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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wenty88(Big Sean & Jhené Aiko)
Album: Twenty88
Released: 2016-04-01
Rating:
Reviewer: 강일권
한때 하드코어 랩퍼들로부터 상업적이기만 하고 말랑말랑하다는 이유로 맹비난받았던 랩과 노래의 조합은 장르 고유의 매력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완성도를 담보한 곡들이 꾸준히 나온 덕에 힙합의 주요 스타일 중 하나가 되었다. 자연스레 아티스트와 골수 팬들의 편견도 사그라졌는데, 2001년에 발표된 자룰(Ja Rule)과 아샨티(Ashanti) 콤비의 "Always on Time"은 이러한 분위기가 낳은 대표적인 ‘랩 + 노래’ 형식의 힙합 러브송이다. 둘은 이후에도 정기적인 작업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화학반응이 검증되자 합작 앨범 얘기까지 나왔으나 아쉽게도 성사되진 않았다. 오늘날 빅 션(Big Sean)과 즈네이 아이코(Jhené Aiko) 콤비는 흡사 당시의 자룰과 아샨티를 보는 듯하다. 다만, 확실히 다른 점이라면, 션과 아이코는 앨범을 만들었다는 거다.“Beware”, “I Know” 등의 곡에서 이미 인상적인 합을 자랑한 두 아티스트는 이번에 아예 투웬티에이티에잇(TWENTY88)이란 듀오로 분하여 전보다 더욱 끈끈한 콜라보(Collabo)를 선사한다. 팀 명이 지닌 의미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아이코가 이번 앨범에 대해 “’70년대의 미학을 살려 만들었지만, 우린 미래에 있어.”라고 한 것에서 먼 미래를 상징한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아이코가 언급한 음악적 방향성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70년대 알앤비 그룹 더 내츄럴 포(The Natural Four)의 "Love's Society"를 샘플링하여 현대의 사운드를 입혀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Talk Show”를 제외하면, 본작을 관통하는 건 이미 수없이 들어온 PBR&B와 클라우드 랩 사운드다. 중요한 건 아티스트가 추구한 바의 구현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흔한 스타일의 음악임에도 [Twenty88]가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본작에서 빅 션과 즈네이 아이코는 각자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남녀 사이의 관계를 파고든다. 만남, 섹스, 권태, 이별, 전부를 아우르는데, 둘은 가상의 연인으로 분하여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서로의 조언자가 되는가 하면, 남남의 시각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길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들의 젠더에 따른 이야기는 재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저 동어반복에 그치기도 한다. 연인 사이의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을 데자뷰 현상에 빗댄 "Déjà Vu"는 전자의 좋은 예다. 빅 션이 전 연인이었던 배우이자 가수 나야 리베라(Naya Rivera)와 얽힌 이야길 풀자 다음 벌스에서 아이코가 대역과 본인의 미묘한 경계에 서서 맞받아치는 구성은 꽤 흥미롭다. 연인 관계에서 오는 압박을 남녀의 시각에서 그린 “Selfish”라든지 토크쇼 형식을 빌어 서로 거침없는 논쟁을 벌이는 컨셉트의 “Talk Show”도 인상적이다.
본작의 강점은 컨셉트나 가사보다도 프로덕션과 두 아티스트의 차진 궁합에서 비롯한다. 일단 전반적인 프로덕션의 초점은 즈네이 아이코에게 맞춰진 편이다. 이미 둘의 곡을 만든 적 있으며, 본작에서 가장 많은 곡을 맡은 프로듀서 키웨인(KeY Wane)은 빅 션과 작업할 때보다 더욱 감성적인 무드의 연출과 멜로디를 살리는 데 주력했고, 디테일(Detail), 플리파(Flippa), 토미 브라운(Tommy Brown) 등도 이와 비슷한 노선을 취했다. 그 결과 아이코의 지난 앨범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PBR&B 이전의 알앤비 색이 더해졌고, 멜로디의 짜임새가 탄탄해진 곡이 들어찼다. 이에 걸맞게 아이코는 그 어느 때보다 유려한 멜로디와 플로우의 보컬을 구사했으며, 빅 션 역시 본인의 앨범에서 간간이 선보인 멜로딕한 랩핑을 유감없이 펼쳐놓았다. 아이코의 역할이 더 부각되긴 하지만, 곡에 따라 비중은 적절히 조율되었고, 일관된 무드 아래에서 모든 파트가 차지게 맞물려있다.
엑스케이프(Xscape)의 “Softest Place on Earth”의 도입부 코러스를 샘플링한 뒤 찹드 앤 스크류드(Chopped and Screwed)하여 룹을 완성한 첫 곡 "Déjà Vu", ‘40년대 명곡 “Sentimental Journey”를 감각적으로 커팅하여 만든 "On the Way", 후반부의 그윽한 변주를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는 "Memories Faded", 동요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런던다리)”의 라인을 센스 있게 차용한 후렴구가 인상적인 마지막 곡 "London Bridge" 등을 비롯한 전곡이 다 그렇다. 특히, "Memories Faded"의 변주는 그 자체의 감흥 말고도 마치 "London Bridge"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처럼 절묘한데, 그 덕에 근사한 마무리가 되었다.
[Twenty88]은 두 아티스트의 화학 반응이 만족스럽게 일어난 응집력 있는 앨범이라 할만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수없이 들어온 스타일의 음악이라는 한계를 멜로디와 구성의 힘, 그리고 아티스트의 좋은 합을 통해 극복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런 수준의 감성 힙합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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