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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oy Crookes
Album: Skin
Released: 2021-10-15
Rating:
Reviewer: 장준영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하지만 이 쉽고도 자명한 문장과는 다르게, 막상 나답게 살아가기란 퍽 쉽지 않다. '나'란 존재를 온전히 지키기엔 자신을 깎아내거나 감내할 일이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의견이 묵살되거나 결과를 인정받지 못하며, 존재를 부정당하기 십상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지키고자 한다. 목소리를 내고 만족을 찾으며, 자신을 어필하곤 한다. 삶의 주체가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말이다. 조이 크룩스(Joy Crookes)의 첫 정규작 [Skin]은 그의 중심인 자아, 정체성, 그리고 삶을 탐구하고 돌아보는 시간이다.
크룩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동양과 여성이다. 그는 데뷔 초부터 혼혈과 여성이란 정체성을 강조하여 두각을 보였다. 방글라데시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내용이나 뮤직비디오에서 동양적 이미지를 적극 사용한다. 게다가 동양계 여성으로서 겪은 수많은 경험도 중요한 소재로 끌어온다. 보편 특수한 이야기가 생동감 넘치면서도 진솔한 표현과 어우러져 독특한 감흥을 자아낸다.
“Unlearn You”가 대표적이다. 데이트 폭력의 끔찍한 경험을 담은 곡이다. ‘파란 것이 내 눈에 흘러, the blue, It floods my eyes / 너의 손은 나를 쥐고 있어, Your hands grip mine / 내 혀는 여전히 너에게 묶였지, My tongue still ties for you’와 같은 은유적 표현이나, '내 몸에서 너를 지우고 잊을 수 있을까?, Can I cross you out and unlearn you from my body?’라 말하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잊기 힘든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매혹적인 후렴구가 이끄는 “Feet Don’t Fail Me Now”에서는 동양계 여성으로서의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소수자로서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갔던 지난날은 보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소리를 내고자 한다.
‘나는 두려웠나 봐, Man, I guess I was scared / 지금 무너지면 안 돼, Feet, don’t fail me now / 내 자리를 지켜내야 해, I got to stand my ground / 노력하는 것도 좋겠지만, And though I’m down for trying / 부정하는 게 더 나아, I am better in denial’
크록스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Skin"에 이르러 폭발한다. 알앤비 발라드인 이 곡에서 어떤 곡보다도 따듯하면서 분명하게 존재 가치를 긍정하고 삶을 예찬한다. 절망하던 지인을 보며 써 내려간 가사에선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자신을 보듬는 힘을 목도할 수 있다.
‘너의 피부가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을 아니?, Don’t you know the skin that you’re given was made to be lived in? / 너는 삶이 있어, You’ve got a life / 너의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어, You’ve got a life worth living’
이외에도 이민자 가족으로서 겪었던 현실을 은유로 담아낸 “19th Floor”, 가족 간에 겪는 갈등을 표현한 “Trouble”, 2019년 말에 영국 보수당의 압승에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한 “Kingdom” 등 흥미롭고 울림을 주는 노랫말이 가득하다.
근사한 이야기로 꽉 채운만큼, 프로덕션 역시 알차다. 프로듀서 블루 메이(Blue May)가 주도한 앨범은 알앤비의 서브 장르와 레트로 소울을 골자로 완성도를 높였다. 일례로 고전 소울 넘버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에 농밀한 보컬이 어우러진 “To Lose Someone”, 60년대 소울과 사이키델릭 록의 향수를 자아내는 사운드와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Wild Jasmine”에선 엄청난 몰입감과 빈틈없는 구성이 압도한다.
선명한 멜로디와 함께 중독적인 리프가 매력적인 “Kingdom”, 레게 리듬과 타악기 사용을 영리하게 활용한 “Trouble”, 브라스와 현악 소스 사용이 돋보이는 “I Don’t Mind”, 재즈적 요소와 가스펠을 끌어온 “Poison” 등등, 곡마다 스타일이 매우 다채롭지만,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풍성한 코러스와 노이즈 이펙터 활용이 끝내준다. 서로 다른 트랙을 유사한 톤으로 만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내 느끼도록 한다. 또한 의도적인 사운드 잡음이 목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마치 60-70년대 앨범을 듣는 듯하다. 경탄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앨범을 더욱 특별한 위치로 만드는 데에 크룩스의 보컬을 빼놓을 수 없다. 디바처럼 엄청난 고음을 내지르지는 않지만, 농밀하고도 풍성한 중저음이 고음 못지않게 공간을 꽉 채운다. 다소 갈라지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가 떨림을 낳으며 귀를 적신다. 피아노로 시작하여 웅장한 사운드 속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알앤비 발라드 “Power”는 그 장점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다.
[Skin]에선 조이 크룩스가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지키려는 다짐을 확인할 수 있다. 피부가 인간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처럼, 그는 정체성과 삶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통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물론이고 프로덕션과 퍼포먼스에서 주체가 명확하다.
크룩스가 겪은 풍파만큼 상처는 늘었지만, 피부는 더욱더 단단해졌다. 그 강인한 모습만큼 [Skin]은 옹골지고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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