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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Kodak Black
Album: Painting Pictures
Released: 2017-03-31
Rating:
Reviewer: 조성민
미국의 유력 힙합 잡지인 더블엑셀(XXL)이 2016년에 선정한 올해의 신인 리스트(XXL Freshman Class)는 좋게 말하면 신선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극단적인 호불호를 야기할 만큼 예외적인 인물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에 대해 조금 가혹하게 말한다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스트에 선정되기 어려울 법한 실력을 갖춘 듯했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이란 기교와 발성, 리리시즘으로 대변되는 통상적인 의미의 랩 능력이다. 물론, 해당 리스트의 선정 기준이 철저하게 랩 실력에 국한한 것만은 아니다. 주목할 만한 신인들을 뽑는 것이 본 취지이기에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다만, 당시의 반응은 꽤 살벌했었다(특히, 싸이퍼 영상이 발표된 후 그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그런데 시간이 흐른 현재 보편적인 의미의 랩 실력보다 캐릭터와 부수적 장치를 월등히 어필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이 있다.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릴 야티(Lil Yachty), 트웬티원 새비지(21 Savage) 등이 그렇다. 이들이 받는 조명과 현재 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현 힙합 트렌드가 얼마나 바뀌었고 어떤 요소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작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코닥 블랙(Kodak Black) 역시 이들의 범주에 속한다.
블랙이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이제껏 발표한 믹스테입이나 싱글보다는 너덧 번의 불미스러운 사고다. 심지어 본작을 발표했을 당시 그는 플로리다의 구치소에 갇힌 상태였다. [Painting Pictures]에는 그의 이력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처절한 성장배경이 잘 묘사되었고, 그 덕에 어느 정도 성공적인 데뷔작으로 귀결되었다.
블랙의 랩은 처음부터 친숙하게 들리는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힘 풀린 목소리로 발음을 흘려보내듯 희미하게 단어들을 처리하는 탓에 딜리버리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플로우의 대부분을 일차원적인 짜임새로 구성했기에 마디마다 그루브를 살릴만한 곡선 구조가 미미하며, 목소리 음역대 역시 좁기 때문에 릴 우지 버트나 영 떡(Young Thug)처럼 억양이나 인토네이션을 통한 음률적인 재미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구찌 메인(Gucci Mane)과 부지 배드애스(Boosie Badass)의 밋밋한 랩을 연상케 하는 블랙에게 기대를 걸 만한 부분은 결국 콘텐츠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풀어 가느냐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의 랩은 절반 정도 성공을 거둔다. 특히, 첫 곡인 “Day For Day”와 “Conscience”, “Tunnel Vision”, “Reminiscing” 등으로 구성된 중간 구간은 꽤 강렬하게 다가온다. 해당 트랙들에서 선보인 랩은 분명 수준 높은 어휘력이나 날카로운 일침이 담긴 문제 제기, 혹은 화두를 던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오히려 투박함을 고스란히 살린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가 자라온 환경과 수감 생활을 통해 경험한 분노와 회의감, 복수심 등이 오히려 매끈하게 서술되지 못한 덕에 감정 전달이 더 효과적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소스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본작에서 블랙의 랩을 통해 진정으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펀치라인이다. 블랙은 곡의 성격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매번 엄청난 양의 펀치라인을 쏟아냈다. 흥미로운 지점은 펀치라인 대부분이 수준 높은 언어유희나 고차원적인 이중적 의미로 뒷받침된 것이 아닌 유치하고 어이없을 만큼 단순한 형태로 점철되어 있어서 실소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재력을 과시하는 “Coolin and Booted”, “U Ain’t Never”, “Top Off Benz”는 물론이거니와 19금 가사를 토대로 한 “Up in Here”, “Twenty 8” 등은 블랙의 펀치라인 능력에 방점을 찍는 곡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부분이 마이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랙이 아직 열아홉 살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성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펀치라인은 마치 치명타로 상대를 다운시킨다기보다 간지러울 만큼 약한 잽을 여러 번 날려 오히려 시원한 마사지를 해주는 느낌이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벤 빌리언스(Ben Billions)의 미니멀한 트랩 트랙들이 주를 이뤘다. 덕분에 통일감이 눈에 띄는 편이며, 세련미와 완성도도 상당한 편이다. 잔잔하게 드럼을 배치하고 그 위에 신스와 차임 벨, 그리고 실로폰 등을 양념 치듯 가볍게 얹어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덕에 블랙의 부담스러운 랩 톤을 잘 보조했다. 특히, “Coolin and Booted”부터 “Patty Cake”로 이어지는 구간의 프로덕션은 앨범의 백미다. 무겁게 시작했다가 산뜻하게 올라가는 진행을 통해 상당히 좋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블랙의 개성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올드 스쿨 힙합 팬 일부에게는 치가 떨릴만한 아티스트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본작에선 아티스트로서 블랙의 부족한 부분이 꽤 노출된다. 그럼에도 미숙함을 매력으로 포장할 만큼 블랙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있다는 건 고무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Painting Pictures]를 통해 그가 거둔 가장 큰 성과이며, 앨범을 빛나게 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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