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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마일드 비츠(Mild Beats)
Album: Fragment
Released: 2021-10-14
Rating:
Reviewer: 황두하
오랫동안 활동해오며 고유한 영역을 구축한 베테랑 아티스트가 스타일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의 [화면조정](2020)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샘플링 위주의 둔탁한 붐뱁 스타일에서 벗어나 사이키델릭한 무드의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운용한 음악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복면강도”, “Habit”처럼 래퍼들이 참여한 붐뱁 트랙도 로파이(Lo-Fi)한 질감의 소스가 더해져 이전과는 다른 감흥을 줬다. 무엇보다 앨범의 완성도가 뛰어났다. 스타일은 달라졌어도 실력은 그대로였다.
그의 변신은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첫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앨범 [Fragment]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전작에서 살짝 선보인 사이키델릭 프로덕션과 재즈, 알앤비 등의 장르가 전면에 부각됐다. 재즈의 잼 세션처럼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다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신스가 은근하게 울려퍼지는 첫 트랙 “Fall”은 앨범의 방향성을 암시한다.
마치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 같은 전위적인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과 힙합이 조화를 꾀한 인상이다. 한편, “From The Soul”에서는 러버스 락(Lovers Rock) 사운드까지 껴안는다.
“Psychedelic 1993”, “Bounce”, “”Fuzzed”, “Mirage”, “Hipnosis” 등등, 역동적인 변주를 가미한 곡들도 눈에 띈다. 힙합 작법의 전형을 따른, 반복되는 루프 중심의 트랙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적절히 환기한다.
이외에도 23곡이 이어지는 동안 크고 작은 변주가 이루어지고 악기가 더해지는 등, 극적인 연출의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일례로 “Mirage”에서는 중반부부터 드럼 사운드가 소강되고 신시사이저만 남아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황홀한 무드가 연출된다. 각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상이한 요소들을 조립하고 구성하는 마일드 비츠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더불어 전반적으로 로파이한 질감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 동부의 명료하고 묵직한 붐뱁 프로덕션을 구현했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견 고 제이딜라(J. Dilla)가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Way to Donut Shop”을 통해 딜라 특유의 작법을 오마주했다.
한국 힙합 씬에서 인스트루멘탈 앨범은 존재 자체가 드물다. 근 몇 년 사이에 장르 팬들로부터 주목받은 인스트루멘탈 앨범은 더 콰이엇(The Quiett)의 [Q Train 2](2016) 정도가 유일하다. 그래서 [Fragment]는 좀 더 각별하다.
한국에서 이만큼 뛰어난 힙합 프로듀서의 인스트루멘탈 앨범은 찾기 어렵다. 색깔이 확고했던 베테랑 프로듀서가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이룬 성취이기에 더욱 놀랍다. 마일드 비츠라는 대체 불가능한 장인의 품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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