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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일드 비츠 –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 그리고 ‘Seconhand Smoking’
- 리드머 작성 | 2018-08-13 19:41 업데이트 | 추천하기 25 | 스크랩 | 28,035 View
인터뷰, 글: 황두하, 이진석
오늘날 한국힙합 씬에선 많은 프로듀서가 활동하고 있지만, 마일드 비츠(Mild Beats)만큼 오랜 시간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켜온 이는 드물다. 빅딜 레코즈(Bigdeal Records)시절부터 어느덧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그는 지난 6월, 세 번째 정규 앨범 [Secondhand Smoking]을 발표했다.여전히 트랜드를 좇기보단 본인의 색을 농밀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했고, 신구 래퍼들이 모여 목소리를 보탰다. 쉽지 않은 현실을 넘어 이제는 15년 차 베테랑,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그와 직접 만나 이번 앨범과 근황, 그리고 한국힙합 프로듀서로서 자리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리드머(이하 ‘리’): 오랜만에 솔로 정규 앨범을 냈어요. 감회가 어때요?마일드 비츠(이하 ‘마’): 늘 하던 일이라서 특별한 건 없어요. 다만 이번에 마음 고생을 좀 했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MC들의 스케쥴이 맞지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요즘에 다들 바쁘잖아요. 참여한 MC들이 다 바쁜 사람들이라서 (피쳐링을) 받는 데 되게 오래 걸렸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편곡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곡이 바뀌고 빠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계속 (작업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좀 후련하네요. 딱 그 정도까지입니다. 막 좋다 이런 건 아니고요.
리: 듣기로는 이번이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마: 아 그게 아마 술 먹고 한 번 (SNS에) 썼던 것 같은데…… (웃음) 그걸 보고 저를 좋아해주는 팬 중에 한 분이 이야기를 퍼트린 것 같아요. 근데 그건 와전된 거예요. 은퇴나 마지막 앨범은 아니에요. 그냥 힙합 앨범, 랩 앨범 자체를 좀 자제하고 싶다는 거죠. 너무 힘드니까요. 제가 랩을 직접 하면 앨범을 많이 내고 싶지만, 그게 아니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은근슬쩍 했던 것 같아요.
리: 저희도 잘못 알았네요. (웃음)
마: 현재로선 이번처럼 랩퍼들을 모아서 하는 앨범은 생각이 없어요. 몇 년 뒤에 또 나올 수는 있겠죠.
리: 작년에 차붐이 설립한 레이백 레코즈(Layback Records)에 소속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현재는 나온 상태죠?
마: 네. 나온 지 조금 됐죠. 올해 2월 말 쯤에 정리하고 나왔어요. 지금은 저 혼자 하고 있죠. 차붐은 차붐 대로 (레이블을) 운영하는 거고요. 근데 제가 (레이백 레코즈에) 있었다고 하기는 조금 애매해요. 거기에서 발표한 작품이 없거든요. 준비는 여러 가지 많이 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다르기도 하고 복합적인 문제들 때문에 나오게 됐어요.
리: 그럼 마일드 비츠 & 차붐 2집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작년에 차붐과의 인터뷰에서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요.
마: 원래는 곡이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차붐이 가사만 쓰면 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일단은 미뤄졌다고 봐야겠죠. 레이백 레코즈 나오기 전에도 한 번 그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차붐이 ‘비트를 다 바꾸자.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더 늦어질 것 같기도 하고,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리: 기대하던 앨범인데 아쉽네요. 곧 발매될 라임어택(Rhyme –A-)의 앨범에도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마일드 비츠 씨가 전곡에 참여한다고 (라임 어택이) 공식적으로 밝힌 게 2016년인데, 그 앨범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마: 그건 아마 3, 4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제 앨범보다도 더 일찍 시작했죠. 그게 진행되면서 전 곡에 참여하는 건 아니고, 70~80% 정도 곡을 준 것 같아요. 나머지는 라임어택 본인과 다른 프로듀서들이 참여하게 됐고요. 2006년도에 나온 [Message From Underground]와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라임어택의 앨범이니까, 제가 맞춰가는 입장인 거죠. 지금도 연락이 간간히 오는데, 믹싱 중이라고 들었어요. 올해 가을쯤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앨범을 들어보니까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놨더라고요. 어릴 때처럼 ‘힙합!’ 이럴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다고 막 어두운 건 아니고요. 곡 자체도 좀 밝고 그루브를 탈 수 있는 느낌의 것들이에요. 센 곡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리: 이번 앨범 이야기를 해보죠. 타이틀인 [Secondhand Smoking]이 ‘간접흡연’이라는 뜻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은 건가요?
마: 제가 앨범을 처음 준비하기 시작할 때 딥플로우(Deepflow)를 찾아갔어요. 딥플로우가 워낙 앨범 전체를 보는 눈이 좋거든요. 그래서 도움을 받을까 싶어서 찾아갔죠. 그때 딥플로우가 ‘형 앨범을 프로듀싱 해보고 싶다.’ 해서 같이 진행하게 됐어요. ‘Secondhand Smoking’은 VMC 작업실에서 대화를 하다가 나온 아이디어 중에 하나였어요. 당시에 비트만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라 같이 들으면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제가 비트를 만들면서 미리 생각했던 이미지는 ‘연기’였어요. 연기가 자욱한 분위기. 영화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에서 처음 시작할 때 안개 낀 밤거리를 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만들었죠. 그런 장면을 건물 안에서 바라보면서 오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여러 인간군상을 생각하면서요. 그런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딥플로우한테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상구가 연기랑 연결시켜서 ‘간접흡연’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랩퍼들이 가사를 쓰기에도 더 폭 넓은 주제가 될 수 있고요. 그래서 바로 정했죠. 그리고 간접흡연을 영어로 찾아봤고요. (웃음)
리: ‘서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는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마: 저는 앨범을 만들 때마다 큰 주제가 있었어요. 1집은 그냥 힙합이었죠. 어렸을 때니까. 2집부터는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걸 담으려고 했죠. 음악을 하면서 상처 받은 적도 있고 좋았던 적도 있으니까요. 제가 MC고 글을 쓰는 사람이면 그걸로 표현하겠지만, 비트만으로는 전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제를 정해놓고 MC들에겐 폭 넓은 주제로 설명해요. 이게 영향에 관한 이야기지만, 본인이 받는 영향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랩을 통해 주는 영향일 수도 있는 거죠. 어린 애들이 랩을 듣고 힙합을 하고 싶다 하는 것도 주제가 될 수 있고요. 또 지나가던 사람이 뱉은 한 마디 때문에 나비효과처럼 인생에 변화가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조심스러운 서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나 MC들이랑 소통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워낙 많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냥 지금 본인들이 관계에 관한 것 중에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했어요. 예를 들어 넉살은 디스전과 방송에 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요. 차붐은 힘든 상황이지만 끝까지 해보겠다는 메시지를 “불나방”에 담은 거죠. 그런데 대부분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제가 굳이 제한을 둔 건 아니니까 괜찮았죠. 저도 당연히 힙합을 좋아하니까요.
리: MC들에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요구하진 않는 편이군요.
마: 네, 그렇죠. 큰 틀을 제공하고, 설명할 때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리고 MC들이 알아서 쓰게 둬요. 결과물을 받아보면 대부분 좋으니까요. 99%는 그대로 쓰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 앨범이나 1 MC, 1 프로듀서 앨범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는 편이죠. 아무래도 소통하기가 수월하니까요. 그렇지만 컴필레이션 앨범의 경우에는 달라요. 저는 제 앨범이 컴필레이션 앨범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많으니까 일일이 만나서 이야기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제가 성격이 소극적이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작업이 늦어지기도 해서 그냥 ‘오케이’하면서 빨리 빨리 하려고 한 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오래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네요.
리: 그럼 반대로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할 때는 어떤가요?
마: 대부분 저한테 어떠한 스타일의 비트를 요구하면, 그에 맞춰서 비트를 만드는 편이죠. 제가 제 앨범에서 MC들한테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가녹음 보내듯이 제가 비트를 대략적으로 만들어서 보내면 피드백을 받고, 다시 편곡을 하는 식이죠.
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까도 말한 리코의 “Paradise”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예요? 기존의 스타일과 달라서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완성도도 탁월했고요.
마: 제가 힙합도 좋아하지만, 그런 스타일의 곡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발표하지 않고 대충 만들어서 쌓아둔 비트들이 엄청 많아요. 새해가 되면서 몇 개를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올렸어요. 쌓여있으면 뭐하나 싶어서요. 그 중 한 곡을 리코가 듣고 연락이 와서 ‘너무 마음에 드는데 써도 되냐’해서 작업이 진행된 거였어요. 그래서 리코가 제 작업실에 왔다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죠. 그 곡도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때 던말릭(Don Malik)이 앨범 프로듀싱을 했는데, 그 친구가 워낙 꼼꼼한 스타일이었거든요. 연주하는 사람들을 그 초라한(?) 작업실까지 데려와서 녹음하고…… 그 분들도 대단한 분들이었는데, 그때 하필 패달이 고장나서 옆 방에 구하러 가기도 하고…… 굉장히 창피했죠. (웃음) 작업을 굉장히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결과물도 잘 나와서 기분이 좋고요.
리: 그 곡은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노래’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마: 그때 리코한테 고맙다고 문자가 와서 굉장히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죠.
리: 마일드 비츠 씨는 프로듀서들과도 작업을 많이 했어요. 프라이머리, 소리헤다 등등.
마: 프라이머리와는 워낙 가까운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만들게 된 거예요. 음악을 같이 친구니까요.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죠. 그리고 당시에는 둘 다 열정이 끓어오를 때였어요. 프라이머리가 먼저 같이 해보자 해서 진행하게 된 거죠. 원래는 랍티미스트(Loptimist)도 같이 하려고 했었어요. 셋이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원하는 바가 달라서 랍티는 빠지게 됐죠. 곡을 함께 만드는 이유를 못 느낀 것 같아요. 그리고 랍티는 크레딧을 구체적으로 적길 바랐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트랙에 드럼은 누가 했고 신스는 누가 했고 이런 식으로요. 근데 저랑 프라이머리는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죠. 그냥 같이 만드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랍티는 그건 싫다고 해서 결국 둘이 하게 됐죠.
리: 처음 듣는 흥미로운 비화네요.
마: 그 앨범은 제 커리어에서 가장 빨리 작업했던 것 같아요. 부스에서 녹음을 받는 동시에 뒤에서 믹스를 하는 식이었으니까요. 진짜 공장처럼 찍어냈던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열정이 넘쳤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작업이 아직까지 가장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리: 아웃트로(Outro)가 일품이었죠.
마: 그것도 애들이 시켜서 억지로 했는데 정말로 넣을 줄 몰랐어요. (웃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들어간 거였죠. 이제는 안 할 거예요. 솔직히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소리헤다와의 작업은 망원동에 같이 살 때 한 거였고요.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디테일보다는 무드로 가는 앨범이기 때문에 금방 작업했어요.
리: 작업 방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딥플로우와 블레이저스(Blazers)로 함께한 [Jam Cook]은 매주 월요일에 만나서 한 곡씩 즉석으로 작업했다고 들었어요. 상당히 재미있는 작업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요?마: 그런 아이디어는 대부분 술자리에서 나와요. 당시에 딥플로우랑 술을 자주 마셨었거든요. 워낙 친한 데다가 상구가 먼저 가볍게 월요일마다 만나서 작업해보자고 해서 하게 된 거예요.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제가 VMC 작업실에 맥북이랑 드럼 머신, 그리고 무작위로 고른 LP를 들고 갔어요. 턴테이블은 작업실에 있는 걸 썼죠. 그걸로 같이 들어보면서 한 곡씩 작업했던 것 같아요. 되게 재미있었어요. 상구도 재미있어 했고. 가사 때문에 힘들어 했지만……. 또 작업을 빨리 끝내야 됐어요. 술 먹으러 가야 돼서…… (웃음) ‘이 정도면 됐어 가자 빨리’ 이러면서. 술 먹고 다음주에 또 모이고. 되게 즐겁게 작업했어요. 차붐도 술 먹으러 놀러 왔다가 강제로 피쳐링을 했었고요.
리: 이번 앨범에 딥플로우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더군요. 어떤 부분에 도움을 준 건가요?
마: 일단 시작은 그랬는데, 이후 앨범 작업이 지지부진하게 되면서 거의 저 혼자 한 편이에요. 물론, 중간에 상구가 참여한 곡도 있고, 가끔씩 술을 마시면서 앨범에 관한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이번에 앨범 나오기 전에 (딥플로우에게) 전화를 해서 앨범 프로듀서로 이름을 넣고 싶다고 했어요. 사실 이미 넣어서 (자료를) 보낸 상태였죠. (딥플로우가) 자기는 창피하다고, 한 게 없는 것 같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네가 반을 했으니까 이름을 넣는 걸로 하자.’해서 넣게 되었죠. 굉장히 훈훈하게 마무리됐어요. 저는 훈훈한 게 좋거든요. (웃음)
리: 딥플로우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주제와 참여 진 선정도 같이 했다고 하던데요.
마: 아, 그렇죠. 초기에 그랬어요. 제가 대주제를 말하고 난 다음에 구체적으로 ‘간접 흡연’이라는 테마를 상구가 정해줬죠. 그리고 제가 ‘이 때까지 했던 사람들 말고 조금 새로운 사람들과 하고 싶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상구가 리스트를 쫙 뽑아주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상의를 했어요. 그게 100% 반영이 된 건 아니고, 한 60~70% 정도 반영됐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추천하는 사람 중에 VMC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에이씨, (VMC) 너무 많아’라면서 뭐라고 했죠. VMC 랩퍼들 개개인이 스타일이 다 다르고 저도 좋아하고 같이 하고 싶긴 한데 반 이상이 VMC가 들어가면…… (웃음) 그렇게 상구가 70% 정도 정해주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선정했고요.
리: 저스디스(Justhis)의 참여도 딥플로우의 추천이었던 거예요?
마: 아 그게 아마 2년 전일 거예요. 디스전이 없을 때죠. 그때 상구(딥플로우)가 ‘형 저스디스 좋죠.’ 하더라고요. 저도 좋긴 했는데, 사실 저스디스가 워낙 단어 선택이 세서 망설였어요. 저스디스의 앨범을 굉장히 좋게 들었지만, 과연 제 앨범에 어울릴까 싶었죠. 좀 더 다운된 톤을 원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상구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했어요. 그땐 그렇게 넘어갔죠. 이후에 차붐이 같은 곡에서 하면 좋겠다고 해서 연락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랩을 엄청 잘해줬어요.
리: 이후 디스전이 터졌고, 딥플로우와는 빅딜 시절부터 끈끈한 형제애로 뭉친 사이인데, 망설여지진 않았어요?
마: 별 생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앨범인데 누가 싸웠다고 해서 편을 갈라 제대로 못 만들면 안 되잖아요. 오히려 MC들이 좀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죠. 어쩔 수 없긴 하지만요. (웃음) 애초에 같은 앨범에 들어간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리: 이번에 던말릭의 참여 계획은 없었던 건가요?
마: 원래는 1번 트랙이 던말릭이었어요. 근데 문제의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연락을 해서 누락하기로 했죠. 던밀스(Don Mills)도 제 앨범에서 누군가를 디스하는 가사를 쓴 것 같은데, 그게 저스디스인지 던말릭인지는 모르겠어요. 항간엔 저스디스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리: 디스전의 중심에 있는 아티스트들과 모두 친분이 있는 입장에서 디스전을 보는 심경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마: 솔직히 말씀드리면 디스는 좀 불편해요. 보통 리스너들은 욕하고 때려 죽일듯이 하면 열광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재미도 없고. 그런 원색적인 비난 같은 게 불편하게 느껴져요. 면전에 대놓고 욕하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스디스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은 아직 없지만, 대화를 몇 번 해보니 괜찮은 분이더라고요. 음악을 잘하는 건 물론이고요. 딥플로우야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안 싸웠으면 좋겠어요.
리: 예전엔 데드피(Dead’P)와 함께 “Bit@h”란 스윙스 디스곡을 내기도 했잖아요.
마: 그랬죠. 지금 생각하면 그 곡은 너무 셌어요. (웃음) 그건 당연히 당시 제가 빅딜(Big Deal)이었으니까 낸 거죠. 음악을 처음부터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많이 사그라졌지만, 당시에는 그랬어요. 친구들이고 동생들이니까. ‘그 쪽에서 디스를 했으니까 우리도 디스곡 내자, 음원으로 내버리자’ 해서 내게 된 거죠. 그 이야기를 제가 했는지 데드피가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재미있겠다 싶어서 낸 것도 있고요. 데드피는 열이 엄청 받았었어요. 저는 그냥 센 비트를 만들어주면 되니까. 때려부수는 거. (웃음) 지금 생각하면 때려부수는 것보다 잔잔한 거 했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생각이 짧았어요. 약간 재지한 걸로 했으면 나았을 텐데.
리: 이번 앨범엔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던 래퍼들도 있지만, 신인들의 이름도 눈에 띕니다. 이지마인드(Easymind), 퀘사 딜라(Quesa Dilla), 리비도(Leebido) 등은 생소한 래퍼들인데, 작업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어요.
마: 제가 레이백 레코즈에 있을 때 디젤(DSEL)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제 앨범에도 참여했는데. 이 친구가 추천해준 래퍼들이에요. 이 친구가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곳에서 신인들을 엄청나게 찾아들어요. 디깅(Diggin’)왕이죠. 그래서 제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소개 받은 이들이 이지마인드와 퀘사 딜라에요. 저는 직접적으로 몰랐지만, 디젤이 전에도 간간히 들려줘서 알고는 있었어요. 그래서 작업물들을 더 들어보니 괜찮아서 디젤 통해서 연락하고 작업하게 됐죠. 리비도는 레이백 레코즈에 늦게 합류했었어요. 제가 나오기 직전에 잠깐 같이 있었는데, 그래서 참여하게 됐죠. 혼자 끌어가기에는 아직 설익은 느낌이 있어서 차붐이 도와주는 느낌으로 같이 곡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차붐한테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리: 수록곡 중 리짓군즈(Legit Goons)가 참여한 “Young, Mild & Free”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리짓군즈와의 조합이 신선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요?
마: 이 트랙은 굉장히 올드스쿨한 곡이에요. 그런 스타일의 곡을 워낙 좋아하니까 이번 앨범에서도 하나 해야겠다 싶어서 만들게 된 곡이죠. 곡 자체가 막 신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리짓군즈를 떠올린 건 아니었고요. 근데 랩 잘 하는 여러 명이 랩을 하면 좋겠다 싶긴 했죠. 그때 옆에서 차붐이나 상구가 리짓군즈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리짓군즈에서 뱃사공이랑 블랭타임(Blnk-Time)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리짓군즈의 작업물들을 더 찾아들어보니까 정말 이 곡에 딱이겠다 싶더라고요. 바로 연락을 해서 작업하자고 했죠. 뱃사공한테 연락을 해서 ‘너무 업되지 말고, 칠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너무 흔쾌히 하고 싶다고 해서 작업이 진행됐죠. 너무 열심히 잘해줬어요. 그리고 마지노선에 딱 맞춰서 준 유일한 팀이에요. (웃음) 고민 많이 하고 잘 해준 것 같아서 고마웠어요. 워낙 다 잘하니까요.
리: 혹시 참여를 원했던 래퍼 중에 작업이 성사되지 않은 예도 있었어요?
마: 있죠. 대부분 거절한 건 아니고 스케쥴이 안 맞아서 무산됐어요. 대표적으로 이케이(EK)랑 창모. 창모는 가녹음이 1절까지 왔는데, 갑자기 장문의 문자가 왔어요. 자기가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 된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래서 괜찮으니까 다음 기회에 다시 같이 해보기로 했죠. 저를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안 그래도 되는데. 저는 창모찡이라고 혼자 부르는데. (웃음) 좋은 사람이에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해보려고요. 아, 쌈디도 이번에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었는데, 하필 암울한 시기였어서 같이 못 했죠. 화지도 녹음까지 했지만, 최종적으로 완성하지 못했고요.
리: 안 그래도 화지의 참여를 예상했었는데, 없어서 궁금했습니다. 녹음까지 했다면, 작업이 꽤 진행된 것 같은데, 왜 완료하지 못한 건가요?
마: 화지는…… 화지는 워낙 21세기 히피라서. (웃음) 원래 작업을 하기로 하고 녹음까지 어렵게 받았어요. 전 진짜 좋았거든요. 근데 본인은 마음에 안 든다고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더 잘 할 수 있다고. 그때는 시간이 있어서 기다렸지만, 점점 시간이 흘렀죠. 화지는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으니 계속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그러다가 마스터링만 남겨둔 상황까지 갔는데, 연락을 하니 정말 죄송하다면서 하루만 녹음해보고 좋든 안 좋든 연락한다고 한 이후로 3개월이 흘렀네요. 연락이 두절됐어요. (웃음)
리: 굉장히 기분 나쁘거나 섭섭할 듯한데요…
마: 화나지는 않아요. 제가 그 친구를 잘 알기 때문에. 원래 연락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이게 책임감의 문제는 아니에요. 그 친구는 진짜 히피죠. 느낌이 와야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라서. 들어갔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을 때 하면 되니까요. 만나게 되면 아주……. (웃음)
리: 앞으로 또 새롭게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는 누구에요?
마: 창모찡이요. (웃음) 창모찡하고는 꼭 한 번…… 물론 본인이 원하면 하는 거지만요. 쌈디랑도 오랜만에 한 번 해보고 싶고요. 근데 다들 바빠가지고. 사실 연락하는 것도 조금 그랬어요. 그 친구랑 오래 알고 지냈지만, 공백기가 좀 있었으니까요. 오랜만에 연락하는 게 눈치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한 번 시원하게 연락을 해봤죠. 시원하게 받더라고요.
리: 이번 앨범은 참여 진뿐만 아니라, 프로덕션적으로도 기존과 다른 면모가 엿보입니다. 특히, 던밀스가 참여한 “I Need Ur Voice”는 트랩 기반의 곡이에요. 이전의 마일드 비츠표 음악에선 듣기 어려웠던 스타일이라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마: 트랩이 하도 유행이라서…… 제가 트랩을 엄청나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거든요. 그 곡은 사실 샘플 베이스의 루프에다가 드럼만 트랩 느낌으로 깔아본 거예요. 오히려 이런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에이샙 라키(A$AP Rocky) 같은 경우에도 샘플은 굉장히 거친데, 드럼은 요즘 느낌으로 쓰잖아요. 그런 게 굉장히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었죠. 마침 제가 원하던 느낌의 곡이 나와서 이건 던밀스가 하면 딱이겠다 싶었고요. 만들면서 아예 던밀스를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제가 원래는 누굴 생각하면서 (비트를) 만드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곡은 왠지 자꾸 밀스의 그 웃음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또 같이 작업하게 됐죠. 본인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어요. 제가 이전에 하지 않던 스타일이긴 하지만, 드럼을 조금 바꿨을 뿐이에요.
리: 사실 여전히 붐뱁만 고수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일장일단이 있을 듯한데 어떤가요?
마: 어쨌든 ‘붐뱁을 오랫동안 했다, 했던 사람이 저 사람이다.’라고 봐주는 건 고맙죠. 그런데 사실 그렇게 붐뱁만 한 건 아니거든요. 제 나름대로는 붐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만든 곡도 많아요. 앨범들도 들어보시면 그렇게 붐뱁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을 거예요. 곡을 의뢰하는 이들 중에 붐뱁을 원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 곡을 주긴 했죠. 어쨌든 그런 이미지에 불만은 없어요. 저는 옛날 음악이라도 지금 듣기 좋으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리: 좋은 말씀이네요.
마: 전 아직도 [Petestrumentals]를 가끔씩 찾아 들어요. 그렇잖아요. 옛날 음악이지만, 찾아 듣기도 하잖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럴 거에요. 아, 근데 붐뱁을 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 같은 게 있더라고요. ‘쿵치딱’인가? (웃음) 자꾸 쿵딱쿵딱 거린다고 해서…… 아무튼 쿵치딱 거리는 건 쿵치딱 거리는 대로 듣고, 요즘 음악은 또 요즘 음악대로 듣는 거죠. 요즘 음악이 아니라고 해서 욕하거나 안 좋게 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요새 트랩이 유행이니까 다들 영향을 받잖아요. 근데 영향을 받는 것과 비슷하게 만드는 건 다른 이야기에요. 트랩이 유행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본인이 진짜 열심히 연구해서 트랩 전문가가 된다면 인정할만 하죠. 근데 이거 유행하면 이거 했다가 저거 유행하면 저거 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기술적으로 잘 만드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데 그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유행을 따라가는 거죠. 그게 뭐 엄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전 그런 성향이 아닌 것 같아요. 영향을 받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편이죠.
리: 그래도 이번 앨범에서 기존의 스타일을 탈피하고자 한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마: 그렇긴 하죠. 2집은 올드스쿨 느낌이 강했죠. 그때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는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가 꼭 트랩을 해야겠다 싶어서 만든 건 아니에요. 만들다 보니까 그렇게 나온 거지. 그래도 올드스쿨 느낌으로는 일부러 안 만드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다만 샘플링처럼 기존에 해왔던 작업 방식을 바꾸지는 않았죠.
리: 샘플링은 힙합 프로덕션의 기본이자 꽃이라고 생각해요.
마: 근데 이전에도 100% 샘플링으로만 하진 않았어요. 1집은 베이스 빼고 전부 샘플이긴 했죠. 그런데 2집에서는 샘플로 한 것도 있었지만, 중간마다 들어가는 잡음 같은 것들은 직접 녹음을 하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샘플을 조금 더 단순하게 썼어요. 나머지는 신스나 샘플을 섞어서 소리를 채웠죠. 계획 중인 말랑말랑한 느낌의 앨범 같은 경우는 샘플의 비율이 적어요. 그 앨범은 반대로 신스의 비율이 높을 거예요. 그래도 트랩을 만들던 무엇을 만들던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사운드가 있잖아요. 저는 아직도 샘플링으로 만든 음악들을 너무 좋아해요. 그런 면에서 제 앨범은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작업방식도 마찬가지고요. 전면적으로 신스를 내세운 건 없으니까요. 샘플이 주가 되고 신스가 받쳐주는 느낌이죠. 전 샘플의 느낌이 좋아요.
리: 한국에서는 아직도 샘플링 작법 자체에 대한 비하의 시선이 존재하더군요. 심지어 힙합 음악 하는 이조차 순수 작곡과 샘플링의 경계를 나눈 다음, 우열 따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 있습니다.
마: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저랑 되게 친했던 사람 중에 미디로 음악을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옛날부터 샘플링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얼마 전에 대화를 했는데 아직도 편견을 갖고 있더라고요. ‘샘플링은 미디를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저는 좀 충격을 받았어요. 차라리 10년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옛날에는 다들 미디로 음악을 시작했으니까요. 저도 중학교 2학년 때 미디를 사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씁쓸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저는 아직까지 샘플의 느낌이 좋아요. 목소리 하나를 변형시켜서 분위기를 달라지게 할 수도 있고, 색다른 그루브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게 좋아요.
리: 음악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작했어요?
마: 그렇죠. 또 옛날 이야기하면 옛날 사람 인증하는 건데. (웃음) 제가 옛날이라고 하면 진짜 옛날이거든요. 저한테는 얼마 안된 것 같지만……. 1992~93년쯤이에요. ‘90년대. 한창 대중음악 붐이 일어나고 애들이 옷 잘 입고 할 때죠. 원래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긴 했어요. 그러다가 음악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기타 치는 걸 싫어해서 그만 두고, 컴퓨터 음악을 시작했어요. 동호회 같은 게 있었거든요. 당시 ‘옥소리’라는 국산 미디 모듈이 있었어요.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 노래방에서 주로 쓰던 거죠. 그게 제일 쌌거든요. 그걸 사서 연습을 하곤 했죠. 그때는 힙합이 아니라 헤비메탈을 썼어요. 헤비메탈을 좋아했거든요. 메탈리카(Metallica) 같은 밴드를 엄청 좋아했어요. 그래서 컴퓨터로 기타 소리를 찍으면서 시작했어요. 정말 옛날이네요.
리: 그럼 음악을 전업으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언제였어요?
마: 대학교를 갔는데, 공부가 재미 없더라고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는 건 재미있었는데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군대를 안 갔어요. 대신에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한 번 했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당시에도 음악을 만들기는 했지만, 집에서는 공부를 하라고 하니까 재수를 해서 다른 대학을 간 거였어요. 근데 또 공부가 재미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포기하자. (웃음) 공부는 아예 포기하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마지막에 졸업할 때는 학점이 모자라서 교수님 찾아가서 저 서울 가서 음악 해야 한다고 빨리 처리해달라고 졸랐죠. 그때 한 시간 동안 실랑이하다가 교수님이 결국 ‘그래 가서 성공해라.’라면서 B+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만들고 싶어지고, 만들다 보니까 쭉 이어져 온 거죠.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해요. 어떤 걸 듣고서 ‘아 난 꼭 힙합을 해야겠다.’ 식의 충격적인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에요.
리: 기왕 옛날 얘기를 시작 했으니 조금 더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밀림닷컴에서 활동하던 사람끼리 모여서 빅딜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마: 그렇죠. 밀림닷컴은 아시다시피 당시에 힙합 하던 사람들은 다 모여있던 곳이에요. 서로서로 쪽지 보내서 ‘같이 작업할 수 있을까요?’ 이러고. 그러던 사람들이 라임어택, 랍티미스트, 프라이머리, 딥플로우 이런 친구들이죠. 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진 것도 재미있어요. 그때 그런 사람들이 같이 MSN으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 작업물을 들려주고 하다가 갑자기 ‘만나자’ 해서 만나게 됐어요. 만나서 크루를 결성하자 해서 IBC 크루를 결성하게 됐죠. IBC 크루는 빅딜 만들기 전에 잠깐 만든 거예요. 그게 빅딜로 이어진 거죠.
리: 그렇게 만들어진 빅딜이 와해되기 직전에 먼저 탈퇴를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유가 있었을까요?
마: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나요. 거의 막바지에 나가긴 했어요. 친구들이 말리긴 했지만, 저는 더 이상 빅딜을 하고 싶지 않았죠. 혼자 하고 싶었어요. 다들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라서 당시에 갈등이 많았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그냥 나오게 됐어요.
리: 이후로도 레이백 레코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쭉 혼자 해온 거죠?
마: 그렇죠. 쭉 혼자 해왔죠. 그래도 그때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긴 했어요. 레이블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고. 지금은 근 몇 년 간 동안 처음으로 아예 혼자 하고 있는 거예요. 이번 앨범이 늦어지게 된 것도 혼자 일을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앨범 작업뿐만 아니라 사무적인 일들도 있으니까요. 지금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레이블이란 게 같이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목적이 맞아야 하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거쳐왔던 레이블들이 저와는 목적이라든지 성향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들도 너무 많고. 그런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거든요. 의견 차이 같은 걸 조율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대표가 없거나 대표도 플레이어면 그런 게 어렵죠.
리: 앨범 쇼케이스 계획은 없어요?마: 회사에 있을 때는 무조건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혼자 하는 거니까 힘들 것 같아요. 누구 도와줄 사람이나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해보고 싶긴 해요. 다들 랩 잘하는 이들이니까 다 모여서 공연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대기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웃음) 공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근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 중입니다. 아, 앨범 관련해서는 CD 발매를 계획 중이에요.
리: 이번에 뮤직비디오 대신 비쥬얼라이징 비디오를 직접 제작해서 공개했죠? 이것도 완전히 혼자 하면서 바뀐 부분인가요?
마: 뮤직비디오는 어설프게 찍느니 안 찍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영상이 없으면 저는 콘텐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거든요. 비트 찍는 거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 예전에도 많이 해서 진부하기도 하고.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회사도 없으니 먼저 움직여서 좀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랑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만들어본 거예요. 웃기지만 저희한테는 의미가 있어요. 퀄리티가 엄청 좋은 건 아니지만, 만족해요. 조금 더 공부를 해서 나중에는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도 있겠죠.
리: 데뷔 앨범이 나온 뒤로 13년이 흘렀습니다. 한국힙합 씬이 형성된 시기를 고려하면, 정말 초기부터 활동한 셈이에요.
마: 그렇게 됐네요. (웃음)
리: 그동안 프로듀서로서 느낀 바가 남다를 것 같아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고… 일례로 래퍼들과 달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매우 제한적이잖아요.
마: 어려움은 늘 있었죠. 사실 곡만 만들어서 성공한 프로듀서는 거의 없어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성공이라는 게 돈을 많이 버는 거라면요. 곡 만들고 랩도 하는 분들은 자기 곡으로 활동하는 거니까 문제가 없죠. 하지만 비트만 만들어서 그렇게 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불가능에 가까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도 여전히 힘든 것 같아요. 앨범을 내지 않거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수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제가 공연을 뛰는 것도 아니니까요. 가끔 곡 의뢰가 많이 들어오면 그래도 수입이 생기겠지만, 월급처럼 꾸준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아까 말씀 드린 힙인케이스 같은 친구들은 그런 걸 아예 각오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하겠다더라고요. 사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좋잖아요. 알바도 안 했으면 좋겠고. 그래도 10년 전에 비해서는 나은 거예요. 저는 알바를 하진 않으니까요. 지금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긴 하지만요. 팬들이 봤을 때도 프로듀서에 대해서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외국이랑은 사정이 다르죠. 미국의 경우엔 프로듀서들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만큼 매체에서 다뤄주니까요. 그래미 시상식을 봐도 퍼포먼스와 트랙 상이 따로 있잖아요. 외국이 그런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리: 한국에선 비트 메이커와 프로듀서의 개념이 혼재되는 경우도 많죠.
마: 그렇죠. 당연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만, 누가 봐도 랩이 더 재미있고 멋있잖아요. 일단 화려하니까. 이해는 해요. 그래도 음악을 재미있게 즐기려면 다양한 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때까지의 감회는 한 마디로 말하면 씁쓸해요. 처음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거든요. 씁쓸하네요. 오래 활동한 사람에 대해서 인정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옛날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죠. 왜 그런지는 알겠는데,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죠. 제가 뭐 음악을 엄청 잘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제 앨범이 완벽하다고 해서 내는 것도 아니지만요.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씁쓸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리: 이제는 한국에서 언더그라운드 씬이라는 것도 거의 사라진 것 같아요.
마: 그렇죠. 없다고 봐도 돼요. 옛날에 화나가 ‘어글리 정션(Ugly Junction)’을 했던 것처럼 이 씬을 유지하려고 했던 사람도 있고 공연을 꾸준히 열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저는 활동하는 기반이 힙합 씬이고 제가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이번 앨범에선 그래도 사람들이 저와 작업을 해줘서 다행인데,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저에 대해 인정을 해주니까 참여해준 걸 텐데. 시간이 지나면 플레이어들이 세대 교체가 되기도 하고 저의 위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꾸준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젊은 친구들도 원하는 프로듀서가 되어야죠. 물론, 제 곡이 좋아야 저를 원할 테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씬을 봤을 때는 씁쓸하지만, 저부터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리: 신인 프로듀서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마: 에이, 요즘 애들한테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꼰대 소리 들어요. (웃음) 요즘 애들이라고 말을 하는 자체가 이미 꼰대죠. 상구랑 술 마시면 맨날 이야기해요. 나보고 꼰대라고. 그것도 되게 진지하게 말을 해요. 심지어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웃음) 갑자기 ‘형 꼰대에요.’ 그러면 제가 ‘어? 내가 왜?’ 이러죠. 그러면 상구가 ‘그냥 나이 많으면 꼰대에요, 저도 꼰대에요.’라고 하죠. 그럼 저는 그냥 수긍해요.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들한테는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 본인이 잘해야 하는 거예요. 제이딜라(J.Dilla)가 말했잖아요 ‘do You’라고. 본인 것을 해야죠. 성공하기 위해서 트렌디한 걸 시도하는 사람들도 그 자체로 멋있다고 생각하긴 해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씬이 재미가 없잖아요.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야죠. 지금은 숨어있는 베드룸 프로듀서들도 수면 위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연습 좀 그만하시고. 작업물을 내고 사람들한테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야지 발전하는 거거든요. 자꾸 만족을 못하고 숨어서 작업만 하면 그거에 빠져서 나중에는 곡을 못 내요. 자기가 들어도 안 좋거든요. 제가 그런 친구들 것을 들어보면 진짜 좋아요. 근데 본인은 만족을 못하니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이 예술가고 멋있기는 하죠. 근데 그런 걸 보면 ‘너희 활동 기다리다가 비트 씬 말라 죽겠다 이것들아!’ 싶은 거죠. 랩퍼들이 번개송 내듯이 데모라도 올려보고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힙합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에요. 프로듀서들이 많이 나오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 이 씬도 더 활발해지겠죠. 생각해보면 [쇼미더머니]도 다 랩퍼들이잖아요. 프로듀서들을 위한 건 없죠. 디제이들이 배틀하는 건 봤는데, 꼭 배틀을 해야 하니까 그것도 참 문제에요. (웃음)
리: 방송을 하려면 일단 싸움을 붙여야 하나 봐요.
마: 하긴 프로듀서들끼리 방송하는 것도 애매하긴 하네요. (웃음)
리: 아, 요새는 어떤 장비로 작업하는지 궁금해요.
마: 지금은 드럼 머신이나 샘플러 등을 다 팔아버렸어요. 맥북 하나에 네이티브 인스트루멘탈스(Native Instrumentals)에서 나오는 머신 마크2(Maschine MK2) 하나만 쓰고 있어요. 그리고 작은 마스터 건반을 쓰고 있죠. 옛날에는 샘플러를 그렇게 갖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간단하게 하고 있어요. 샘플러도 정말 잘하는 분들 보면 오타쿠처럼 파고들어야지만 제대로 쓸 수가 있거든요. 주변에 그렇게 쓰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고요. 대표적으로 힙인케이스(Hipincase)라고 레이백 레코즈에 있는 프로듀서도 MPC랑 샘플러로 작업을 하고요. 이지마인드도 프로듀싱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 분도 샘플러를 잘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들을 보면 멋있기도 해요. 저는 샘플러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요. 나중에 여유 되면 신형 드럼 머신은 사고 싶어요. 지금은 간단하게 작업하는 게 좋고요.
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마: 앨범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듣기 힘든 분들은 참아가면서라도 들어보세요. 가사적인 부분이나 곡 분위기에서 순서를 맞춰보려고 했거든요. 사실 완벽하게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요. 그래도 제가 생각한 그림과 얼추 맞아서 앨범으로 내게 된 거니까요. 그래서 순서대로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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