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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Evidence
Album: Weather or Not
Released: 2018-01-26
Rating:
Reviewer: 양지훈
미스터 슬로우 플로우(Mr. Slow Flow) 에비던스(Evidence)가 7년 만에 솔로 앨범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절친한 동반자 알케미스트(Alchemist)를 비롯한 지인들이 에비던스의 느릿느릿한 랩을 뒷받침하는 붐뱁(Boom-Bap) 비트를 제공했다.[Weather or Not]은 전반적으로 2011년 솔로 앨범 [Cats and Dogs]와 큰 차이가 없다. 알케미스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네 곡만 들으면 2014년 프로젝트 앨범 [Lord Steppington]과도 유사하다. 오래 전 유출됐던 '비틀스 샘플링'이 이번 앨범에서도 '60~'70년대 샘플 소스 사용으로 재현됐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다. 비슷한 방식과 비슷한 행보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단점은 아니다. 랩과 비트 양면에서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에비던스는 빠르지 않지만, 전달력이 확실한 자신의 랩이 가진 장점을 잘 알고 있다. "Jim Dean"이 그런 장점을 극대화한 트랙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해 당당하게 말하는 "What I Need"도 마찬가지다.
에비던스는 뚜렷한 주관("What I Need"), 자기 과시("The Factory"), 여자 친구의 암 투병과 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By My Side Too)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뤘다. 때로는 자신감 넘칙,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결코 부정적이지는 않다. 더불어 [Lord Steppington]에서 알케미스트와 보여준 허물없는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차분한 랩이 늘어진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음을 의식해서인지, 피쳐링 랩퍼들로 균형을 맞추고자 한 움직임도 보인다. "Powder Cocaine"에 참여한 슬럭(Slug of Atmosphere)이나 "Sell Me This Pen"에서 협업하는 알케미스트와 마-호미(Mach-Hommy) 등은 에비던스와 확연히 다른 랩으로 단조로움 타파에 일조한다. 반면 데파리(Defari)는 "Runners"에서 물 흐르듯 유연한 랩을 선물했지만, 분위기를 더 처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
에비던스 본인과 프로듀서, 그리고 게스트 랩퍼까지 대부분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트랙은 "Sell Me This Pen"이다.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앨범의 분위기를 긴장감 넘치는 'ALC 표 비트'로 확실하게 전환하며, 알케미스트-에비던스-마 호미로 이어지는 3인방의 완벽한 랩이 압권이다. 영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말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뱉는 대사를 초반부에 인용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다.
예전 모습과 큰 차이가 없지만, [Weather or Not]은 방향성과 장점이 뚜렷한 앨범이다. 에비던스는 여전히 느릿느릿한 랩의 장점을 활용할 줄 알고, 결점을 메우는 방법도 알고 있다. 프로듀서를 선택하는 감각도 여전히 예리하다. 밀도 높은 16트랙의 이 붐뱁 힙합 앨범은 에비던스의 관록을 보이고 힙합의 가장 전통적인 감흥을 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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