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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nead Harnett - Ready Is Always Too Late
- 강일권 작성 | 2021-06-23 19:38 업데이트 | 추천하기 13 | 스크랩 | 12,953 View
Artist: Sinead Harnett
Album: Ready Is Always Too Late
Released: 2021-05-21
Rating:
Reviewer: 강일권
트렌드는 권태감을 부른다. 어느 분야에서나 비슷하다. 적당한 권태는 때때로 맛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입맛을 앗아간다. 10년 가까이 우후죽순 쏟아진 얼터너티브 알앤비(Alternative R&B)와 트랩 소울(Trap Soul)은 넓고 깊은 권태의 늪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지속적인 쾌락을 경험하겠지만, 누군가는 헤어나오기 위해 끊임없이 허우적댄다. 시네이드 하넷(Sinead Harnett)의 [Ready Is Always Too Late]은 권태감이 적잖이 누적되었다는 걸 느꼈을 무렵 만난 작품이다.디스클로저(Disclosure)와 루디멘탈(Rudimental)처럼 굵직한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와 협업한 바 있는 그의 음악은 트렌드에서 살짝 비켜나있다. 침잠된 무드와 앰비언트(Ambient) 사운드로 마감한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특질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마는 영국 출신의 알앤비/소울 싱어송라이터 대부분이 그렇듯이 현재보다는 과거의 음악을 자양분 삼은 느낌이 강하다.
보컬부터가 그렇다. 적당히 허스키한 음색을 바탕으로 구사하는 중저음의 보컬은 팝 음악과의 경계를 희미하게 한 오늘날의 젊은 알앤비 싱어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러니까 슬로우잼(Slow Jam)에 최적화된 끈적한 바이브와 기교는 줄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알앤비에 기반을 둔 보컬 스타일이다. "Stay"에서의 팔세토 보컬 역시 동시대의 감성을 품고 있다.
스틴트(Stint), 그레이즈(Grades), 기티(Gitty), 엠페이지스(M-Phazes)처럼 최근의 음악 경향이 강한 프로듀서가 대거 포진했음에도 오히려 반대의 감흥이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이 같은 하넷의 보컬 덕이다. 모든 음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듯 강하게 쥐고 잡아당겼다가도 흐름에 순응하듯이 느슨하게 놓아버리길 반복하는 보컬을 듣고 있으면, 곡에 따라 이는 감정의 파고도 달라진다. 로린 힐(Lauryn Hill), 티나 터너(Tina Turner),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등등, 그가 영향받은 싱어 목록에서 그의 음악 세계가 구축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Ready Is Always Too Late]이 옛 알앤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앨범은 아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90년대 알앤비 프로덕션이 적절히 배분되었고, 사운드와 구성 면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트렌드를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권태롭지 않고, 예스러움에 물길을 댔지만, 진부하지 않은 음악이 나왔다. 앨범 전반에 걸쳐서 그윽하게 살아나는 멜로디의 힘도 상당하다. 사랑과 인간 관계를 겪으며 느낀 심경을 자연재해에 빗대는 등, 은유적으로 표현한 가사 또한 인상적이다.
앞서 언급한 특징, 즉, 작금의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하넷의 보컬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곡, "Ready Is Always Too Late"과 "Stay"를 비롯하여 잔잔하게 내려앉는 피아노 연주 위로 보컬이 흘러가며 매력적인 멜로디가 생성되는 "Hard 4 Me 2 Love You", 재즈와 힙합을 끌어안은 '90년대 네오 소울을 재현한 "Like This" 등은 단연 하이라이트다. 특히 "Stay"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현악 파트는 본작에서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긴 순간이었다.
트렌드와의 거리두기 여부가 작품의 완성도나 감흥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다. 트렌드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맹신은 맹목적으로 트렌드를 따르는 것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태도다. 그럼에도 본작에서는 거리두기란 선택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Ready Is Always Too Late]은 단번에 귀를 휘감기보다 은근하게 스며들어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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