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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차붐 & 리비도
Album: Hot Stuff
Released: 2020-10-02
Rating:
Reviewer: 남성훈
차붐(Chaboom)은 2010년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의 합작 앨범 [Still Ill]을 통해 확실하게 이름을 알렸다. 그동안 한국힙합에서 어설프게 시도되곤 했던 거리 무드 기반의 힙합을 제대로 구현했다. 그가 겉멋 없이 거칠게 뱉은 랩은 ‘안산’이라는 지역의 기운과 결합해 강한 시너지를 냈다. 이후 차붐은 10년 이상 꾸준하게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그의 랩이 지닌 고유한 날것의 그루브는 여전하다. 다만, 최근 수년 간 같은 이유로 예상가능한 범주 안에 머무르는 식상함 또한 감지됐다.[HOT STUFF]는 그가 이끄는 레이블 LBNC의 래퍼 리비도(Leebido)와의 합작 EP다. 앨범 타이틀과 트랙명, 커버를 번갈아 확인하다가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면, 아마도 [HOT STUFF]를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차붐은 누아르적인 삶을 꿈꾸는 양아치의 떫은 욕망 속 씁쓸하고 코믹한 기운을 준수하게 구현하면서, 주변 사물과 풍경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리비도와 함께한 이번 [HOT STUFF]는 아예 그들이 선택한 오브제들을 트랙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이 타이틀처럼 ‘핫’한 것들로 선택한 건 트랙 순서대로 담배, 차, 옷, 술, 집이다. 더 이상 뻔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극히 일상적 브랜드를 접목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호기심이 전혀 생기지 않는 기성 공산품이기에 사물 본래의 목적은 자연스레 희석되어 버린다. 굉장히 정석적인 오브제 배치다. 관건은 여기에 얼마나 상징적인 기능을 부여하느냐에 달렸는데, 차붐과 리비도의 결과물은 매우 효과적이면서 인상적이다. 둘은 힙합 음악에서 꾸준하게 다뤄지는, 달리 말하면 뻔한 주제들을 각 트랙에 배치한 오브제에 분할해 녹여낸다. 이러한 장치적 구성을 통하여 식상할법한 주제들을 꽤나 신선하게 환기한다.
담배를 내세운 “French Black”을 통해 래퍼로서 우위를 점한 후, “GV80”로 작은 성공을 과시하고, 의류 브랜드 “KIRSH: Two Cherris”로 섹스를 묘사하는 식이다. 더해서 여흥을 즐기는 “참이슬 Fresh”, 더 큰 성공을 향한 욕망을 투영한 “Xi”까지 생활 속 가시권에 있는 브랜드 위에서 만들어낸 감흥이 탁월하다.
시종일관 특정 브랜드를 맴도는 치밀하게 짜인 가사로 각 트랙의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펼쳐내는데 성공한다. 신인 리비도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트랙 대부분에서 차붐의 존재감엔 미치지 못하지만, 적당한 속도감과 깔끔한 딕션을 유지하면서도 뛰어난 박자감각으로 플로우를 형성한다. 특히, 재치 넘치는 가사가 더해진 “French Black”과 “참이슬 Fresh”는 매우 흥겹다. 비장미와 코믹함이 뒤섞인 가사를 능글능글하게 풀어내는 차붐의 랩도 여전히 탁월하다.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잡아 낸 생활형 단어와 즉흥성이 가미된 어투는 [HOT STUFF]에서 다룬 주제가 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아 있다는 강한 설득력을 더해준다. 모든 트랙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마진 초이(Margin Choi)는 각 곡에 걸맞는 색채의 비트로 둘을 지원했다. 곡을 관통하는 멜로디 루프로 중심을 잡고 공간감 있게 퍼지는 드럼 사운드로 세련된 무드를 만들어내는 감각이 발군이다.
적은 트랙 수 때문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HOT STUFF]는 잘 정돈된 아이디어를 수준급의 음악으로 실현한 작품이다. 이처럼 컨셉트와 주제의식, 그리고 캐릭터가 랩/힙합 음악 안에서 좀체 어긋나지 않는 한국 힙합 앨범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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