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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추다혜차지스
Album: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Released: 2020-05-24
Rating:
Reviewer: 강일권
오늘날 대중음악의 키포인트 중 하나는 장르의 해체와 결합이다. 그 결과물은 다양한 장르의 경계에 머무르거나 결국 어느 한 장르로 귀결되거나 아주 드물지만, 전례없이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난다. 추다혜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바로 그 드문 경우다. 무가(*주: 무속의식에서 무당이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와 펑크(Funk), 그리고 약간의 레게, 덥, 힙합이 혼합되어 탄생한 진귀한 결과물이다.팀 이름은 생소해할 이들이 많겠지만, 멤버 면면을 살펴보면 슈퍼밴드다. 추다혜는 민요와 록을 결합한 밴드 씽씽 활동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아티스트이며, 추다혜와 공동 프로듀싱을 맡은 이시문은 윈디시티(Windy City), 소울소스(aka 노선택과 소울소스), 김재호는 윈디시티, 까데호(Cadejo), 써드체어(3RD CHAIR) 등의 굵직한 밴드 출신이다. 김다빈도 밴드 플링 활동을 비롯하여 세션으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오는 중이다. 이처럼 국악부터 펑크, 알앤비, 록, 레게, 힙합에 이르는 구성원들의 넓은 음악 스펙트럼이 융합하여 폭발한 결과가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다.
’60-‘70년대 펑크 음악을 바탕으로 레게와 록, 그리고 재지한 힙합 사운드가 적재적소에 버무려진 프로덕션이 구축됐고, 일부 차용 수준이 아니라 아예 보컬 전체가 무당의 노래다. 그 중심에 추다혜가 있다. 콧소리와 요성을 주로 사용하는 서도민요 창법에 기반을 둔 그의 보컬은 시종일관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특히, "비나수+"와 "사는새"가 압권이다. 콧소리와 속소리가 섞이고, 격렬하게 떨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그의 소리는 씽씽에 이어 다시 한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주술을 건다. "비나수+"가 원전으로 삼은 평안도의 사령굿 중 하나인 다리굿은 서도 창법으로만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알려진다. 추다혜는 굿과 블랙뮤직, 과거와 현재, 현세와 내세의 한 가운데에서 보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렸다.
이 같은 추다혜의 보컬과 (아마도 이시문의 역할이 주효한 듯한) 탁월한 프로덕션이 만나 정서적인 풍요로움과 희열로 넘치는 음악이 나온다. 귀를 휘어감는 꺾기와 시간차로 강렬하게 떨어지는 일렉 기타 리프가 조화를 이룬 인트로성 트랙 "Undo"를 시작으로 약 35분간의 이른바 신묘한 '펑쿳(Funk + 굿)'판이 벌어진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무당방울 소리 뒤로 점점 차오르는 퍼커션이 긴장감을 형성하더니 이내 사이키델릭한 기타 리프가 등장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레이드백(Laid-Back)한 그루브를 만들어낸 “비나수+”, 재즈와 펑크 록으로 구성된 황홀한 혼합물 (feat. 김오키의 끝내주는 색소폰 연주) "사는새", 전통적인 펑크와 ‘90년대 재즈 랩 사운드가 보기 좋게 어우러진 “리츄얼댄스” 등의 곡을 들어보라. 전혀 예상치 못했으며,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루브다. 7번 트랙 “에허리쑹거야”를 활용한 덥 사운드(“복Dub)”로 짓는 마무리까지 더할 나위 없다.
그저 존재하는 무가를 변이없이 부른 게 아닌 점도 특기할만하다. 마치 프리스타일 랩처럼 무가는 현장성이 강한 음악이다. 이에 추다혜는 작자미상의 무가를 쓸 경우엔 가사를 재배열하여 이야기를 구성하거나 부분적으로 새로운 가사를 입혔고, 아예 전체 가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일례로 “비나수+”는 원전으로 삼은 다리굿에서 나오는 일시, 장소, 굿을 하는 이유 등을 밴드의 상황에 맞게 바꾸었고(‘이 나라 제일명당 돌아들어 / 금일명당으로 돌아드니 /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 / 이놀이 정성 디릴적에 / 서낭님 맞이로다 디립네다’), “차지S차지”는 후렴구 중 ‘아에헤에헤에’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순수 창작이다. 감흥을 더하는 요소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무가를 보컬 형식으로 삼은 얼터너티브 블랙뮤직이라 할만하다. 기존에 시도된 퓨전국악 계열의 작품들과 결이 완전히 다른 것은 물론, 완성도 면에서 월등하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언뜻 하이어터스 카이요티(Hiatus Kaiyote)나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의 음악을 연상케 하다가도 추다혜의 보컬이 입혀지는 순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음악이 된다.
세계대중음악계를 통틀어 이런 앨범은 없었다. 한 곡 안에서조차 장르와 탈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세워지는 것을 반복하는 가운데, 추다혜차지스는 혼돈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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