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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랩퍼 오디션쇼인 [쇼미더머니] 시즌4의 방송이 한창이다. 긴 경력을 가졌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약한 기성 랩퍼들, 랩퍼 포지션을 강화하려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 등이 참가하면서 [쇼미더머니]의 화제성과 상업적 영향력은 한국힙합 판에서 가장 커졌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완성도는 여전히 처참한 수준이다 보니 비판과 논란 역시 계속 일어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참가자 중 YG엔터테인먼트의 송민호(그룹 ‘Winner’ 멤버)가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의 산부인과 진료에 여전히 지독한 폄하성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나라에서 그런 내재된 편견을 자극해 웃음을 유발하는 저급한 여성비하로 읽힐 수 있는 가사였다(별개로 심사위원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는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촉매로 현재 참가하고 있는 다른 랩퍼들이 적었던 여성비하/혐오 가사 역시 화제가 되자 [쇼미더머니]를 넘어 힙합 가사의 전형성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문제는 논쟁의 방향이다.힙합 가사는 원래 그렇다면서 사실상 거의 끝이 없는 미국 힙합의 예를 가져온다거나 뜬금없이 힙합음악의 탄생부터 설명하려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것도 흑인노예부터 시작하는 괴상한 전개가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운 건 오디션 참가자나 심사위원이 프로덕션 말고도 전반적인 트렌드를 살피며 그에 맞게 반응하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고 문제될 것 없다는 일부 리스너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여성비하/혐오 가사가 어떻게 취급받고 창작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살핀다면, 현 논쟁의 방향이 얼마나 삐뚤어져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길 시작해야 -같은 시대와 상식의 눈높이에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우선 가장 가까운 예로 같은 회차의 [쇼미더머니]에 깜짝 등장한 유명 랩퍼 스눕 독(Snoop Dogg)을 예로 들어보자. 스눕은 1992년 데뷔 할 때부터 여성비하와 혐오 가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 랩퍼였다. 유명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그를 힙합 안에서 여성을 영구적으로 부정적 묘사의 대상으로 만든 주범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도 억울하다는 견해를 밝혔었지만, “내 가사 외에는 내가 무슨 일을 실제로 하는지 그녀는 모른다.”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스눕은 2011년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 생각을 밝힌다. 후에 오프라와 화해했음도 물론이다.“나는 여자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어. 나는 즐기고 있었지. 자, 들어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뭐냐면 우리는 그게 잘못된 건지 모르게 세뇌당했었어. 만약 힘을 가진 위치에 서게 되면 여자들을 (비하와 혐오의 시선으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인) ‘BITCH’로 불러도 된다고 내 생애에 걸쳐서 배웠어. 포주나 잘나가는 플레이어가 된다면 그게 여자를 부르는 마땅한 말이었고, 여자들도 그걸 받아들였어. 하지만 난 이제 성숙했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었어. 나는 완전히 유턴했고, 방향을 바꿨지. 만약 네가 그걸 모른다면 모르는 거야. 하지만 네가 만약 그걸 깨우친다면 너는 변화해야 해. 그게 내가 한 일이야”
스눕 독은 이보다 18년 앞선 1993년, 바이브(Vibe)와 인터뷰에서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나는 어떤 여자를 ‘BITCH’라고 느끼기 전까지 ‘BITCH’라고 부르지 않아.”라는 말로 논의 자체를 회피하거나, “흑인남성들은 자신의 어머니 외에는 다 ‘BITCH’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그건 그냥 단어일 뿐이야. 그 단어와 함께 자란 거라고. 뿌리 뽑긴 힘들어”라며 치부를 들킨 듯 소심하게 (인터뷰 원문: 아이가 궁지에 몰린 듯, 소심하게 대답했다, like a child feeling cornered, feebly respond) 말한다. 이렇듯 미국 랩퍼들의 힙합 안에 만연한 여성비하/혐오 가사의 인식은 변하고 있다.
자, 그럼 조금 더 상황을 넓게 살펴보자. 그리고 현재 상황은 단순히 비하의 의미를 가진 ‘BITCH’와 같은 특정 단어 사용을 자제하는 선이 아니다. 약자비하, 약자혐오에 대한 시선과 판단,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랩퍼들의 인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범죄를 묘사하고 있는 힙합 가사 안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강간을 묘사하는 가사를 유명 랩퍼가 썼다면 절대 사회적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도 납치, 폭력, 대마초 소지 등의 범죄로 얼룩진 릭 로스(Rick Ross)가 유독 강간을 연상시키는 가사에 몇 번이고 사과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가사는 아래와 같다.
‘Put molly all in her champagne, she ain't even know it/그녀의 샴페인에 몰리(*엑스터시)를 넣지. 그녀는 알지 못할 거야./I took her home and enjoy that, she ain't even know it/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서 즐겼어. 그녀는 알지 못할 거야.’
그는 “가사를 오해한 거야. 오역한 거야. 난 내 곡에서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라고 해명했다가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고 “나는 강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강간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사를 쓴 것에 사과합니다.”라고 정중하게 거듭 사과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여성에게 불편함을 주는 해석이 가능한 가사라면 직접적인 표현이 없었거나 언어적 유희로 가사를 구성하였어도 분명히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또한, 랩퍼 리치 호미 콴(Rich Homie Quan)은 ‘Don’t want your ho, just want that cookie from her/네 여자를 원한 게 아냐, 그저 그녀의 쿠키를 원했을 뿐 / She tried to resist so I took it from her / 그녀는 저항했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뺏어버렸지’라는 가사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릭 로스의 것보다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가사였음에도 강간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결국, 곡을 삭제한 후, 자신은 강간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절실하게 해명했다.
*사진: Rick Ross(좌), Rich Homie Quan(우)
여기서 여성비하 가사를 쓴 랩퍼들을 옹호할 때 은유가 담긴 워드플레이일 뿐이었고, 불편함을 느낀 것은 본인들의 피해의식일 뿐이라는 논리가 이제는 얼마나 일차원적인 발상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 자체로 비난을 받아야 할 지점이 되는 것이다. 꼭 여성이 아니어도 자폐증(Autistic)을 빗대어 상대를 조롱한 프리스타일 랩(I’m Artistic, You ni$#as is Autistic)을 했다가 장문의 사과문을 올린 랩퍼 제이콜(J. Cole)의 일화 역시 좋은 사례다. 그저 라임을 맞추기 위한 단어 선택이었다고 해명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물론, 현재 미국 랩퍼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여성 비하적인 표현과 다른 사회적 약자를 건드리며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가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은유적 표현과 비디오, 철저한 기믹을 사용해 용인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중과 미디어,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반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많이 변하고 있고 또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원래 다 그러는데 유명해서’라는 식의 마녀사냥이 아니라,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것부터 그 대상이 될 뿐인 것이다. 대형스타들은 이제 함부로 생각 없이 발언했다가는 경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기업이 커가면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듯이 사회적 약자를 공격한 가사에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식으로 인터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뻔해졌다. 자신의 앨범 안에서 철저한 기믹 설정으로 혐오와 비하코드를 통해 치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대중에게 사회적인 설득력을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자, 다시 [쇼미더머니]로 돌아가 보자. [쇼미더머니]에서 불거진 여성비하 가사 논쟁이 바로 이런 맥락을 벗어날 수는 없다. 스눕 독의 이야기처럼 미국의 많은 랩퍼들이 자라온 환경 때문에 여성비하 단어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국 상황에까지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여 아직도 양성평등을 향해 갈 길이 먼 한국에서 자란 랩퍼들이기에 그럴 수 있고, 아직 그들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밝혔듯이 해당 프로그램은 여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질 낮은 완성도임에도 현재 한국힙합 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데다가 금요일 황금 시간대에 전국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힙합보다 훨씬 커진 공개 오디션 쇼에 나와서 이 오디션을 발판으로 활동하고 싶다면 이전에 쓴 문제가 될법한 가사부터 깔끔히 털어내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있어야 했다. 제작진부터 ‘랩퍼들이 하니까 이런 게 힙합인가 보다.’내지는 ‘일단 내보내고 보자.’라고 할 게 아니라 적절히 편집했어야 했다. 표현의 자유, 힙합가사의 전형성 등등, 수위에 대해서는 사실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기꺼이 선택하는 일부 리스너와는 거리가 먼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담아야 하느냐와 창작자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는 답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에서도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여러 활동을 하는 힙합스타들부터 변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유명 기획사의 소속 랩퍼이기에 더 논란이 되는 것은 억울한 부분이 아닌 당연한 사회의 반응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성비하/혐오 가사를 별생각 없이 사용하며 지지를 받던 랩퍼들은 방송 오디션 쇼에 나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뜨고자 참가를 선택했으면, 최소한 이전의 가사를 어떻게든 털어내고 나왔어야 했고, 전국으로 방송되는 오디션장에서 그러지는 말았어야 했다. 또한, 심사위원인 기성 랩퍼 중 한 명이라도 이를 지적했어야 했다. 힙합 시장의 최선봉에 서 있다는 랩퍼들이 이런 경향도 살피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사고를 쳤으니 누구 탓을 하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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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만 보면, '하지마라'가 정당성 있는 주장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부분은 사회적으로 비판해야지, '예술이다 아니다'를 왜 자기 잣대로 들이 밉니까?
철학과 더불어 예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
예술에 빛과 보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음부와 어두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겁니다.
여기서는 '예술이다 아니다'로 비판할 것이 아니고, 사회 문화적인 관점으로 비판하시는게 옳은줄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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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힙합이라는 것이 미국에서 들어왔고, 정착한 시간이 우리나라 보다 미국이 훨씬 긴 만큼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는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진님께서 쓰신 대로 스눕독이 자신이 시간이 지난 뒤 성숙해졌다고 말했듯이,
우리나라 래퍼들도 과거의 스눕독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여성비하 가사를 랩 한 래퍼나 그걸 그냥 넘어간 심사위원이나 시간이 흐르면 그때 자신이 한 행동들이 썩 옳지 못한 것 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 후에 훨씬 훌륭한 힙합이 탄생할거라고 봅니다.뭐든지 세상에 단번에 완벽한 것은 없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더욱 완벽한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니까요. 문제시 해야 하는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너무 몰아갈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아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뮤지션이라면 후에 더 완벽한 뮤지션으로 거듭나겠죠?아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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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예술및 스포츠등등.. 어딜가나 항상 꼰대 정신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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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비하는 여성들 스스로, 그리고 우리 한국인들 모두가 아직도 행하고 있다는 걸 구글의 빅데이터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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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오원춘이 사형반대하는 인권위원회 느낌. 진짜 실망이네요. 요새 조기치매가 급증한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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