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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용 풋볼리스트 기자(Contributor)
[소울]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재즈 영화를 기대한다.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Jon Batiste)가 음악감독을 맡은데다, 주인공까지 그를 모델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역시나 재즈는 뉴욕이 배경인 신들을 채우는 음악이자 핵심 소재다. 그러나 가드너가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 ‘22’를 만나는 대목부터는 두 번째 음악감독의 비중이 크다는 걸 알게 되는데,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와 아티커스 로스(Atticus Ross/*모두 '나인 인치 네일스' 소속)가 만든 몽환적인 전자음악이 영화의 절반을 책임진다.그리고 종종 치고 들어오는 세 번째 음악의 축은 다양한 삽입곡이다. 여기에는 드러머 컬리의 목소리 연기를 한 퀘스트러브(Questlove)의 역할이 컸다. 퀘스트러브는 컬리의 성우 겸 음악 자문역으로 참여했다. 바티스트와 레즈너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것에 비하면, 퀘스트러브의 역할은 경쾌한 영화계 나들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영화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소울]은 백인 감독인 피트 닥터(Pete Docter)의 프로젝트였는데, 사려 깊은 픽사답게 수많은 흑인 예술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뉴욕 블랙 커뮤니티를 묘사했다. 원래 자문역이었던 켐프 파워스는 아예 공동 감독으로 합류했다. 베테랑 뮤지션 허비 행콕, 테리 린 캐링턴(Terri Lyne Carrington), 퀸시 존스(Quincy Jones), 교육자 조네타 콜 등의 의견이 반영됐다. 삽입곡 "Rappin Ced"를 부른 다비드 디그스(Daveed Diggs)는 뮤지컬 [해밀턴]에서 라파예트 겸 토마스 제퍼슨 역을 맡아 유명해진 연기자이자 래퍼/싱어다. 디그스 역시 엔딩 크레딧에 자문으로 이름이 올랐다.
퀘스트러브는 출연진 명단에 한 번, 자문 명단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다. 그는 두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당연히 음악 자문을 구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루츠(The Roots)의 드러머 겸 프로듀서로서 34년째 활동하면서 블랙 밴드음악의 전설이 됐고, 코미디언 지미 펄론(Jimmy Fallon)의 ‘투나잇 쇼’에서 하우스 밴드 역할을 하며 더욱 유연하게 음악 세계를 넓혀 왔으니 자문 역할로 딱 맞는 인물이긴 했다.퀘스트러브는 예능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며 망가지는 일도 꺼리지 않는다. ‘투나잇 쇼’의 특징인 음악 예능의 핵심이다. 최근에는 SNL에도 출연해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의 뺨을 후려치는 혼신의 몸개그를 선보였다. 이 점은 음악감독 바티스트 역시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의 ‘레이트 쇼’의 밴드 리더이자 반쯤 예능인인 것과 일치한다. 주인공 조 가드너를 바티스트에게서 따 왔듯이 조연인 컬리의 외모 역시 퀘스트러브(를 좀 더 근육질로 만든 버전)와 닮았다. 다만 컬리의 연주는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로이 헤인즈(Roy Haynes)가 맡았다.
배역의 비중은 작은 대신, 퀘스트러브는 삽입곡을 선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음반 20만 장을 보유한 ‘덕후’로서 뉴욕 흑인들이 실제로 집과 가게에 틀어놓을 만한 음악을 골라 추천하는 작업이었다. 두 감독이 “당신이 이 캐릭터라면 어떤 음악을 들을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퀘스트러브에게 던지긴 했지만, 딱히 자문을 구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퀘스트러브가 참지 못하고 추천 음악을 줄줄이 나열해대자 “사실은 당신을 캐스팅하러 온 거예요, 음악 이야기가 아니고요.”라고 말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퀘스트러브는 컬리 역을 받아들인 뒤에도 추천을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예정에 없었던 자문이 되어 엔딩 크레딧에 두 번 올랐다.
10곡이 조금 넘는 영화의 삽입곡을 들어보면, 퀘스트러브의 의견이 크게 반영됐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보컬로 인기를 끌고 있는 "Parting Ways"가 그렇다. 지하철역 통기타 가수가 부르는 자작곡으로 등장하는데, 뉴욕을 처음 탐험하는 22가 일상과 영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장면이다. 이 곡의 작사, 작곡, 연주, 보컬을 도맡은 건 코디 체스넛(Cody ChesnuTT)이다. 기타맨의 모자를 눌러 쓴 옷차림 역시 체스넛에게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기타 한 대 들고 길바닥에서 자작곡을 부르며 영감을 전파하는 역할에 체스넛만큼 어울리는 목소리도 없다. 체스넛은 가정용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한 앨범 [The Headphone Masterpiece](2002)를 통해 순식간에 이목을 끌었다. 조악한 음질, 데모 수준의 완성도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에너지가 가득한 트랙을 38개나 채운 앨범이었다. 블랙 밴드음악의 대부 루츠는 곧바로 체스넛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체스넛의 노래 "The Seed"를 커버해 앨범 [Phrenology]의 싱글로 삼고, 체스넛을 뮤직비디오 한가운데에 세우기까지 했다. 재능 있는 후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그러나 체스넛은 첫 앨범을 내는데 10년이나 걸리는 등, 기대에 비해 활동이 적었고, 관심도 뜸해졌다. "Parting Ways"는 2012년 영상으로 공개된 곡이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소울]을 통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퀘스트러브는 2014년 체스넛의 리믹스 앨범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 왔다.
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의상실에서는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Apple Tree"가 흘러나온다. 바두는 퀘스트러브의 오랜 음악적 동지로, 이 곡이 포함된 앨범 [Baduizm]에도 더 루츠가 깊이 참여했다.
또한, 이발소 장면에서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ATCQ)의 "Check The Rhyme"을 들을 수 있다. 이발소는 영화 [바버샵] 시리즈에서 보듯 블랙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사교 장소다. 이발소 벽에는 ATCQ뿐만 아니라 나스(Nas), 런디엠씨(Run-DMC), 엘엘 쿨 제이(LL Cool J) 등등, 왕년에 뉴욕을 대표하던 래퍼들의 음반이 줄줄이 걸려 있다. 특히, ATCQ는 핵심 멤버 큐팁(Q-Tip)이 퀘스트러브, 바두와 함께 소울쿼리안스라(Soulquarians)는 뮤지션 집단에서 교류하기도 했으니, 역시 퀘스트러브의 인맥으로 선정된 노래인 셈이다.조가 들르는 장소마다 1990년대 초반의 사려 깊은 네오 소울과 힙합을 선곡함으로써, [소울]은 이 영화가 그리는 뉴욕 블랙 커뮤니티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완성해 간다. 바티스트의 재즈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고, 레즈너의 전자음악이 관객의 몰입을 돕는 사이, 퀘스트러브가 고른 실제 뉴욕의 노래들은 현실감을 부여하는 소량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한편, 나머지 삽입곡은 대부분 극중에서 연주되는 재즈 넘버다. 그런데 여기서도 퀘스트러브와 닿아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We Get Along"은 소울/펑크 밴드 새런 존스 앤 더 댑 킹스(Sharon Jones and the Dap-Kings)의 곡인데, 이 밴드의 트럼펫 연주자 데이비드 가이(David Guy)는 현재 퀘스트러브와 함께 루츠에서 활동 중이다. 루츠가 정규앨범을 내지 않는 요즘에는 '투나잇 쇼'에서 퀘스트러브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II B. S."를 연주한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는 퀘스트러브가 가장 좋아하는 자서전을 쓴 뮤지션으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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