결과물이다. ‘90년대 황금기 힙합’이라는 다소 뻔한 컨셉트를 내세웠지만, 이를 앨범을 감상하는데 큰 상관이 없는 부차적 코드로 밀어내면서 결국,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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