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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빌 스택스(Bill Stax)
Album: Detox
Released: 2020-04-08
Rating:
Reviewer: 황두하
빌 스택스(BILL STAX)가 작년에 발표한 싱글 “Idungivaㅗ”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2018년에 터진 대마초 사건 이후 처음 발표한 결과물에서 그는 사건과 관련한 논란에 정면으로 맞섰다. 씨잼(C Jamm)이 [킁]을 통해 개인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풀어간 반면, 스택스는 대마초 합법화 주장을 앞세워 사회적인 측면으로 논의를 확장했다. 나아가 문신, 동성혼 등, 대한민국에서 터부시되는 진보적인 의제들까지 내세우며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공격했다.신예 프로듀서 비엠티제이(BMTJ)가 주조한 음산한 기운 가득한 트랩 비트와 데뷔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쫄깃한 랩 역시 탁월했다. 이후에도 그는 유튜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마초 합법화 주장을 이어갔다. 이름을 바꾼 후 처음 발표한 정규앨범 [DETOX]는 이 같은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본작은 한국 힙합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대마초’를 주제로 삼았다. 앨범을 절반으로 나누어 대마초의 대표적인 두 품종인 사티바(Sativa)와 인디카(Indica)로 이름 붙인 것부터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Idungivaㅗ” 때처럼 합법화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모든 트랙에서 대마초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미 합법화가 많이 진행됐거나 한국과 달리 강성마약으로 취급하지 않는 미국에선 대마초가 평범한 주제다. 그러나 미국과 전혀 다른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얽혀서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스택스는 평범함과 거리가 먼 일상 속에서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고, 한국 힙합의 주류와 자신을 구분하며 조금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고 천명한다. 이는 간접적으로 모순된 한국 사회와 주류 힙합 씬의 민낯을 들춰낸다.
뱅어 트랙이 집중된 전반부에서는 “한국거가 아닌거”, “허경영”처럼 재치 넘치는 표현으로 듣는 재미를 더했고, 후반부에서는 조금 더 침잠된 무드로 현재의 삶을 논하는 데에 집중한다. 특히, 앨범의 후반부는 그의 긴 커리어 사상 가장 감성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마감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트랙인 대마초 찬가 “[Thur’sday]”가 매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잘 기획된 앨범의 컨셉트에 설득력을 더하는 건 바로 음악이다. 빌 스택스는 앨범 내내 차진 랩 퍼포먼스로 귀를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Wickr Me”와 “허경영”의 퍼포먼스는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강렬하다. 더불어 후반부에서는 귀에 감기는 랩-싱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고,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슈퍼맨의 비애”(“WASABI”)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Lonely Stoner”) 같은 한국 가요를 재치있게 오마주하기도 한다.
프로덕션 역시 인상적이다. 제이 키드먼(Jay Kidman)이 대부분을 책임졌던 [‘Buffet’ Mixtape]과 달리, 앞서 언급한 비엠티제이를 비롯해 여러 명의 신예 프로듀서가 참여했는데, 트랩, 이모 랩(Emo Rap) 등, 미 메인스트림 힙합의 다양한 장르를 준수한 완성도로 구현해냈다. 그중에서도 “Wickr Me”나 빌 스택스가 오랜만에 직접 프로듀싱한 “허경영”는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곡들이다. 다만, “TNF”, “Wake N’ Bake”, “답답해” 등은 특정한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세심한 악기 배치와 미니멀한 구성으로 고유한 무드를 구축했던 전작을 떠올리면,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피처링 게스트들의 활약 또한 다소 아쉽다. 염따를 제외하면, 대부분 TNF(Thur’sday is New Friday) 크루 멤버들을 포함해 신예 랩퍼들이 참여했는데, 라콘(Rakon)과 테드 팍(Ted Park) 정도를 제외하곤 설익은 퍼포먼스와 클리셰 가득한 가사로 흐름을 끊는다. 특히, “허경영”, “한국거가 아닌거” 같은 곡에서는 중반부까지 빌 스택스가 끌어올린 텐션을 단숨에 떨어트려 힘을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DETOX]는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대마초에 대한 신념이나 보편성과는 거리가 먼 라이프 스타일을 앨범 전체에 녹여냈고, 이를 탄탄한 프로덕션과 랩 퍼포먼스로 포장했다. 덕분에 한국 힙합에서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독특한 색깔의 ‘대마초 소재 앨범’이 탄생했다.
빌 스택스는 긴 커리어를 함께했던 활동명을 바꾼 것에서 더 나아가 그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그리고 이처럼 거침없는 행보는 음악적인 발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랩퍼들이 커리어 면에서나 음악적인 완성도 면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행보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들이 더 많이 남았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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