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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ipsey Hussle
Album: Victory Lap
Released: 2018-02-19
Rating:
Reviewer: 강일권
‘90년대 동서부 간의 역사적인 디스전 이후, 2000년대 들어 대통합의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아티스트 각자의 출신지부심은 대단하다.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부활을 이끈 신예들이 대표적이다. 래칫(Rachet)과 쥐펑크(G-Funk), 그리고 갱스터리즘 가사의 결합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나고 자란 지역은 애증의 공간이자 자수성가 서사의 중요한 배경이다. 지금도 많은 갱 집단이 활보하고 갱 폭력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난과 범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프로덕션과 랩 스타일은 다양해지고 달라졌지만, 가사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와 그것을 표현하는 무드는 선배들과 궤를 같이한다.닙시 허슬(Nipsey Hussle)은 그 중심에서 활약한 랩퍼 중 하나다. 메인스트림 차트에서 주연이 된 적은 없으나 누구 못지않게 탄탄한 믹스테입(Mixtape) 커리어를 쌓았고, 인디 아티스트로서 성공했으며, 트럼프(Donald Trump)가 집권한 미 정부에 열렬히 ‘Fuck’을 날렸다. 새 시대 갱스터 랩의 인기에도 크게 한몫하는 중이다. 드디어 발표된 정규 데뷔작 [Victory Lap]에는 이 같은 허슬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담겼다.
정규 앨범이라고 해서 구성 자체가 특별하진 않다. 이전에 공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들의 후속곡("Blue Laces 2", "Keyz 2 the City 2", "Status Symbol 3")을 대거 수록한 것만 봐도 믹스테입의 연장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완성도 면에선 확실히 다르다. 믹스테입들의 완성도가 낮았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믹스테입의 경우 몇 개의 뱅어와 닙시의 랩이 끌고가는 구도였다면, 이번엔 전체적인 프로덕션과 랩이 탁월하게 맞물린다.
앨범의 핵심 주제는 무일푼에서 랩스타로 성공한 현실을 과시하는 것이다. 큰 틀에선 오늘날 힙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자수성가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닙시의 묘수가 빛을 발한다. 그는 대다수의 신흥 랩스타들과 차별되는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뻔한 주제로 울림이 다른 감흥을 전한다. 그저 ‘잘나가는 랩스타’가 아닌, ‘인디펜던트 랩퍼로서 획을 그은 랩스타’가 그것이다.
닙시는 앨범 내내 라디오 히트 싱글과 메이저 레이블의 지원 없이도 적잖은 돈을 벌고 유명세를 얻은 현실을 과시하는 한편, 그러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신인 인디펜던트 랩퍼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우승 후 트랙을 한 바퀴 천천히 도는 것’을 의미하는 타이틀(‘Victory lap’)부터 앨범에서 드러나는 닙시 허슬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럴만도 하다. 정규작으론 이제 1집이지만, 그동안 12장의 믹스테입을 냈고,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지난 2014년엔 누구도 시도한 바 없는 획기적인 음반 판매방식을 선보여 사업수완을 과시하기도 했다(믹스테입 ‘Crenshaw’를 장당 약 10만원으로 책정하여 딱 1,000장만 판매했고, 24시간만에 다 팔려나갔다.). 그만큼 초점은 부와 명예의 과시보다 현 세대의 랩퍼들에게 보내는 조언에 맞춰진 인상이다.
음악산업계의 일부 백인을 지배계급으로, 흑인 아티스트를 노예로 묘사하는 극단적인 표현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인디펜던트 랩스타로서 성공하기 위한 법을 설파하는 “Dedication”, 본인의 저작물에 대한 전권을 쥔 현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랩으로 이룬 성공을 과시하는 “Rap Niggas” 등등, 많은 곡에서 그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스웩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Dedication”에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조력도 빛난다.
걸걸한 음색으로 내지르듯 뱉는 랩핑이 지닌 힘은 여전하다. 그의 랩은 정교한 플로우 디자인에 기반을 두기보다 즉흥적인 기운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편이다. 주로 비트보다 반의 반박자 늦게 치고들어가서 던져놓는 플로우를 이어가며 타이트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닙시의 랩이 시종일관 뿜어대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다만, 그의 음색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겐 피로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2014년 작 [Mailbox Money]부터 시너지를 보인 마이크 앤 키즈(Mike & Keys)가 주도한 프로덕션은 [Victory Lap]이 이전의 믹스테입들과 다르다는 점을 가장 크게 체감케 하는 요소다. 진중한 무드의 곡을 처음과 끝에 배치하여 무게중심을 잡고, 전통의 웨스트코스트 힙합 사운드와 래칫(Rachet)의 결합을 꾀한 비트, 그리고 트랩(Trap)과 엡템포 비트를 골고루 수록하여 메이저에서 나온 힙합 앨범답게 풍성해보이면서도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고 균형잡힌 구성이 돋보인다. 흐름에서의 완급조절도 눈에 띈다.
가라앉은 무드와 은근히 형성되는 긴장감이 일품인 “Young Nigga”, 제이 지(Jay Z)의 "Hard Knock Life (Ghetto Anthem)"을 샘플링하여 피치다운 시킨 지점이 인상적인 “"Hussle & Motivate", 신스 라인과 닙시의 랩이 팽팽하게 호흡하는 "Succa Proof" 등은 프로덕션과 랩이 최고의 궁합을 이룬 하이라이트곡들이다.
[Victory Lap]은 정규 1집이란 것보다 13년에 이르는 믹스테입 커리어를 정리한다는 의미가 좀 더 커보인다. 그의 대표 믹스테입 시리즈인 [The Marathon]과 [The Marathon Continues]에 이어지는 듯한 제목도 그렇고 말이다. 본작에서 닙시는 완주해오던 마라톤에서 마침내 우승한 이후, 환호를 받으며 여유롭게 트랙을 도는 중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그는 좀 더 긴 구간의 새로운 마라톤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트랙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 혹은 모색할 것인가. 본작을 들었다면, 닙시의 선택이 어느 쪽이든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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