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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센스(E Sens)
Album: 이방인
Released: 2019-07-22
Rating:
Reviewer: 황두하
이센스(E-Sens)의 첫 솔로 앨범 [The Anecdote]는 한국 힙합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원래부터 장르 팬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랩 스타일로 인정받은 그이지만, 2010년대 초반 힙합 씬을 넘어 대중문화계까지 뜨겁게 달궜던 디스전을 계기로 더욱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자연스레 첫 앨범에 대한 기대치는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힙합 팬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발표된 앨범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탁월한 완성도를 보여줬다.데뷔 전부터 앨범 발매 직전까지 느낀 사건과 감정을 나열하는 다소 평이한 주제와 서사가 인상적인 건 그 주체가 이센스였기 때문이다. 그가 처한 특정 상황과 놀라운 랩 퍼포먼스가 더해져서 대체 불가능한 감흥을 선사했다. 특히, 이센스의 랩은 일정 경지에 올랐다. 마치 되는대로 지껄이는 듯하지만, 실제론 치밀하게 짜인 라임과 플로우가 뛰어난 전달력과 만나 자연스레 서사를 따라가게 하면서도 기술적인 쾌감 또한 전달한다.
여기에 오비(Obi)의 감각적인 프로덕션이 더해져서 고유한 무드를 지닌 작품으로 마감됐다. 이전까지 한국에 없었던 짜릿한 힙합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리고 또다시 4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두 번째 앨범 [이방인]이 발표됐다. 본래 출소 직후 믹스테입(Mixtape)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작업 기간이 길어지며 정규 앨범으로 바뀌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앨범의 주제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The Anecdote]의 청년이 상경 후(혹은 출소 후) 서울 생활과 힙합 씬에서 부대끼며 느낀 세상과의 부정교합이 그것이다. 음악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던 청년은 기대와 다른 현실 속에서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가진 30대로 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작을 애매하지만, 고집 있게 던져놓는다.
기형적인 힙합 씬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출사표 “알아야겠어”와 자신과 자신이 경멸하는 부류 사이의 차이를 은근슬쩍 들이미는 이센스 식 브래거도시오(Braggadocio) 트랙 “그XX아들같이”는 앨범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트랙들이다.
그중에서도 “그XX아들같이”는 은근하게 깔리는 신시사이저와 독특한 소스들의 난입으로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비트와 냉소와 재치가 가득한 가사, 그리고 툭툭 내던지는 듯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랩이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앨범의 하이라이트 트랙이라고 할만하다.
한편으로는 돈과 성공에 대한 속물적인 욕심과 모든 걸 뒤로 하고 서울을 떠나고 싶은 지친 마음을 내비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덕분에 개인의 특별한 이야기가 보편적인 경험으로 자연스레 확장됐다. 보너스 트랙 격으로 한정판에만 수록된 “DON”과 “서울”은 앨범의 두 중심 소재를 응축해놓은 트랙들이다.
다만, 뚜렷한 테마를 가진 몇몇 곡들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심상이 이어진 탓에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개별 곡에 명확한 역할을 부여한 전작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프로덕션은 더 다채로워졌다. 드류버드(Drewbyrd), 디캡(Decap), 250 등, 상당히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는데, 오비가 총괄하여 붐뱁(Boom Bap)이 주가 된 전작과 달리 힙합의 여러 하위 장르를 끌어안았다.
특히, 트랩 비트의 비중이 늘어났다. 비슷한 질감의 신시사이저 운용으로 몽환적이고 침잠된 분위기를 유지한 덕분에 사운드의 일관성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미니멀하게 구성되어 사이사이에 랩이 자연스레 스며들며 흘러가는 맛이 일품이다. 아련한 신스를 통해 쥐펑크(G-Funk)의 기운을 내뿜는 사운드 위로 레이드백(Laid-Back)한 랩이 기가 막히게 맞물린 “Dance”는 대표적인 예다.
달라진 사운드에 맞춰 랩도 더욱 화려해졌다. 시종일관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한편, 라임 배치가 더욱 명확하고 촘촘해진 덕분에 보다 직관적으로 기술적 쾌감이 전달된다. 그동안 플로우에 따라 라임을 흘려보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마스터 우(Masta Wu), 김아일(Qim Isle), 김심야(Kim Ximya) 역시 각 곡의 무드에 맞는 퍼포먼스로 앨범의 완성도에 일조했다. 특히, “Clock”과 “Rader”에 후렴으로 참여한 김심야는 특유의 날카로운 톤으로 공격성을 더했다.
전작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센스는 여전하다. 돈에 대한 절실함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도 대중적인 흥행 코드를 일절 배제한 채 자신의 음악을 밀어붙였던 것처럼, [이방인]에서도 본인만의 이야기로 시대를 가로지른다. 무엇이 정상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기형적인 사회와 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맞다고 믿는 것을 고집스레 추구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방인]으로 규정했다. 씬의 한가운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자기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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