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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키드 밀리 & 드레스(Kid Milli & Dress)
Album: Cliché
Released: 2021-04-27
Rating:
Reviewer: 황두하
키드 밀리(Kid Milli)는 첫 정규 앨범 [AI, THE PLAYLIST](2018)에서 딱 맞는 음악 스타일을 찾은 듯했다.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비트 위로 무심한 듯 빠르게 내달리는 퍼포먼스로 귀를 사로잡았다. 비록, 차분하게 흘러가는 후반부의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낮긴 했지만,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3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그러나 이후 발표한 3장의 EP는 실망스러웠다. 유행하는 사운드를 따라간 뻔한 프로덕션과 안이한 싱잉 랩에서 좀처럼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장기인 화려한 랩 스킬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번에 발표한 [Cliché]는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 함께한 작품이다. 드레스는 지난 2019년 소금과의 합작 앨범 [Not My Fault]에서 힙합, 알앤비, 일렉트로닉이 뒤섞인 얼터너티브 사운드로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본작에서도 여러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폭 넓은 스펙트럼의 프로덕션을 들려준다. “Citrus”나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참여한 “Midnight Blue”처럼 록 음악까지 섭렵했다.
특히, 한 곡 안에서도 상반되는 질감의 악기들이 충돌하거나, 수시로 변주가 이루어져 단순히 장르를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것 이상의 화학적 결합이 돋보인다. 일례로 첫 트랙 “V I S I O N 2021”에서는 두터운 질감의 신시사이저와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일렉트로닉 기타 스트로크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독특한 무드를 만들어내고, “Face & Mask”에서는 빈티지한 질감의 유려한 피아노 연주와 808드럼, 보이스 샘플링이 섞인 전반부와 타격감 강한 드럼으로 변환되는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Citrus”와 “Bankroll”처럼 정반대의 성격을 지난 트랙들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아쉬운 건 키드 밀리의 퍼포먼스다. 그는 빠르게 단어들을 뱉다가도 여백을 두어 리듬을 푸는 식으로 플로우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앨범 내내 반복되어 오히려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드레스가 제공한 역동적인 비트의 맛을 살리지 못한다. “V I S I O N 2021”과 “Cliché” 같은 트랙은 대표적이다. 오토튠을 먹이는 것처럼 보컬을 디지털 가공한 부분도 워낙 많은 양의 텍스트를 뱉다 보니 단조로움을 상쇄하긴 어렵다.
게스트가 등장할 때마다 답답함이 해소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 곡에 참여한 신예 론(ron)은 나른함과 날카로움 사이에 있는 묘한 톤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선우정아와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보컬 안다영도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보컬로 곡의 하이라이트를 가져간다. 특히, 위협적인 신시사이저로 느릿하게 변주되는 “Bankroll”의 후반부에 등장해 특유의 끈적한 랩을 들려준 오케이션(Okasian)은 단숨에 집중하게 만든다. 앨범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다.
가사도 아쉽다. 그는 자기 과시와 씬에 대한 실망감, 팬데믹 상황 등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전반부에 포진된 자기 과시성 트랙에서는 말 그대로 클리셰를 따른 뻔한 표현들이 죽 이어져 듣는 재미가 반감된다. 게다가 틱톡(TikTok) 챌린지와 웹 콘텐츠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비판하는 “Challenge”는 직접 딩고(Dingo)의 콘텐츠에 출연했던 모습과 겹쳐지며 자연스러운 감화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허무함을 드러내는 “Leave My Studio”나 자신감 가득한 겉모습 안에 감춰둔 나약한 마음을 고백하는 “Outro”의 심경 변화도 와닿지 않는다. 팬데믹 속에서 살길을 찾아가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냉소적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Face & Mask” 정도만 인상적이다.
‘1 프로듀서 1 MC’ 조합의 앨범은 각자의 색깔이 뚜렷이 드러나면서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을 때 매력이 극대화된다. 그러한 점에서 [Cliché]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드레스의 프로덕션과 건조하게 툭툭 내뱉는 키드 밀리의 랩은 언뜻 좋은 궁합인 것 같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부진한 키드 밀리의 퍼포먼스 탓에 프로덕션마저 심심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만남이 ‘1+1’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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