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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pegmafia
Album: Veteran
Released: 2018-01-19
Rating:
Reviewer: 지준규
브루클린 출신의 래퍼 제이펙마피아(Jpegmafia a.k.a Peggy)의 음악을 한 마디로 규정하긴 어렵다. 그는 힙합에 기반을 두고 여러 장르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혼합해 사운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변칙적인 드럼 비트나 불길한 느낌의 노이즈, 소음에 가까운 보컬 샘플 같은 독특한 요소들까지도 적극 활용함으로써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또한, 그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때론 매끄럽게, 때론 거칠고 공격적으로 휘몰아치는 플로우로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종잡을 수 없는 즉흥적인 기운의 프로덕션과 정제되지 않은 과격성 때문에 제이펙마피아는 간혹 그룹 데스 그립스(Death Grips)와 비교된다. 둘 모두 비슷한 느낌의 음악 소스를 사용하고 기존 힙합의 정형화된 방법론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그 의도 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데스 그립스의 음악 대부분에선 변화무쌍한 사운드와 과감한 도전 정신이 최우선으로 강조되지만, 제이펙마피아는 보다 대중지향적이다. 그는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드러내는데 큰 비중을 두면서도 과도한 불협화음과 혼잡함은 지양하고 중간마다 선 굵은 멜로디나 흥얼거리기 쉬운 후렴구를 첨가하는 등, 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사운드적인 측면에만 그치지 않는다. 제이펙마피아가 별다른 여과 없이 뱉어내는 날 것 그대로의 가사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희열을 안긴다. 내면의 욕망이나 불안, 억눌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주변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 나아가 모순 가득한 현대 사회까지 본인이 처한 현실을 노골적인 비유와 적나라한 이미지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외설스럽고 불경한 단어들을 적나라하게 사용하면서도 거부감을 넘어선 쾌감을 전달하는 가사적 재능 또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2014년 공개된 첫 싱글 “All Caps No Spaces”에서부터 흔들림 없이 이어져온 제이펙마피아의 음악적 방향성과 기조는 새 앨범 [Veteran]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본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단연 프로덕션이다. 전곡의 프로듀싱을 혼자 책임진 제이펙마피아는 전작들을 지배했던 우울하고 무거운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사운드와 다이내믹한 글리치(Glitch) 리듬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동시에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전자음과 귀를 단번에 잡아끄는 색다른 질감의 효과음, 샘플들까지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개성과 흡인력을 동시에 갖춘 비트를 주조해냈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트랙 “Baby I'm Bleeding”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대변한다. 우선 뼈대를 이루는 저돌적인 드럼 연주가 변주를 거듭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속도감 있게 흐르는 보컬 샘플이 더해져 드라마틱한 전개를 형성한다. 여기에 분위기와 가사의 내용에 따라 적절히 톤을 조절해가며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탄력적인 래핑까지 어우러져서 감흥을 배가시킨다.
주제 면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제이펙마피아는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실상을 묘사하는데 한층 더 집중한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트랙 “1539 N. Calvert”에서 그는 비논리적인 궤변으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옹호해 질타를 받고 있는 백악관 고문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비난한다.
더불어 성폭행 혐의로 고소된 네오가프(Neogaf/*필자 주: 미국 최대의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창립자 타일러 말카(Tyler Malka)를 겨냥한 “My Thoughts on Neogaf Dying”, 흑인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을 희화화한 티셔츠를 판매하여 뭇매를 맞은 영국 록 뮤지션 모리세이(Morrissey)에게 일침을 가하는 “I Cannot Fucking Wait Until Morrissey Dies” 같은 트랙들도 번뜩이는 표현력과 뚜렷한 사회의식이 맞물려 깊은 감흥을 남긴다.
이 외에도 올 더리 배스터드(ODB)의 곡 “Goin’ Down”을 감각적으로 샘플링한 “Real Nega”, 서로 오랜 음악적 동료인 프리키(Freaky)와 제이펙마피아 사이의 호흡이 강한 시너지를 뿜어내는 “Libtard Anthem”, 로파이(Lo-fi)한 트랩 사운드가 일품인 “Rainbow Six” 등의 노래들 또한 앨범의 완성도에 일조했다.
제이펙마피아는 [Veteran]을 통해 최근 미국을 어지럽힌 각종 사건들과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실상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 더 나아가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진솔하게 풀어내고자 한 점이 돋보인다. 이 같은 곡 대부분에서 도드라지는 그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또한, 짜릿한 감흥을 안기는 부분이다. 실험적인 랩 음악과 시사적인 주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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