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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Vince Staples
Album: Summertime '06
Released: 2015-06-30
Rating:
Reviewer: 강일권
한때 ‘흑인들을 위한 CNN’이라 불릴 정도로 랩이 실제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게 가장 큰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성공한 랩퍼들을 통해 오늘날 구축된 밝은 분위기와 달리 여전히 게토(Ghetto)는 존재하고, 그 속에서 가난, 인종차별, 폭력에 고통받는 흑인들도 다수 존재한다. 적어도 ‘93년생 랩퍼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에게 게토는 과거가 아닌, 현재다. 그는 작년에 발표한 EP [Hell Can Wait]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지옥 같은 삶을 섬찟한 언어와 탁월한 랩핑으로 표현하여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데뷔한 지 약 4년 만에 나온 이번 첫 정규 앨범에 이르러 그의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 묘사와 자기 고백은 절정에 달한다.[Summertime '06] 속엔 게토에서 자란 22살의 청년이 그동안 살아오며 느낀 두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다. 특히, 빈스의 가사 중 ‘they never taught me how to be a man, Only how to be a shooter (“Summertime”)’와 ‘I'm a gangsta Crip, fuck gangsta rap (“Norf Norf”)’은 이번 앨범의 주제와 정서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라인들이다. 아버지는 물론, 본보기가 될만한 어른들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겨우 15살의 나이에 크립(Crip) 갱단의 일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매곡에서 미화를 싹 걷어낸 채, 최대한 리얼리티에 집중하는데, 그렇기에 본작이 작금의 엔터테인먼트화된 장르적 범주로서 ‘갱스터 랩’에 묶이는 걸 거부한다. 그만큼 어느새 힙합팬들에게 판타지의 공간이 된 컴튼(Compton)과 그 안의 갱스터리즘은 빈스의 랩을 거치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갱스터 랩 속의 처절한 현실적 공간이 된다.
그런 가운데 가사를 관통하는 빈스의 태도는 앨범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보통 그와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부류, 즉,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믹스테입을 공개하며 존재감을 키우다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신진 랩퍼들은 극복과 성공을 더 극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비교 장치로써 슬럼가의 삶을 다루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빈스는 이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여전히 꿈과 희망이 거세된 채 살아가는 어린 흑인들이 많은 현실을 웅변하고, 동시에 자신의 유약한 면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가감 없이 노출한다. 거장 프로듀서 노 아이디(No I.D.)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힙합의 성지 데프 잼(Def Jam)과 계약한 사실에 잠시라도 도취될 틈 따윈 없다는 듯하다.
이를 설득력 있게 하는 건 빈스의 뛰어난 역량이다. 그는 특별히 어려운 단어의 사용이나 복잡한 구조의 라임 설계는 지양하되 수준 높은 은유와 직접적인 묘사를 능수능란하게 번갈아 구사하며, 주제를 전달하고 그 속에서 자연스레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빈스의 리리시즘(Lyricism)은 시종일관 빈틈없이 꽉 조이는 옹골진 플로우를 타고 완성되어 폭발한다. 그중에서도 빈부와 명성 여부에 따라 180도 바뀌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절묘한 대비로 그려낸 “Lift Me Up” 같은 곡이 안기는 쾌감은 실로 대단하다. 더불어 여성을 남자다움의 과시용이 아닌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위로받고 의지하고픈 존재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과 자유로워짐을 비유하는 이중 의미를 내세워 현재의 불안과 과거의 회한을 여자친구에게 털어놓는 “Jump Off The Roof”와 우울한 감성의 보컬을 빌어 혼란스러운 감정을 역시 연인에게 고백하는 “Summertime”은 대표적인 예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그동안 쏟아진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며 앨범의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노 아이디는 디제이 다히(DJ Dahi), 클램 카지노(Clams Casino) 등의 후배 프로듀서들과 함께 조력자로서 임무를 완수했다. 노 아이디는 전반적으로 침울한 무드와 리듬 파트를 강조한 미니멀한 구성의 비트로 빈스의 랩을 빛나게 하는데 주력하면서도 몇몇 곡에선 신스, 혹은 샘플을 사용한 특유의 극적인 반전을 가미하며 프로덕션적으로도 서사를 만들어낸다. 폴란드의 전설적인 록 뮤지션 체스와프 녜멘(Czesław Niemen)의 “Nie Jesteś Moja”를 절묘하게 차용한 “Jump Off The Roof”라든지 다채로운 퍼커션 위로 기타 리프와 음울한 스트링 샘플이 교차되는 “3230” 등이 인상적이다. 피처링도 상업성이나 대중성을 고려한 것이 아닌, 곡의 컨셉트와 무드에 맞게 이루어졌다. 특히, 돋보이는 건 노 아이디가 지원하는 두 명의 걸출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스노 앨레그라(Snoh Aalegra)와 즈네이 에이코(Jhené Aiko)다. 이들의 보컬은 가사와 플로우 면에서 빈스의 랩이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거나 폭주하기 직전에 등장하여 그를 어루만지고 달래는 역할을 하는데, 이번 앨범이 얼마나 구성의 묘에 신경 썼는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이상의 장점들과 더불어 [Summertime '06]이 더 흥미로운 건 오늘날 작가 정신 아래 블랙 커뮤니티와 미국 사회를 다룬 일련의 걸작들, 예를 들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루페 피애스코(Lupe Fiasco), 제이콜(J. Cole) 등의 앨범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풀어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마치 ‘현재를 문학적인 장치로 미화하지마. 이게 현실이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여기서 어느 쪽이 더 맞고 뛰어난가를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각각 뮤지션이 의도한 바를 얼마나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담아냈는가이며, 빈스 스테이플스의 이번 앨범이 아주 끝내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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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을 느낄 수 있었던 오랜만에 값진 앨범이었습니다.
멋진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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