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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Kendrick Lamar
Album: untitled unmastered.
Released: 2016-03-04
Rating:
Reviewer: 황두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그동안 발표한 3장의 앨범으로 현재 씬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 데뷔 앨범 [Section.80]를 통해 단번에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부흥시킬 적임자로 떠올랐고, 닥터 드레(Dr. Dre)의 애프터매스(Aftermath)와 계약하며 메이저로 떠오른 뒤 발표한 정규 1집 [good kid, m.A.A.d city]는 뛰어난 완성도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1집의 대성공에 의한 부담감 속에서 작년엔 소포모어 징크스를 박살낸 또 한 장의 클래식 [To Pimp a Butterfly]를 발표했다.[TPAB]는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향수를 결합한 [good kid, m.A.A.d city]와 달리 싸이키델릭 펑크(psychedelic funk), 비밥 재즈(be-bop jazz), 쥐펑크(g-funk), 소울, 일렉트로닉, 붐뱁, 가스펠 등등, 블랙뮤직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장르를 아우른 사운드로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대다수의 트랙을 책임진 사운웨이브(Sounwave)의 프로듀싱은 물론, 여러 선배 뮤지션들과 협업이 사운드에 풍미를 더했고, 다양한 비유와 장치를 통해 흑인사회 전반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가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 중심에 켄드릭의 신들린 듯한 랩핑이 있었다는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로부터 1년 후 깜짝 공개한 미공개 곡 모음집 성격의 EP [untitled unmastered.]는 이러한 [TPAB]의 기조를 이어가는 비사이드(B-side)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완성도가 굉장하다는 사실이다.
켄드릭은 본작에서 [TPAB] 이후, 여전히 암울한 사회 상황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낸다. 피치다운된 빌랄(Bilal)의 끈적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Untitled 01”에서는 지옥처럼 변한 현실을 과장되게 이야기하며 이를 외면하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Untitled 02”에서는 신에게 거드름을 피우며 현실에 적응한 위악적인 모습을 보이며, “Untitled 03”에서는 아시안, 인디언, 흑인, 백인들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믿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재기한다. 특히, 랩으로 성공하려는 흑인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백인의 모습에서는 전작에서 그려낸 흑인들이 처한 ‘현대판 노예’적인 상황을 다시 한 번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앨범에서 가장 짧은 트랙인 “Untitled 04”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교육에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후반부에는 좀 더 개인에 초점을 맞춘 트랙들이 배치되어 있다. TDE의 수장인 펀치(Punch)와 제이락(Jay Rock)이 참여한 “Untitled 05”는 전작의 “u”에서처럼 스스로를 의심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개인적인 맥락을 넘어 앞선 트랙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무력한 개인으로 표현된다. 그런가 하면, “Untitled 06”에서는 본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연인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i”와 같이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세 파트로 이루어진 “Utitled 07”에서는 [TPAB]를 발표한 이후 공고해진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고 다음 앨범을 예고하기도 하는데, 마지막 파트에서는 “Untitled 04”의 멜로디를 리프레이즈하고 잼 세션처럼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작업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이는 마치 일종의 작업 비하인드 씬과 같은 느낌을 주어 앨범의 컨셉트를 부각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Utitled 08”에서는 물질적인 것만을 좇는 랩퍼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며 스스로를 한껏 과시한다. 이렇듯 전작의 주제의식을 유지하되 이를 살짝 비틀어 동어반복을 피하고, 열린 결말로 다음 앨범을 은근히 예고하는 구성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서사적으로도 효과적이다.
미공개 곡들을 모았음에도 트랙들이 흡사 계획된 앨범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유기적인 연결을 자랑하는 데에는 [TPAB]의 각 트랙을 연결하던 시와 같은 장치들이 한몫하고 있다. 힙합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인 ‘Hip Hop Hooray’를 패러디한 ‘Pimp Pimp Hooray’라는 구절은 대표적이다. “Untitled 02”와 “Untitled 07”의 인트로, “Untitled 08”의 아웃트로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것과 동시에 [TPAB]의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동전의 양면 같은 구절은 전작에서 희망을 엿봤음에도 여전히 암울한 상황을 노래하는 앨범의 전체 주제와도 맞물린다. 더불어 “Untitled 04”와 “Untitled 07”의 세 번째 파트에 등장하는 멜로디 라인은 켄드릭이 앨범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교육’이라는 해결책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절묘한 지점이다.
앨범의 프로덕션 또한 [TPAB]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전작에서는 사운웨이브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면, 본작은 태생적인 특성상 각기 다른 프로듀서의 곡이 모여있다. 테레스 마틴(Terrace Martin), 빌랄(Bilal), 썬더캣(Thundercat), 안나 와이즈(Anna Wise) 등이 참여했고, 다 인턴즈(Da Internz)가 프로듀싱을 맡아 재즈의 기운을 풍기는 “Untitled 03”, 씨로 그린(Cee-Lo Green)의 보컬이 매력적인 보사노바 재즈 트랙 “Untitled 06”, 펑키한 리듬과 신시사이저가 전작의 “King Kunta”를 연상시키는 “Untitled 08” 등은 대표적으로 [TPAB]의 기조를 잇는 트랙들이다. 테레스 마틴은 “Untitled 05”를 프로듀싱하고 다수의 트랙에 혼(Horn), 키보드(Keyboard) 등등, 악기 연주로 참여하여 풍미를 더해주었다. 한편, 스위즈 비츠(Swizz Beatz)의 아들 이집트(Egypt Daoud)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Untitled 07”는 스위즈를 비롯해 카르도(Cardo), 영 익스클루시브(Yung Exclusive), 프랭크 듀크(Frank Dukes) 등이 프로듀싱을 맡아 세 파트를 구성했는데, 각기 다른 분위기의 파트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약 8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untitled unmastered.]는 미발표곡을 모아놓은 앨범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TPAB]와 주제나 음악적인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으며, 구성적으로도 치밀하다. 이처럼 팬들을 위해 보너스 격으로 발표하는 앨범에서도 켄드릭 라마의 뛰어난 재능은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본작은 지난 2002년에 발표된 나스(Nas)의 [The Lost Tapes]와 함께 힙합 역사상 최고의 미발표곡 모음집임과 동시에 켄드릭의 묵직한 커리어에 더욱 힘을 실어준 또 한 장의 멋진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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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똥꼬빨 실력이나 있을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