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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Brockhampton
Album: Saturation II
Released: 2017-08-25
Rating:
Reviewer: 조성민
브록햄튼(BROCKHAMPTON)은 정규 1집인 [Saturation]을 발표한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씬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텍사스 출신 ‘보이밴드’다.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보수적이고 남성적인 장르인 힙합을 하는 집단이 ‘갱’이나 ‘크루’도 아닌 굳이 ‘보이밴드’라는 타이틀을 자처한 것부터 이들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뿐만 아니다. 이 집단에 소속된 인물들의 프로필과 밴드의 탄생 배경 역시 만만치 않다.브록햄튼은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가 주축인 랩 그룹 얼라이브신스포에버(AliveSinceForever)에서 비롯됐다. 그들이 활동하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인터넷 팬 포럼의 몇몇 회원들이 팀에 합류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구성원은 프로듀서, 아티스트, 사진작가, 웹 디자이너, 매니저 등 다양하다. 즉, 음악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할 수 있게끔 수직적 통합을 이룬 기업의 형태를 띤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음악 때문이다.
1집 이후, 약 두 달여 만에 나온 [Saturation II]는 전편이 지닌 강점들을 재활용한 작품이다. 출중한 랩 퍼포먼스와 세련미를 갖춘 프로덕션까지 그대로다. 그러나 무엇보다 트랙 배치와 구성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가장 강력한 뱅어들을 전면에 배치해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GUMMY”, “QUEER”), 그 텐션을 너무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유기적인 흐름을 중반부에 구축한다. 그러고는 감정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발라드 넘버로(“SUMMER”) 앨범을 마무리 짓는 형식이다. 게다가 중간에 삽입된 짧은 스킷들까지, 본작이 짜인 방식은 전작과 동일하다.
이처럼 [Saturation II]의 구성 방식이 전작과 같음에도 식상하기보다 획기적인 이유는 연출법이 너무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앨범을 전개하는 템포는 시종일관 날이 서 있으며, 각 트랙은 동일한 호흡으로 마감됐다. 그 덕에 프로덕션적인 유기성이 돋보이며, 다음 곡으로 유려하게 넘어가는 흐름의 비율도 매우 높다. 또한, 앞 트랙의 끝부분과 뒤 트랙의 시작점의 음폭에 큰 변화를 주며 긴장감을 부각한 점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청각적 자극과 극적인 효과를 끌어내면서 구성에 흡입력을 더했다. 본작의 기획을 담당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와 완급 조절 능력이 완벽에 가깝다고 할만하다.
이처럼 훌륭한 전개 과정이나 연출법도 탄탄한 프로덕션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전곡을 담당하다시피 한 로밀 헴나니(Romil Hemnani)는 이번에도 미니멀하고 밀도 있는 비트를 선사했다. 그의 프로덕션 색채가 강한 트랙들에서는 중독적인 리드 멜로디와 클라이맥스에 절묘하게 등장하는 베이스 드럼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게다가 통상적인 겨우 가장 많은 화력으로 점철되는 후렴 파트를 되려 가볍게 처리하는 패턴도 간혹 선보이는데, 이 역시 인상적이다. 앨범의 하이라이트 트랙은 “QUEER”를 비롯해 중반부에 배치된 “SWAMP”, “TOKYO”, “JUNKY”, “SUMMER”다.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알짜배기 트랙들이 수록되었다.
각 트랙에 얹힌 랩과 컨셉트 역시 전작과 비슷하다. 후렴구와 코러스, 랩 하는 순서가 정해지면 이후에는 참여 멤버들이 각자 알아서 랩을 꾸린다. 그 결과, 트랙마다 멤버들이 지향하는 서사적 방향이 달라 응집력이 약한 편이다. 흡사 각자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오픈 마이크’ 느낌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덕에 오히려 앨범이 진행될수록 멤버들의 사적인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앨범이 끝날 때쯤, 그들의 음악적 포부와 부에 대한 갈망, 성적인 취향과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 등을 알게 된다. 여기서 오는 쾌감이 상당하다. 그중 가장 강렬한 트랙은 아미르 벤(Ameer Vann)의 분노가 담긴 솔로 트랙 “TEETH”다.
랩과 보컬 퍼포먼스는 여전히 훌륭하고 개성도 다들 뚜렷한 덕에 시너지 효과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가 대부분을 담당한 후렴 역시 심플하지만 잘 짜였고, 많은 곡에 등장하는 백업 코러스도 기대 이상이다. 아미르 벤의 묵직한 목소리와 멜린(Merlyn)의 에너지 넘치는 랩핑, 돔 맥클레넌(Dom McLennon)의 위트 넘치는 가사까지, 다들 기복 없이 활약했다. 그럼에도 앨범의 대표적 퍼포먼스를 하나 뽑자면, “GUMMY”의 도입부를 책임진 앱스트랙트의 벌스다.
[Saturation II]는 1집의 성공에 힘입어 높아진 브록햄튼에 대한 기대치에 완벽히 부합한다. 단시간 내에 이렇게 정교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올해 안으로 발표할 예정인 이 보이밴드의 정규 3집이자 트릴로지의 완성작인 [Saturation III]가 어떤 형식으로 마감될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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