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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와비사비룸
Album: 물질보다정신
Released: 2015-10-07
Rating:
Reviewer: 남성훈
올해 초 EP [비밀꼴라쥬]를 발표했던 힙합 그룹 와비사비룸이 두 번째 EP를 발표했다. 이들의 존재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두 랩퍼 짱유(JJANG YOU)와 제이플로우(Jflow)는 서로 다른 듀오 일랍(ILLAP)과 머니메이커즈(Money Maker$)로 앨범을 발표했었다. 특히, 짱유와 프로듀서 돌이(DOL)로 이루어진 일랍의 데뷔작 [일랍]은 신선한 접근을 민망하지 않은 완성도로 잘 마감하여 주목받은 바 있다. 그리고 프로듀서 에이뤠(ARwwae)는 아마 이번 [물질보다 정신]을 통해 가장 주목해야 할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각인될 것이다. 세 멤버의 짧은 경력을 살펴보면 그들의 공통된 특질과 방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감한 접근과 감각적인 표현의 프로덕션과 랩으로 대안적이라 불릴만한 새로운 감상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런 특질 때문인지 앨범 내 일부 부자연스러운 흐름이나 랩의 완성도에서 격차가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고, 뚜렷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들의 내재된 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데뷔작 발표 후 8개월 만에 나온 [물질보다정신]은 이런 약점을 완전히 보완해 낸 것은 물론, 와비사비룸이 추구하는 고유한 매력은 극대화하면서도 놀랍도록 단단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모든 트랙의 프로덕션을 책임진 에이뤠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멜로디와 미니멀하게 진행되는 루프를 절묘하게 배합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사운드를 변칙적으로 등장시키며 고유의 무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몽환적이면서 차분한 비트에선 늘어지지 않게 긴장감을 부여하고, 반대로 속도감을 지닌 트랙에선 긴장을 풀게 하는 능력은 그가 자신만의 색을 지닌 수준급 프로듀서임을 잘 보여준다. “분장”에서 “물질보다정신”까지 이어지는 완급조절 잘 된 트랙 배치 역시 만족스럽다.
이렇듯 나른하게 잘 짜인 무드에 제대로 올라탄 짱유와 제이플로우의 랩 역시 발군이다. 발음을 흐리고 호흡을 변칙적으로 조절하며 만들어내는 플로우는 작위적인 자극을 주지만, 뛰어난 전달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듯 치밀하게 짜인 라임 역시 적지 않은 순간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이들이 랩의 감흥을 반감시키면서까지 자주 사용하는 불필요한 영어 문장 하나 없이 그중 단연 돋보인다는 사실도 이들의 실력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더해서 짱유가 랩을 정신 없게 뱉어낸 뒤 제이플로우가 비슷한 듯 정돈된 톤으로 곡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진행은 개별 곡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줬다.
그들의 랩, 나아가 앨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고유함을 부여한 단어선택이다. 약간은 뜨악하게 다가오는 타이틀 [물질보다정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앨범에서 멋스럽게 그 영역을 차지해나간다. 다소 맥락이 사라진 화법과 단어의 나열은 약간의 공포감, 혹은 이물감을 주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소를 유발하기도 한다. 앨범을 여는 “분장”과 “나그참파”, “동그라미”는 이러한 묘한 표현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담아낸 트랙들이다. 텍스트 그대로를 단순히 ‘병맛’ 코드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접하는 경험을 맛보듯 사뭇 진지한 느낌을 받는 것은 랩의 기술적 완성미를 통해 그들만의 뻔뻔함이 멋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물질보다정신]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고유함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향한 치열함을 잃지 않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멋들어진 결과물이다. 매력적이고 수준 높은 프로덕션과 한순간도 놓치기 어려운 흡입력 있는 랩 퍼포먼스, 그리고 이 두 요소가 뚜렷한 고유색으로 덮인 힙합 앨범을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와비사비룸은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이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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