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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 NUNA
황두하 작성 | 2020-08-11 00:4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6 | 스크랩스크랩 | 38,245 View

Artist: 제시(Jessi)
Album: NUNA
Released: 2020-07-30
Rating:
Reviewer: 황두하










제시(Jessi)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허와 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 중 하나다.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해윤미래를 이을 여성 랩퍼의 이미지를 얻은 그는 이후 각종 예능에 얼굴을 비추며 힙합씬을 대표하는쎈 언니캐릭터로 소비되었다. 그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활동해왔고, 힙합에 큰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는실력파 랩퍼로 알려지게 됐다. 최근 재키 와이(Jvcki Wai), 스월비(Swervy), 이영지 등등, 많은 여성 랩퍼들이 약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시만큼의 인지도와 명성을 얻은 이는 없다.

 

문제는 그가 음악적으로 보여준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발표한 음악의 절대적 양도 부족할뿐더러 완성도도 좋은 편이 아니다. 그의 무기는 강한 발성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매력적인 톤의 보컬이다. 그러나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발음으로 일관하는 플로우와 기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나 기발함, 재치를 담아내지 못하는 가사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마치 예능에서 그를 소개하는 용도로 쓰였던 자막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2017년에 발표한 EP [UN2VERSE]는 이 같은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게다가 기성 랩퍼와 작곡가들에게 작사를 일임해 랩퍼로서의 기본적인 능력마저 의심하게 했다. 세 번째 EP [NUNA]는 싸이(PSY)가 이끄는 피네이션(P.Nation)으로 둥지를 옮긴 뒤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우선, 전작들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가장 많은 곡에 참여한 더블케이(Double K)를 비롯해 여전히 작사에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시 본인도 작사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음악에 눈을 뜬 어린 시절부터 홀로 한국에 와 커리어를 시작했던 순간을 뒤돌아보는 “Star”에는 여태 발표한 곡 중 가장 개인적이고 디테일한 이야기가 담겼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방황하는 여자의 심리를 일주일의 경과에 맞춰 묘사한 “Numb”도 흥미롭다.

 

그러나 나머지 곡에서는 기존의쎈 언니캐릭터와 섹슈얼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뻔한 가사로 일관한다. 이미 싱글로 발표한 바 있는 “Who Dat B”, “Drip”이나눈누난나 (NUNU NANA)” 등은 동어반복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한 패턴이다. ‘싸이 오빠 말했지 꼴리는 대로 해정도를 빼면 대부분 귀에 남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파티튠 트랙 “Put it on ya”도 마찬가지다.

 

이는 랩 퍼포먼스 탓이기도 하다. 과장된 발음과 정형화된 플로우가 죽 이어져 듣기에 버겁다. 특히, 특유의 발음은 종종 실소를 유발하기까지 한다. 보컬 퍼포먼스는 그나마 매력적인 편이지만, 평이하고 뻔한 멜로디 어레인지가 이를 살려주지 못한다. 게스트들도 “Drip”에 참여한 박재범을 제외하면, 무난한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환기해주지 못한다.

 

프로덕션도 실망스럽다. 싸이의 오랜 파트너인 유건형을 비롯해 많은 프로듀서가 참여했는데, 메인스트림 힙합/알앤비 사운드를 그럴듯하게 재현하는데 그쳤다. 현재 한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음악들이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트렌드를 비켜 나간 사운드 디자인도 다소 촌스럽게 느껴진다. 2013년도에 발표된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 “Talk Dirty”가 떠오르는 브라스 라인을 내세운눈누난나 (NUNU NANA)”는 대표적이다.

 

[NUNA]는 제시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앨범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사운드나 자기과시와 달리, 그 속을 채운 부실한 내용은 듣는 내내 민망하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의 힘을 빌렸음에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랩이 여전히 한계로 작용했다. 결국, 본작은 한국 대중문화 속 힙합의 스테레오 타입을 체현한 셀럽, 제시의 이미지를 연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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