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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재달(Jaedal)
Album: Adventure
Released: 2017-06-20
Rating:
Reviewer: 강일권
오늘날 음악계에서 무명의 신인이 대뜸 앨범부터 발표하고 나서는 건 무모한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할 순 없다. 무모함이 낳은 양질의 음악 앞에서라면, 더더욱. 극소수의 아티스트를 제외하곤 앨범으로 정면돌파를 감행하려는 이에게 무덤과도 같은 이곳에서 기어이 입관의 위험을 감수한 신예가 있으니 바로 재달이다.최근 뱃사공, 블랭타임, 코드쿤스트 등이 속한 크루 리짓군즈(Legit Goons)의 새 멤버가 됐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힙합과 락 사이를 오갔던 밴드 쟈코비플래닛 출신이라는 사실만이 그나마 알려진 정보다. 그리고 이것은 재달의 데뷔 EP [Adventure]의 음악 수원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그만큼 앨범에서 주가 되는 건 밴드 출신 이력이 묻어난 곡들이다.
주로 기타 리프를 부각한 라이브 질감의 프로덕션 위로 구수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랩-싱잉 퍼포먼스가 얹혀 적잖은 감흥을 안긴다.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고 맘 가는 대로 만든듯한 인상도 역력하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가 싱어송라이터에 가까운 랩퍼라는 점이다. 재달이 구사하는 랩-싱잉은 여느 랩퍼들이 종종 따라하는 미국의 메인스트림 힙합 스타일과 전혀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기존의 랩-락이나 뉴 메탈과는 또 다른 락 + 힙합 영역을 구축한 에버라스트(Everlast)의 밝은 버전에 가깝다.
[Adventure]는 랩을 차용한 얼터너티브 팝, 혹은 팝과 락을 차용한 힙합, 어느 쪽이든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힙합 리듬 위로 루츠 락의 터치를 가미한 “Dear Mama”와 디스토피아적인 무드의 뉴 메탈, 혹은 힙합 넘버라 할 수 있는 “Aquathlon”, 그리고 “Empire State Of Mind”(Jay-Z)를 연상하게 하는 베이스 리듬 파트와 경쾌한 얼터너티브 락이 만난 “눈꺼풀” 등은 대표적인 예다.
백미는 “눈꺼풀”이다. 곡을 주도하는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지만, 그 뒤로 강하게 때리는 드럼과 위협적으로 웅크린 베이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능숙한 랩-싱잉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쾌감을 선사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잠시나마 행하는 현실도피를 덤덤하게 그린 가사도 인상적이다.
가사적으로 흥미로운 건 “Dear Mama”도 마찬가지. 제목만 보면, 부모에게 바치는 애틋한 곡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선포나 다름없다. ‘어떤 형이 말했어, 크러쉬를 듣는다고 / 트렌드를 듣고 나서 차용할거라고 / 그 순간부터 형은 아티스트가 아녔어 / 오리지널리티가 없다면 예술가는 죽어’ 같은 라인을 보라. 유구한 카피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작곡 환경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다만, 시작 구간은 아쉽다. 뒤이은 곡들보다 전반적인 완성도와 감흥이 달리고 무드의 괴리 또한 큰 탓에 오프닝 곡으로서의 존재감이 바랜 “모험”, 탄탄한 프로덕션과는 별개로 단선적인 구애 가사가 앨범의 시작과 동시에 서사를 무너트리는 “농담”이 그렇다. 다행히 다음 곡부터 정상궤도에 올랐지만, 이 같은 배치의 문제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다.
한편, 미니멀한 구성과 멜로디가 돋보이는 일렉트로 합 트랙 “One Way Love”와 역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결합했지만, 구성과 무드가 정반대인 “Old Time Galaxy” 등, 두 곡은 언급한 락-힙합 퓨전 곡들과 함께 하이라이트 구간을 장식한다.[Adventure]엔 ‘안 팔려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뚜벅이로 살겠다’는 재달의 음악관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상적인 데뷔작을 넘어 정규에서의 묵직한 한방을 기대해봄 직하다. 현시점 이후로 우린 재달이란 이름을 좀 더 강하게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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