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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탐쓴(TOMSSON)
Album: Korean Chef
Released: 2022-07-28
Rating:
Reviewer: 강일권
한국 힙합에서 로컬 래퍼 크레딧이란 판타지나 다름없다. 국토 면적, 인구수, 문화적 기반과 인프라 등등, 여러 부분을 고려했을 때 서울을 제외한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며 그곳의 지지를 바탕으로 살아남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래퍼들의 출신지는 다양하지만, 주된 활동 무대는 서울일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래퍼 탐쓴(TOMSSON)의 행보는 도드라진다. 그는 꽤 오랫동안 대구를 근거지 삼아 활동해왔다. 석 장의 정규 앨범, 두 장의 EP,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하고 각종 지역 무대에 서왔으니 말로만 대구를 외치는 게 아니란 사실은 자명하다. 특히 지역의 언어와 색깔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음악에 녹인다.
지난 1월에 발표한 싱글 "역전포차"에서는 MC 메타와 함께 대구 사투리로 벌스를 채웠다. 마이노스 인 뉴올의 "Gentleman`s Quality: 건배 (Feat. Mecca)", MC 메타와 DJ 렉스의 "무까끼하이", 머쉬베놈의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에 이어 사투리로 된 랩의 참맛을 전해준 곡이었다. 그만큼 이 곡을 통해 탐쓴을 새로이 보게 됐다. 정체성을 제외하면 랩에서의 차별성이 희미했던 그가 고향의 언어를 사용하니 전혀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새 앨범 [Korean Chef]에서도 강력하게 꽂히는 곡은 또 한 번 사투리로 조진 “영”이다. 가사와 래핑으로부터 "역전포차"보다 호전적 기운이 뿜어나오는 가운데 마디마다 낙차가 큰 사투리 플로우와 그 안에서 펄떡거리는 방언 라임이 쾌감을 자극한다. 둔탁한 드럼에 맞춰 박력 있게 떨어지는 후렴구도 찰지다.
(아쉽게도) 온전히 사투리로 된 랩은 단 한 곡뿐이지만, “영”에서 드러난 탐쓴의 태도와 현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지역적, 문화적 환경은 [Korean Chef] 전체를 관통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주류에서 떨어져 있는 래퍼의 이야기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래퍼들의 이야기와 대척점에서 한국 힙합의 또 다른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 안을 채우는 건 염세, 분노, 자부심, 자기연민, 인정욕구, 절망 등의 감정이다.
탐쓴도 분명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였고, 현실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엿보인다. 다만 [Korean Chef]의 결은 좀 다르다. 꾸준히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의욕 있게 달려왔으나 그다지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을 마주한 지방 래퍼로서의 괴리감이 비교적 덤덤하게 풀어져 있다. 여기엔 여유로운 래핑과 프로덕션이 조성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일례로 “매뉴얼”에서 탐쓴은 힙합 팬과 아티스트가 보여온 모순을 꼬집으며 이죽거리기도 하지만, 레이드백(laid-back)한 그루브의 비트와 후렴구가 가사에서의 날카로운 적의를 중화한다. 이 같은 조화 덕에 저마다 다른 정서가 담긴 곡이 이질감 없는 흐름을 형성했다. 특히 “솜씨” – “매뉴얼” – “영”, “영남” – “연마” – “연계”로 이어지는 구간의 몰입도가 높다.
탐쓴의 랩은 다소 과도하게 감정 표현을 투영한 플로우에서 종종 불안정한 순간이 노출됐던 과거와 달리 유연하게 전개된다. 그의 최고 무기인 “영”에서의 사투리 랩을 비롯하여 “연마”에서 한국 힙합 명곡의 가사를 재치있게 인용한 것과 “영남”의 첫 번째 벌스에서 멜로디를 가미하여 선보인 플로우는 [Korean Chef]에서 랩의 감흥이 제일 극대화된 지점이다.
뒤를 받치는 루시드 비츠(Lucid Beats)의 프로덕션 또한 상당히 탄탄하여 흥취를 돋운다. 붐뱁에 기반을 둔 비트는 레이드백하거나 날렵하다.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께의 드럼과 감각적인 루프가 조화를 이루었고, 탐쓴의 랩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긴장감 있는 진행이 돋보이는 “영”과 “연마”는 하이라이트다. 중독적인 루프가 여러 사운드 소스와 절묘하게 섞여서 귀를 잡아끈다. 루시드 비츠는 비교적 빠른 속도의 붐뱁 프로덕션을 잘 다룰 줄 아는 듯하다. 비트 변주가 능숙하게 이루어진 “매뉴얼”과 “영남”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후반부의 힘이 약하다. “텔레비전”부터 감흥이 줄어든다. 앨범의 컨셉상 반상에 해당하는 부분이다(*주: ‘Korean Chef’는 전채 요리, 주 요리, 반상 파트로 구성됐다.). 탐쓴의 래핑은 갑자기 아쉬웠던 과거로 돌아간 듯하고, 루시드 비츠의 비트도 전과 달리 예리하지 않다. “어디서 무얼하건”은 탐쓴의 랩이 가장 무뎌진 순간이다.
스피너스(The Spinners)의 “I Found Love (When I Found You)”를 샘플링한 “텔레비전”은 원곡의 루프가 다소 안일하게 사용되었으며, 팝 랩 사운드가 이전까지의 흡입력 있는 무드를 깬다. 또한,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Walk on By”를 샘플링한 “얼음꽃”은 보컬을 완전히 변형시킨 시도는 인상적이나 단선적인 드럼과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아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마무리는 괜찮다. “시작의 장소”는 가리온의 2005년 트랙 “약속의 장소”와 맞닿은 가사, 그리고 사운드 프로바이더스(The Sound Providers)나 재즈 리버레이터즈(Jazz Liberatorz)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하고 멜로딕한 재즈 랩 사운드로 여운을 남긴다.
[Korean Chef]에는 씬의 변방에서 고군분투하는 래퍼의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 그 감정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힙합에 매료되어 한국 힙합을 자양분 삼아 지금에 이른 한국 힙합 키즈를 만나게 된다. 이 앨범은 그래서 한국 힙합에 보내는 열렬한 연애편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작의 장소”로 짓는 마무리가 소박하면서도 극적이다.
[Korean Chef]는 한국 힙합 초창기의 정서를 좀 더 발전한 래핑과 프로덕션으로 담아낸 듯하다. 이보다 뛰어난 랩 스킬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한국 힙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향수를 지닌 앨범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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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5 | 비추 1
리뷰도 지루할 틈 없이 잘 읽었습니다! 선 리뷰 읽고 후 감상해봅니다.
추천 9 | 비추 1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