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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김효진, 황두하불안은 각양각색의 얼굴로 찾아온다. 여러 원인이 뒤섞여 있으니 시작과 끝을 숨긴, 마치 얽힌 실타래 같다. 누군가는 풀 수 없는 실타래 앞에서 무능을 느끼고 절망에 부대낀다. 누군가는 실타래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나아가려 한다. 야망이나 욕망 때문이 아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서다.
[PAINGREEN] 속에서 에이트레인(A.TRAIN)은 죽음을 동경한다. 삶이 쥐어준 폐허, 절망과 불안들이 일러준 무능을 노래한다. 신산스럽고 어두운 그의 음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읽힌다. 무기력에 파묻혀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일어섰고, 어느 순간엔 활기차게 노래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말하는 그에게 음악은 숨이고, 그를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리드머(이하 ‘리’): 간단하게 근황부터 말해주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에이트레인(이하 ‘에’): 일단은 둥지를 떠난 새가 되었어요. 회사와 계약이 끝났거든요. 안 좋게 끝난 건 아니고요. 최근 들어 제가 음악가로서 가는 지점이 확실해졌거든요. [PAINGREEN]의 청자들이 제 음악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걸 보면서 제 작품 세계가 (청자에게)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한 착각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봐도 될 것 같아 새 앨범 준비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한대음(한국대중음악상)에서 후보로 올려주시고 온스테이지에서 섭외가 오고…
리: 굉장히 바쁘게 지냈잖아요.
에: 네. 그래서 그것들을 준비하다 보니까 봄이 다 가버렸어요. ‘나 (새 앨범 준비) 해야 되는데, 진짜 해야 되는데’ 하고 있었더니 온스테이지 영상 이후로 공연 섭외 연락이 많이 와서 감사하게도 이런 시기에 공연을 좀 하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기회가 많이 없어서) 제가 어떻게 공연하고 어떤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미적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저에게 중요한 앨범이 나왔고, 그중에서 “HURT”처럼 주목받는 노래들도 생겼고, 그걸로 공연을 할 수 있어 또 감사하고요.
리: 이야기한 대로 이런 시기에 팬들을 만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에: 사실 오프라인에서 팬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만난 적이 없었거든요. 최근에 했던 티팩토리 공연이랑 아이다호 공연에서 제 음악을 따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마주하고, 가까이서 대화도 나누고, 응원도 받으니까 여태까지 열심히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앨범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는 생각에 좀 더 더듬이를 세우고 다음 앨범을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내러티브는 다 완성되어 있는 상태예요.
리: 새 앨범 외에 다른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에: 제가 계속 지원을 해왔던 문화 지원 사업에 합격했어요. 서울문화재단 문래 예술 공장에서 신진 예술가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지원금도 주고 시스템도 마련해 주는 공모가 있는데, 음악 부문에 제가 뽑혔어요. 팀 이름은 ‘ATP’이고 ‘All The Pain’이란 뜻이에요. 클래식 악기인 바이올린, 오보에, 첼로랑 모듈러 신스를 비롯한 전자 악기들로 음악을 구성할 예정이고 동시에 온스테이지에서 한 것처럼 미디어 아트도 구상 중이에요. 지난 한 1년 반 정도 실제로 죽음들이 있어 왔잖아요. 자살도 있었고 질병으로 인한 죽음도 있었고. 그런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들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고 그 고통 위에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한 위로를 만들어 나갈 프로젝트예요.
리: 'A.TRAIN'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는지 궁금해요.
에: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Take The “A” Train”이라는 곡이 있어요. 듀크 엘링턴이 한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빌리 스트레이혼(Billy Strayhorn)을 보고, 자기 집이 있는 슈거 힐(Sugar Hill)까지 찾아오라며 집으로 오는 방법을 알려줬었대요. 그 방법을 주제로 한 곡이 "Take The “A” Train"이에요. 거기서 따온 이름입니다. 슈거 힐이 할렘에서는 부자 동네인데 거기로 가는 열차가 우리나라로 치면 지하철 1호선인 “‘A’ Train”이었대요. 어떻게 보면 막연한 희망 같은 거죠. 굉장히 음악적이고 철학적인 이름입니다.
리: 대학에서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했고 일반 회사도 다닌 걸로 압니다. 음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요?
에: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노래도 좀 잘했어요. (웃음) 중학교 때부터는 춤을 추기도 했고요. 그것이 저한테는 너무 즐거운 일이었지만 저희 부모님은 그들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공부를 좀 많이 시키셨어요. 그게 넉넉해서가 아니고 정말 많은 희생으로. 그걸 져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던 거고. (내가 뮤지션이) 될 리가 없다라고 주문을 내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음악에 관심을 두면서도 학생으로, 직장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했었죠. 그냥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노래 부르는 영상을 올리고, 버스킹도 하면서 욕구들을 해소했던 거 같아요. 그러던 와중에 (전에 소속돼 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피처링을 하나씩 하게 되고 노래도 계속 쓰게 되고. 처음엔 직장을 관두지 않고 음악을 병행했어요. 그런데 음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게 의미없게 보이더라고요. 한 번은 제가 화장실에서 남 용변 소리를 들으면서 가사를 쓰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에 ‘올 때까지 왔나 보다.’ 싶어서 회사를 나오게 됐죠. 그렇게 가난한 음악가의 삶을 시작하게 됐어요. 퇴직 사유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나요. ‘꿈을 찾아서.’.
리: 좋아하는 아티스트 혹은 영향 받은 아티스트가 궁금해요.에: 정말로 좋아하는 건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맥스웰(Maxwell),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도 정말 좋아하고 에릭 베네(Eric Benet), 그리고 탱크(Tank)도 좋아해요. 그들의 노래를 커버하면서 그런 음악을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 그런데 제가 음악을 막 시작할 당시에 미국 본토 음악 시장이 많이 바뀌었어요. 컨템퍼러리 알앤비(Contemporary R&B)는 옛 것이 되고 트랩 소울(Trap Soul)이 유행했죠. 그 과정에서 탱크처럼 유행을 자기 걸로 흡수해서 자신의 색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이 살아남더라고요. 슬프지만 그게 너무 현실이더라고요. ‘내 것’에 대해 생각할 즈음에 영향을 받았던 아티스트는 본 이베어(Bon Iver),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아우스게일(Asgeir), 제임스 빈센트 맥모로우(James Vincent McMorrow), 라이(Rhye)였어요.
리: 음악의 결이 많이 바뀌었네요.
에: 엄청 바뀌었어요. 그렇게 믿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당시에 (제가 좋아하는 걸) 못 했나 봐요. 믹스테입도 트랩 소울 쪽으로 발매했었는데, 저는 강한 비트에 슬픔과 서정적인 것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if you"가 그런 노래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화려한 노래를 발라드로 듣더라고요. 그 때 깨달았어요. 사운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서가 중요한 거구나. 내가 구슬프게 표현하는 구나. 나는 그 쪽(힙합 알앤비)이 아니구나. 그때 힙합 베이스의 알앤비를 그만두게 됐어요.
리: 첫 EP [HELLO, MY NAME IS INSCURE.]부터 음악적 변화가 느껴지는데, 그 시점부터인가요?
에: 맞아요. 정확히 딱 그 시점부터 바뀌었어요. 사실은 제가 제일 힘들었던 때예요. 당시에는 제가 믿어왔던 게 틀렸다고 믿어야만 음악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좋아하는 걸 관두고 어느 정도 기획된 이미지 안에 음악을 채워야 했거든요. 근데 그렇게 낸 [HELLO, MY NAME IS INSCURE.]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된 거죠. 괴로웠죠. 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나간 자리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을 만큼이요. 그 음악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음악이라는 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인가 보다 싶었죠.
리: 이야기한 대로 음악에 담는 소재가 굉장히 개인적이에요. 추상적이고 음울하기도 하고요. [PAINGREEN]은 그게 극대화된 앨범인데,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에: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절망감으로 가득해 매일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던 때예요. 어느 날엔가 제 애인이 그러더라고요. “넌 공부도 잘하고 그냥 하면 잘하면서 왜 이렇게 자기 관리를 안 해. 이제 무대에 안 설 거야?” 그래서 제가 “어떻게 서. 못 서.”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그러더라고요. “공부를 해서 음악이라도 만들어.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해서 의미가 있지. 이렇게 그만둘 거야? 그러면 나는 뭐가 돼.” 그때 아차 싶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작업실로 달려가서 만든 게 “NAKED ODYSSEY”였어요. 그 다음에 만든 게 “집에 가자"였고요. “NAKED ODYSSEY”에 이어지는 대답 같은 곡이에요.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집에 가자고 말해주는. 그 와중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았고요. 그래서 우울이 찾아왔어요. 타개될 리 없는 우울한 상황이더라고요. 마음의 병이 너무 심각해졌을 때 썼던 게 “SWEET SIDE”였어요.
리: “SWEET SIDE”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에: 부정적이었어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야, 네 음악은 정신병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만든 죽기 직전에 만든 노래 같아.”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렇게 만든 노래인데요.”. 그때부터는 누구에게도 제 음악을 들려주지 않고 혼자만의 작업을 위해 문을 닫았어요. 그렇게 “CORK”를 만들었어요. 그 곡을 완성한 날 눈이 탁 감아지더라고요. ‘나의 음악’이라고 일컬을 만한 게 태어났다 싶었어요. 그렇게 [PRAY ON MY INSECURITY]을 냈을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음악을 누가 들어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 좋은 음악이라도 만들자. 이건 그냥 나만 구원하면 돼.’. 근데 마음 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자꾸만 죽음을 동경하게 되고 결국은 [PAINGREEN]을 내고 죽겠다는 마음까지 먹었어요.
리: [PAINGREEN]에 닿기까지 힘든 과정이 있었네요.
에: 그래도 [PAINGREEN] 앨범을 내고 나서는 음악과 제 자아가 조금 분리가 됐어요. 제가 음악과 저를 분리하지 못 하고 주변 상황에 흔들려 하니까 친형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간장게장 시’(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를 지은 작가가 한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들었대요. “선생님, 간장게장 못 드셔서 어떡해요. 엄마 생각나고 슬프셔서 이제 못 드실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그 시인이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는 거예요. “당신들은 저한테 다 속았네요. 저 간장게장 완전 좋아하고 알 가득한 거 완전 잘 먹어요. 그걸 보고 해석하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간장게장을 보고 모성애를 생각한 건 제가 맞지만, 그게 정말 안타까워서 쓴 시는 아니에요. 그 자아랑 저는 분리돼 있습니다. 저는 창작자이지, 제 마음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형이 그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면서 “너는 무조건 네 세계를 분리해야 돼.” 하더라고요.
리: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나요?
에: 저는 그 두 개를(‘음악’과 ‘자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진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저 내가 만드는 음악이랑 자아가 합일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번 (분리) 해봐야 되겠다 싶더라고요. 다음 날부터는 작업실에서 나올 때 문을 걸어 잠그면서 감정을 두고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또 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앨범을 완성시킬 수 있겠다, 나는 이제 좀 살아봐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절망까지 갔다가 올라오는 과정들이 이미 다 음악으로 쓰여져 있으니 이걸 발매하고서 그때 음악을 그만두던지, 그럼에도 죽고 싶으면 죽던지, 뭐라도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으로 [PAINGREEN] 을 기획하기 시작한 거죠.
리: [PAINGREEN] 앨범 중에서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거나 유심히 들었으면 하는 트랙이 있어요?
에: 제일 애정하는 건 “추모”랑 “Please Someone”, “SWEET SIDE”까지의 서사예요. 변태처럼 만들었거든요. 내가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만든 음악이고 또 그게 제 경험에서 온 소재들이에요. “Please Someone”은 제가 정말 신을 찾던 소리니까 그렇게 대성당이 생각나도록 만든 것이고 그래서 종교 색이 아주 강하게 들어간 거고요. 또, 성당에서는 12월 24일에서 25일 넘어갈 때 1년에 딱 한 번 유황을 향로에다 넣어서 소리를 내면서 향을 퍼뜨려요. 그 소리를 “Please Someone”이 끝날 때 넣어서 “SWEET SIDE”에 나오는 하이햇이랑 이었어요. 착착 하는 소리를. 앨범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거였어요. ‘나 정말 죽고 싶어서 여기까지 갔었지만, “CORK”를 만들고 “견딜만큼만”을 정성스레 부르는 나는 살아 있다.’ 애정이 많이 가고 앨범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건 메시지를 떠나 그 세 곡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의 실력이 제일 많이 올라가 있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게 “추모”랑 “Please Someone”이거든요.
리: 앨범 서사의 얼개를 짤 때 영향 받은 작품이 있다면요?
에: [워킹데드]예요. 아주 닿을 리 없는 지점이죠. (웃음) 그걸 본 이유가 앨범 때문은 아니었고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봤어요. 한참 누워있을 때. 그 작품이 초반에만 좀비에 관한 얘기고 어느 순간부터는 삶에 대한 이야기예요. 세상이 망했어요. 그런데 본능에 의해서 아기가 태어나요. 의료가 끝난 위생이라고는 없는 시대에 삶이 태어나고 산모는 다 죽어요. 그 안에서 희망도 있고요. 결국은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이야기거든요. 그걸 보면서 되게 마음 아파했고 또 뭉클했어요. 뜬금없지만 [보노보노처럼 살아서 다행이야]라는 책은 저한테 아주 많이 힘이 됐어요. 뻔한 위로지만 그런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리: 앨범에서 ‘초록 유령’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 유령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에: [고스트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어요. ‘남겨짐’에 대한 얘기인데, 그 영화에 유령이 나와요. 제가 이입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주인공이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주변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좋지 않은 반응을 받는다거나. 저도 그것과 비슷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고 스스로를 괴롭게 했던 날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앨범에 유령을 등장시킨 거고, 그게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는 오마주예요. 유령이 초록색인 건 저의 우울이 초록색이기 때문이고요.
리: 이 ‘초록 유령’이 뮤직비디오에도 나오잖아요.
에: 네. 저한테는 페르소나 같은 존재예요. 뮤직비디오를 제가 직접 찍었는데, ‘초록 유령’에게 디렉팅을 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그 '유령'의 움직임들로 다 표현할 수 있겠더라고요. ‘초록 유령’은 너무 너무 외로운 존재이고, 죽음을 동경하는 존재이고, 외롭고 싶지 않아서 주변에 있는 존재들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찍는 와중에 제가 벅차 오르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추모” 비디오를 찍으면서는 되게 많이 울었어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앨범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죠. 그게 저한테 또 다른 영감이 되고. 공연할 때도 같이 하고요.
리: 앞으로도 같이 하는 건가요?
에: 그게 제 음악을 드러내는 데에 되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어요. ‘(공연장이) 관객도 적게 들어오고 음향도 안 좋고 조명도 없으니까 이번에는 유령 없이 가볼까?’ 하는 게 저한테는 용납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무조건 다 같이 가고 싶어요.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든 거니까.
리: 재미공작소에서도 그렇게 했었죠? 거기가 엄청 협소한 공간이잖아요.
에: 맞아요. 근데 계속 앉아 있잖아요. 저는 그 모습이 [고스트 스토리]에서 왔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는 거. 왜냐하면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HURT”가 나오면 갑자기 일어나서 춤을 추고요. 그 모습은 사실 아주 강력하게 살고 싶은 에너제틱한 모습이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저한테 힌트가 많이 되기도 해요. 그 모습 때문에 어떤 성과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어요. 저는 이제 죽을 리가 없어요. 이제는 너무 살고 싶어요.
리: 아까 새 앨범 준비가 바쁜 일정으로 조금 미뤄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럼 언제쯤…
에: 기대하지 않은 결과이긴 했지만, 한대음에 후보로 한번 가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에 수상을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잖아요. 앞으로의 음악 인생이. 사실은 그러지 않아도 너무 많이 달라져서 너무 기쁘게 살고 있지만, 정말로 수상을 하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너무 미운 마음들인데, 그렇게 제 상품 가치를 판단하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한번 상을 타보고 싶은 거예요. 원래는 온스테이지나 다른 공연들이 잡히기 전에는 새 앨범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온스테이지를 준비하다 보니 봄이 가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올해 안에 새 앨범을 끝내기에는 제 고민의 깊이가 얕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그 정도 깊이까지 내가 파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정도의 우울이 이제는 없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 내후년 한대음입니다! (웃음)
리: 새 앨범이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에: ‘초록 유령’이 당분간은 저의 페르소나일 것 같아요. 색은 아마 바뀔 수도 있고요. 봉준호 감독님이 아카데미에서 했던 수상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했잖아요.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PAINGREEN]을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발매 후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이 해석되고 공감을 얻는 걸 보면서 새 앨범을 향한 용기를 많이 얻게 됐고요. 저런 앨범은 공감을 얻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아마 다음 앨범에서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아요. 그 정도의 죽음까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게 좀 뻔해질 수도 있잖아요. 뻔한 건 하기 싫거든요. 앞서 말했듯이 내러티브는 완성됐고 어느 정도 각만 잡힌 상태입니다.
리: 요즘 듣는 음악이나 가장 관심 가는 음악이 있다면요?에: 요즘은 기타 베이스의 음악을 많이 들어요. [PAINGREEN]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부터는 계속 아이슬란딕 포크에 많이 심취해 있었거든요. 공활하고 공허하고 공간감 넘치고, 건조하게 노래하는데 철학적인 가사가 너무 잘 붙는. 제가 곧 죽어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나 봐요. 그래서 그런 음악으로 눈을 많이 돌렸고 거기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아이슬란딕 포크에 계속 심취해 있게 되더라고요. 깊이 심취해서 듣는 건 본 이베어예요. 본 이베어 공연을 실제로 봤을 때 황홀경을 느꼈어요.
리: 커뮤니티에 종종 등장하는 걸로 압니다. 평소에 피드백을 많이 찾아보나요?
에: [PAINGREEN] 이후로 그래요. [PAINGREEN]을 내고서 2~3주 지난 시점에 멜론 투데이 수가 폭발한 적이 있어요. 이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혹시나 싶어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는데 제 앨범과 관련한 글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거기에 댓글 쓴 분들 중 몇몇이 저를 예전부터 꾸준히 지켜봐 왔다고 했어요. 제 마음과 음악을 가치 있게 보는 사람들이, 팬들이 거기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글을 쓰고 CD 증정 이벤트도 하게 됐고요.
리: 글을 굉장히 재밌게 쓰더라고요.
에: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 유머러스하게 쓰는 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같은 맥락으로 “HURT”도 밝게 쓴 거거든요. 외롭고 고독한 노래를 일부러 그렇게 띄운 거예요. 외로움의 춤을 형상화시킨 거죠. 그러면 좀 덜 부담스럽잖아요. “떠나지 마. 제발… 나 죽어!” 이러면 다 떠나죠. 오히려 그걸 쿨하고 유머러스하게 얘기하면 오히려 그 말이 들리기도 하더라고요.
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은 어떤 사람 같아요?
에: 되게 쓸데없이 진심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괜한 상처도 받는 거예요. 전 그런 저를 싫어하지 않아요. 좋아해요.
리: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에: 사실 저는 제 음악을 어떻게 알려야 되는지 많이 고민하다가 포기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리드머에서 제 음악 리뷰를 그리 써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드려요. 이후로 한대음에서도 제 음악에 집중을 해주고 네이버 온스테이지, 재미공작소에… CD도 다 팔리고요. 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에 돈을 쓰기만 하는, 너무 진심이기만 한 내 모습을 믿고 도움 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마스터링 해주는 분도 그렇고, 의상 협찬해준다는 분들, 제 음악에 영향받았다고 연락 주는 분들도 있고. 이제는 정말 다 진심인 분들만 남았거든요. 그 분들한테 정말 감사합니다. 아트 팀, 밴드, 초록 유령한테도 너무 너무 고맙고요. 저는 스스로 감동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음악에 가치를 느끼고, 그걸 만들 뿐이에요. 앞으로도 그런 음악을 많이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런 음악들 앞으로 나올 제 음악과 새 앨범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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