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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넉살
Album: 1Q87
Released: 2020-09-30
Rating:
Reviewer: 황두하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2016)은 영리한 구성이 돋보인 앨범이다. ‘보통의 삶’이라는 테마 아래 본인과 타인의 지난한 경험을 교차해 구체적 언어로 풀어내어 공감을 끌어냈고, 성공담으로 앨범을 마무리하여 모두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는 구성을 취했다. 여기에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가사와 빈티지한 질감으로 잘 마감된 프로덕션을 통해 내러티브에서 오는 감흥을 배가시켰다. 특히, 당시 대한민국 청춘들 사이에 화두로 떠오르던 ‘헬조선’ 담론과 어우러져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친근한 이미지처럼 전에 없이 따뜻한 감성을 지닌 힙합 앨범이었다.오랜 기다림 끝에 발표된 두 번째 정규 앨범 [1Q87]은 전작의 다음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많은 면에서 상이한 성격을 지녔다. 가장 큰 차이점은 넉살 개인으로 이야기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이다. [쇼미더머니6] 출연 이후, 그를 찾아온 거대한 성공 속에서 겪은 혼란스러운 감정, 그리고 그와 그의 레이블 VMC를 향한 비난들에 맞선 적개심은 본작의 출발점이다.
성공의 경험 속에서 느낀 비루한 느낌들을 후렴구에서의 폭발하는 랩에 담아낸 “BAD TRIP”과 성공 이후 자신의 상황을 노예에 빗댄 “AM I A SLAVE”는 앨범의 바탕에 깔린 심리를 대변하는 트랙들이다. [작은 것들의 신]의 유쾌함과 따뜻함은 날카로운 호전성으로 대체되었다. 앨범의 전반부는 돈을 위시한 물질적인 소재(“WON”)나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빌려(“AKIRA”) 그의 현재와 심리 상태를 묘사해낸다.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넉살은 비유를 걷어내고 보다 내면에 집중한다. 이 같은 방향성은 레이블 동료들과 성공을 자축하긴 하지만(“브라더”), 순수했던 과거를 반추하는 “연희동 BADASS”와 꼬여버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나” 사이에서 내러티브 상 성공에 취한 현재를 그리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이후 “거울”에서 일그러진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을 위로해줄 타인을 갈구하며(“너와 나”), 종래에는 현재의 심리적 추락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도약이라는 희망을 품는다(“추락”).
이처럼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건 오로지 랩의 힘이다.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단어 선택, 구체적 묘사와 추상적 비유를 오가는 작법은 랩 음악이 지닌 고유의 재미를 최대로 끌어낸다. 여기에 특유의 비음 섞인 톤과 탁 트인 발성으로 시종일관 휘몰아치는 랩 퍼포먼스가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연희동 BADASS”에서의 퍼포먼스는 올해 발표된 한국힙합 트랙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게스트로 참여한 이들도 모두 적재적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한 가지 주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응집력은 [1Q87]의 미덕이다. 그러나 허점은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AM I A SLAVE”다. 성공 이후 삶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가는 본인을 노예에 비유한 이 트랙은 앨범의 기저에 깔린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금으로 된 성에서 마음은 목화를 따’라는 가사를 마주하는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만다. 인종적 당사자가 아닌 이가 본인의 상황을 흑인 노예에 빗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반대의 예를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딱 한 줄의 가사이지만, 곡의 설득력을 무너트릴 만큼 치명적이다. 다행히 이어지는 트랙들에서 디테일하고 독특한 표현의 가사로 내러티브를 쌓아나갔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라인이다.
프로덕션 역시 달라졌다. VMC의 인하우스 프로듀서들인 버기(Buggy), 프레디 카소(Fredi Casso), 홀리데이(HOLYDAY)와 오랜 파트너 코드 쿤스트(Code Kunst)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는데, 전과 달리 차갑고 어두운 질감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버기와 프레디 카소는 로파이(Lo-fi)한 질감의 신시사이저와 두터운 베이스라인을 사용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 녹여냈다.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후반부에서도 미니멀한 악기 구성이 전반부의 기세를 이어받아 일관된 색깔을 유지한다. 노이즈 소스와 보이스 샘플들이 어지럽게 충돌하며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인스트루멘탈 트랙 “Crack Kids(Interlude)”는 앨범의 사운드를 대변하는 곡이다.
그중에서도 차가운 무드의 신시사이저가 은은하게 깔리며 독특한 소스들이 난입하는 “Dance Class”, 808드럼이 주도하는 서던 힙합 사운드 위로 로스(Los)의 파트에서 쥐펑크(G-Funk) 스타일의 신시사이저를 얹는 센스가 돋보인 “Brother”, 넉살의 보컬을 디지털 가공해 트랙 전반에 깔아두는 코드 쿤스트 특유의 작법이 인상적인 “너와 나” 등은 개성과 완성도를 모두 확보했다. 그야말로 프로덕션의 성취가 빛나는 곡들이다.
앨범이 나오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넉살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미디어 출연과 큰 성공 속에서 겪은 개인의 이야기는 [1Q87]의 토대가 되었고, 외부의 상황보다 더 크게 변화한 내면의 소용돌이는 이 다음에 대한 궁금증과 막연한 두려움, 기대로 번졌다. 어쩌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탄탄한 랩과 프로덕션으로 정면 돌파해나간다. 그의 가사가 닿는 범위는 좁아졌지만, 그 내용은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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