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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Westside Gunn
Album: Flygod
Released: 2016-03-11
Rating:Rating:
Reviewer: 강일권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 씬이 낳은 붐뱁(Boom Bap) 스타일은 한동안 주류에선 완전히 잊혔으나 그 명맥이 끊긴 적은 한 순간도 없다. 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 씬에선 매해 붐뱁 트랙들이 쏟아졌으며, 조이 배드애스(Joey Bada$$)의 프로 에라(Pro Era)가 등장한 2012년즈음부터는 뉴욕 출신의 몇몇 신진 아티스트들이 붐뱁 리바이벌을 이어갔다. 여기 버팔로 출신의 랩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도 붐뱁의 적자임을 드러내며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 신예다.이름만 보면, 무심결에 웨스트코스트 힙합 아티스트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엄연히 뉴욕 출신. 고향인 버팔로가 뉴욕주의 서부에 있기 때문에 ‘웨스트사이드’를 넣었으리라 추정한다. 스스로 ‘스트리트 백팩커(Street Backpacker)’임을 자처할만큼 거리의 삶에서 얻은 지식과 ‘90년대 힙합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뭉친 웨스트사이드 건은 석장의 ‘Hitler Wears Hermes’ 믹스테입 시리즈와 브루클린의 실력자 스카이주(Skyzoo) 등과 작업하며 힙합 팬들의 가시권에 진입했다. 그런 가운데 발표된 데뷔 앨범이 바로 [Flygod]이다.
여전히 웨스트사이드 건과 절반 이상의 프로덕션을 책임진 대링거(Daringer)의 이름은 생소하겠지만, 힘을 보탠 이들의 이름은 꽤 쟁쟁하다. 언제나 기대를 품게하는 베테랑 알케미스트(Alchemist)와 21세기 붐뱁의 기수라 할만한 두 프로듀서, 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과 스태틱 셀렉타(Statik Selektah)가 각자 1곡씩 비트를 선사했으며, 대니 브라운(Danny Brown), 락 마르시아노(Roc Mariano), 스카이주(Skyzoo), 액션 브론슨(Action Bronson) 등의 실력자들이 랩 피처링을, 게다가 불세출의 턴테이블리스트 디제이 큐벗(DJ Qbert)까지 조력했다.
비록, 킬링 트랙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밀도 있는 붐뱁 사운드가 만족스럽다. 눈에 띄는 건 둔탁한 드럼을 중심으로 로우(Raw)한 질감에 중점을 둔 비트와 리듬 파트를 가라앉힌 다음 샘플 프레이즈를 부각한 비트로 양분된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본작에도 참여한 락 마르시아노가 본인의 앨범에서 선보여 깊은 인상을 남긴 작법이기도 하다. 종종 이 같은 스타일을 들려준 알케미스트는 물론(“Dudley Boyz”), 대부분 묵직하게 드럼을 깔고 들어가던 아폴로 브라운도 이번엔 후자 쪽의 스타일을 구사했다(“Mr. T”). 그 사이사이로 대링거의 때론 사이키델릭하고 때론 팽팽한 기운을 품은 붐뱁 비트들이 빛을 발하며 무게중심을 잡는다. 어느 쪽이든 웨스트사이드 건의 힘 있는 랩핑을 받쳐주고자 했다는 게 엿보이며, 적절히 교차 배치되어 흐름도 좋다.
이같이 탄탄한 프로덕션 안에서 주인공 웨스트사이드 건은 가까웠던 동료의 생명을 앗아간 비정한 거리와 갱스터의 삶, 그리고 브래거도치오(braggadocio/*필자 주: 자기 과시, 특히, 일종의 ‘허풍’을 가미한 과시)를 담아 랩을 뱉는다. 간간이 스토리텔링 구성을 취한 벌스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만, 가사는 전체적으로 평범한 편인데, 흥미로운 건 랩핑 자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언뜻 AZ(에이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AZ는 웨스트사이드 건이 팬이라고 밝힌 세 랩퍼 중 한 명이기도 한데(다른 둘은 Nas와 Raekwon), 톤과 플로우의 진행에서 꽤 비슷한 지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때 나스(Nas)의 또 다른 자아로 의심받았던 유어 올드 드룩(Your Old Droog)이 피처링한 “Vivian at the Art Basel”에선 오묘한 감흥이 전해진다.
그렇다고 웨스트사이드 건이 AZ의 카피캣은 결코 아니다. 비트 위를 가볍게 달려가듯 뱉는 AZ와 달리 그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쥐어짜는 식의 랩핑을 전개하는데, AZ로부터 영향받아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Gustavo”, “Over Gold”처럼 비교적 템포가 느리거나 “Hall”, “Mr. T”처럼 리듬 파트보다 샘플 프레이즈를 부각한 비트 위에서 더욱 도드라지며, 그 때문에 곡들을 쭉 듣다 보면, 어느 샌가 하반신 쪽에 힘이 바짝 들어가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같은 랩 스타일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시종일관 빡세게 짜내는 식이다보니 전곡을 듣다보면, 피로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무려 13곡에 포진한 게스트 진이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할 법도 하지만, 동향의 파트너 콘웨이(Conway)와 이전에 합을 맞췄던 스카이주를 제외하면,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더불어 취약한 후렴구 메이킹도 아쉽다.비록, 약점이 노출되긴 했으나 웨스트사이드 건은 계속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는 랩퍼다. 데뷔 앨범으로써 이 정도면 음악적으로 좋은 성과라 할만하며, 무엇보다 붐뱁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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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앨범도 좋은데 다음엔 제대로 컨셉잡고 러닝타임 짧게 가져가면 더 좋을것 같아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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