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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Kendrick Lamar
Album: DAMN.
Released: 2017-04-14
Rating:
Reviewer: 조성민
천재들은 한번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는, 머물렀던 영역이 진부해졌거나 이미 통달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변화는 항상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창작자의 자의와 상관없이 그 결과물에는 주위에 의해 강압적으로 더 많은 예술적 의미와 책임감이 부여되는 경향이 있다.그 대표적인 예로 들만한 아티스트,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영특하고도 우직한 방식으로 매번 청자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그는 여태껏 정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본인의 음악적 정체성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담는 틀에 변화를 줬다. 최하 수작으로 평가받는 세 작품에서 켄드릭은 과거의 한 시대를 회상하거나, 본인이 성장한 도시를 재조명하고, 현세대의 가장 큰 화두인 인종적/사회적 갈등을 꼬집었다. 동시에 작가적 참신함, 메시지, 프로덕션, 랩 퍼포먼스, 그리고 트위스트를 선사하는 여타 장치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대작만을 써온 켄드릭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DAMN.]의 첫인상은 그런 의미에서 다소 소박하게 다가온다. 이는 그가 품을 수 있는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 이미 알기 때문에 뒤따르는 상대적 효과라 해도 무방하다.
비교점이 두드러지는 요소는 비단 스케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작은 여러 의미로 켄드릭의 다른 앨범과 동떨어진 결을 지닌다. 초반부터 텐션을 폭발시키는 트랩 뱅어 “DNA.”의 프로덕션이나 비 사이드(B-side) 작품, 혹은 믹스테입에서 간혹 들을 법한 여러 형태의 디제이 샤웃 아웃(Shout out),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쓰여진 라인과 공격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몇몇 트랙은 여태껏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라마의 모습에선 보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켄드릭이 앨범 내내 유지하는 태도다. 그는 여느 때보다 유독 어둡고, 어떤 강력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앨범의 구성과 트랙 타이틀, 쿵푸 케니(Kung Fu Kenny)의 등장, 한 곡 안에서도 수시로 바뀌는 보컬 피치, 그리고 그가 뱉는 수많은 라인에서 알 수 있듯이 뚜렷한 양면성으로 발현된다. 그 때문에 앨범의 진행 방향을 한치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심지어 불친절한 느낌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이처럼 불확실성과 내러티브의 실종이 극명하게 드러난 켄드릭의 앨범은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다.
인트로 트랙인 “BLOOD.”의 급발진을 시작으로 무언가 일어날 것 같지만, 예상외로 트랙 간의 상호적인 연계성은 눈에 띄는 편이 아니다. 대신 각 곡은 저마다의 컨셉트가 개별적인 세계관이 되어 켄드릭의 야심과 두려움, 지성과 내재된 폭력성, 신앙적 성찰과 비관적 성향, 그리고 유혹에 저항하거나 휩쓸리는 등의 이면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묘사한다. 연결고리가 미미한 이 초•중반 구간을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랩의 몫이다.
압도적인 랩 퍼포먼스는 켄드릭의 사상과 인생관이 청자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 강렬함은 흡사 켄드릭의 인생을 체험하는 것 같을 정도로 생동감 넘친다. 켄드릭의 벌스들은 비교적 덤다운된 구성이나 성격에 비해 너무나 강렬하게 와 닿는다. 여기엔 랩 퍼포먼스와 다양한 플로우 디자인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틀을 깨고 철저히 자전적인 테두리 안에 머무르기로 한 기획력과 게임플랜의 승리이기도 하다.프로덕션 측면에서는 여전히 사운웨이브(Sounwave)가 전체적인 조력을 담당했지만, 앨범에 트랩 요소를 가미한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It)의 참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DNA.”와 “HUMBLE.”, 그리고 “XXX.”의 백미 구간을 그에게 맡긴 것은 기존에 켄드릭이 지향한 프로덕션 색채에 변속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여기에 디제이 다히(DJ Dahi)와 테러스 마틴(Terrace Martin)의 멜로디 조립 능력과 리아나(Rihanna)의 참여가 빛을 발한 “LOYALTY.”, 싸이키델릭한 바이브의 “PRIDE.”,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음울한 키보드를 룹으로 맞물린 “ELEMENT.”도 고유의 매력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XXX.”로 폭넓고 풍부한 소스 구성과 몇 번의 비트 변주 동안 적재적소에서 랩을 쏟아내는 켄드릭의 플로우 디자인이 장관을 만들어낸다.
본작의 템포는 후반부의 “FEAR.”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뒤바뀌고, 믿기 어려울만큼 놀라운 실화를 담은 “DUCKWORTH.”에 이르러 칼자루를 청자에게로 넘긴다. 앨범 내내 두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과 방황을 반복하던 켄드릭은 마지막 곡의 총성과 함께 되려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이처럼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는 [DAMN.]은 결국,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출발한 후 객석에 맞닿으며 막을 내린다. 이는 결말이 뚜렷했던 전작들과 다른 길을 지향하는 켄드릭의 의도를 나타내며, 그 어떤 작품보다 감정적 여운이 진하게 남는 효과로 마감됐다. 큰 아이디어와 부담감에서 한껏 자유로워진 켄드릭은 자기 자신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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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사람아닌가ㅋㅋ? 왜 이제 와서 말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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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니 왜이리 설레는가.
그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