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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ercee P
Album: Perseverance
Released: 2007-09-17
Rating:
Reviewer: 양지훈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션 중에는 1년에 한 장 이상의 앨범을 만들고 발표하는 이가 여럿 있다. 반면, 데뷔한지 20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첫 정규 앨범을 공개한 선수도 있다. '88년에 선보인 싱글 "Let the Homicide Begin"이 공식적인 데뷔곡이지만, '79년부터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힙합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뮤지션, 바로 'Rhyme Inspector' 퍼시 피(Percee P)이다. 디아이티씨(D.I.T.C)의 에이지(AG), 로드 피네스(Lord Finesse)부터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 그리고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에 이르기까지 많은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을 펼쳐왔던 힙합계의 감초 같은 존재이다.'90년대 후반 공연이 있는 날이면, 뉴욕 팻 비츠(Fat Beats) 스토어의 문 앞에 자리잡고 본인의 랩이 담긴 CD-R을 판매하던 그가 풀렝스(full-length) 앨범을 발매하게 된 건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의 수장 피넛 버러 울프(Peanut Butter Wolf)를 만나면서부터였다. 2003년 스톤 스로우와의 계약 이후, 제이립(Jaylib)의 [Champion Sound]를 위시하여 레이블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앨범마다 이름을 하나둘씩 새겨 넣으며 나름대로 인지도를 넓혀갔다. 2005년에는 '88년부터 '04년까지의 행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 [Legendary Status]를 공개하며 정규 앨범의 발매가 머지않았음을 암시했고, 2007년 9월엔 마침내 'Perseverance(인내, 인고, 불굴의 노력)’라는 타이틀의 생애 첫 정규작을 공개했다.
모든 곡의 프로듀싱은 스톤 스로우의 간판 프로듀서 매드립(Madlib)이 맡아 엠에프 둠(MF Doom)과의 합작 이후, 또 하나의 걸출한 ‘1 MC 1 프로듀서’ 프로젝트가 실현됐다. 신기하게도 퍼시 피는 모 웹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와 매드립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 같이 녹음한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매드립이 너무 바쁜 관계로 퍼시 피와 대면하여 곡 하나하나를 만들어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매드립이 틈틈이 만들어둔 비트를 퍼시 피에게 전달하면, 그가 청취한 후, 선별하여 랩을 씌우고, 비트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를 수차례 반복하여 대략 CD 석 장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원을 만들었고, 그것을 토대로 완성된 앨범이 바로 본작이다.
비록, 직접 만나서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퍼시 피의 랩은 신기에 가까울 만큼 막강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매드립의 비트 또한 탄탄하다. '92년의 "Lung Collapsing Lyrics"나 [Perseverance]에 수록된 "Throwback Rap Attack" 같은 곡명처럼 20여 년간 갈고 닦은 빠른 랩과 공격적인 라임이 앨범 전반에 스며있다. 초반부에선 "The Man to Praise"를 통해 퍼시 피라는 뮤지션이 살아온 삶에 대해 회고하고, 이어지는 "Legendary Lyricist"로 자신감 충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많은 양질의 곡을 제치고 비니 패즈(Vinnie Paz of Jedi Mind Tricks)와 길티 심슨(Guilty Simpson)이 함께 매드립의 비트 위를 걷는 -매드립의 [Beat Konducta] 시리즈에 쓰였던 비트를 재활용한- "Watch Your Step"이 첫 싱글로 낙점된 것은 다소 의문스럽지만, 이어지는 다이아몬드 디(Diamond D)와 유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프린스 포(Prince Po), 그리고 찰리 튜나(Chali2Na of Jurassic 5)에 이르는 게스트들의 적절한 지원사격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앞서 말한 "Throwback Rap Attack"에서 매드립의 스네어 드럼은 퍼시 피의 랩 못잖게 인상적이며, 퍼시 피가 살아온 곳을 의미하는 "BX"(Bronx), 그리고 이주하게 된 "LA"의 인터루드(Interlude)를 거쳐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는 "Mastered Craftsman"이 감흥을 극대화한다. 'Heed device, Percee P is nice, coming back to lead us twice like Jesus Christ, Was my flow to blow? Now all you need is ice'와 같은 영민한 라임으로 도배한 라인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가사를 대할 때면 감탄사만 튀어나올 정도다. 이렇듯 극한으로 치솟은 분위기는 '랩'을 의인화한 독특한 비유법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랩 음악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는 -마치 커먼(Common)의 "I Used to Love H.E.R"를 연상케 하는- "The Lady Behind Me"와 함께 잔잔하게 막을 내린다.
[Perseverance]는 스톤 스로우와 계약하고 LA로 적을 옮긴 퍼시 피의 선택이 바람직했음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그만큼 정말 잘 만든 앨범이다. 웬만해선 따라 하기조차 힘든 빠른 랩은 물론이거니와 비트를 선별하는 능력 또한 탁월하며, 당시 쏟아진 힙합 앨범 중에 비슷한 스타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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