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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전드'의 범람, 쿨하게 넘길 수 없는 이유
강일권 작성 | 2015-11-19 19:4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62 | 스크랩스크랩 | 53,297 View



글: 강일권



3년 전, 난 단순한 '신인'과 구분되어야 할 '신예'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한국대중음악계의 현실을 비판한 바 있다('개나 소나 신예되는 세상, 신예는 아무나 되나', http://bit.ly/1SXCUEg). 그런데 신예 못지않게 분별없이 마구 부여대는 호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레전드(전설)'. 많아도 정말 너무 많다.

 

지난 15일에 방송된 MBC [일밤-복면가왕]과 이후 나온 매체들의 기사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당 방송분의 마지막 무대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 '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린 현진영이 장식했다. 노래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막은 그를 가리켜 '천재 힙합 뮤지션'이라 칭했고, 다음날 매체들은 '레전드', '비운의 천재' 등의 수식어를 동원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는 현 한국의 매체들이 얼마나 대중음악사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상태에서 수식어를 남발하는지 또 한 번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진영은 한국에서 랩/힙합과 알앤비 음악을 처음 시도한 1세대 중 한 명이며, 그의 보컬 실력은 그동안 과소평가된 감이 있다. 그런데 단지 그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현진영은 '레전드' '비운의 천재'도 아니다. 그의 커리어 역시 한국의 많은 '90년대 인기 가수들처럼 (법적 소송이나 판결 난 적이 없어서 표절이라 할 순 없지만) 표절이나 다름없는 커리어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대표곡 "흐린 기억 속의 그대"부터 피펑크(P-Funk) 밴드 팔러먼트(Parliament) "Flash Light"의 보컬 멜로디 부분을 베껴서 주 인스트루멘탈 일부를 만든 것이며, 3집의 타이틀곡이었던 "두근두근 쿵쿵"은 랩 그룹 렉스 앤 에펙트(Wreckx-N-Effect)의 히트곡인 "Rump Shaker"에서 후렴구를 그대로 베꼈다. 또한, "현진영 Go 진영 Go" 역시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 "Ninja Rap (Go Ninja Go)"의 후렴구를 베낀 곡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이탁과 듀오로 냈던 IWBH "Stop Aids"란 곡이다. 스눕 독(Snoop Dogg)의 명작 [Doggystyle]에 수록된 "Serial Killa"를 민망한 수준으로 베꼈는데, 비트뿐만 아니라 랩에서 원곡의 'suicide~ suicide~' 부분을 '숨어살어~ 숨어살어~'로 베껴 부른 부분은 실소가 나올 정도다. 닥터 드레(Dr. Dre)가 만든 스눕의 곡도 실은 오하이오 플레이어스(Ohio Players) "Funky Worm"을 샘플링했는데, "Stop Aids"는 샘플링하여 만든 스눕의 곡을 베낀 셈. 이건 그야말로 기만 수준이었다.

 

그 배경이 무엇이었든 그가 힘겨운 개인사를 겪은 건 분명 위로할 일이며, 과거를 극복하고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음악을 만드는 건 격려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훌륭한 음악을 발표한다면, 박수를 보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레전드' '비운의 천재' '시대를 앞서 간 뮤지션'이니 하는 건 명백한 수식어의 오남용이며, 언론의 직무유기다 




 


시기상 현진영만을 걸고 넘어가긴 했지만, 사실 한국 매체들이 툭하면 이처럼 잘못된 찬사를 남발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8~90년대 활동한 아티스트들을 거론할 때면 조건반사라도 하듯이 레전드로 추켜세워주기 바쁘다. 하지만 많은 이가 한국 가요의 황금기라고 말하는 1990년대는 냉정하게 말해서 표절과 카피의 천국이었던 시기다(물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러 작곡가들이 일본, 혹은 미국 대중음악의 멜로디를 앞다투어 베껴대거나 합법적인 절차 없이 원곡을 무단도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구나 '월드와이드웹(WWW)'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발달하기 이전, 고작 TV와 라디오 채널 몇 개를 통해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대놓고 베껴도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큰 인기를 누린 가수들 대다수의 곡 중엔 표절이라 해도 무리 없거나 그 경계를 교묘하게 피해간 경우가 수두룩하다(머지않아 이 같은 한국 가요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정리해볼 참이다.). 심지어 문화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서태지마저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악의적인 표절, 혹은 카피 곡을 보유하거나 음악적으로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에도 단지 데뷔연도가 이르고 인기 좀 끌었다는 이유로 '레전드'가 되는 현실이라니, 이 얼마나 얄팍한가?! 다수의 훌륭한 음악을 통해 확실한 발자취를 남기고, 수십 년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는 세계대중음악계의 진정한 전설들을 떠올리면, 민망함은 더해진다.  

 

기록이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기록이 미래엔 한국대중음악의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왜곡된 기사나 평가 한 줄이 후대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고 사실로 굳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이 아닌 걸 공식적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행위의 부당함과 무서움은 이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통해 충분히 체감 중이지 않은가. 지금 대중음악을 다루는 대다수의 매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와 다름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예 매체가 다 그렇지.', '그게 하루 이틀 일인가, 의미 없어.'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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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등록
  • Trippy
    1. Trippy (2015-12-20 03:44:49 / 211.45.249.***)

      추천 0 | 비추 0

    2. 진짜 너무 좋은글..
  • jojodancer
    1. jojodancer (2015-11-20 10:29:13 / 1.212.30.***)

      추천 4 | 비추 0

    2. 애초에 힙합씬 대부 취급받는 DT부터가 The Pharcyde의 Passing Me By 비트 그대로 가져다가 랩 스타일까지 베껴서 녹음한 곡을 SBS 웃찾사 아웃트로로 팔아먹은 양반이니..
  • 양지훈
    1. 양지훈 (2015-11-19 20:06:40 / 1.241.76.***)

      추천 7 | 비추 0

    2. 저의 경우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에 TV를 통해 [너의 모습 나의 모습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을 외치는 현진영을 봤고, 한참 지나서 대학생이 되어서야 Rump Shaker를 알게 되었습니다. 현진영 참 양심이 없는 양반이었구나... 했죠.

      대중이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 개개인이 똑똑해야 정치적 횡포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국민이 대중문화를 접하고 즐길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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