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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 황두하한국에서 래퍼의 이미지는 최근 몇 년간 크게 달라졌다. 어느샌가 미국처럼 화려한 스타일과 넘치는 부를 자랑하는 ‘랩스타’ 혹은 셀럽의 모습을 한 래퍼가 익숙해진 것이다. 일리어네어 레코즈(1llionaire Records) 이후 부와 명성의 과시는 한국에서도 평범한 소재가 되었고, [쇼미더머니]의 성공으로 많은 래퍼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쇼미’ 이후 래퍼를 꿈꾸는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성공의 언저리에서 지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듯 한국 힙합도 ‘빈부격차’가 심해진 셈이다.그리고 그 사이에 제이제이케이(JJK)가 있다. 그는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세 번째 [비공식적 기록]을 발표했다. 2013년에 발표했던 [비공식적 기록 II]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그동안 씬도, 제이제이케이 본인의 상황도 크게 달라졌다. 그는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이를 앨범에 기록해오고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약 15년 동안 이어진 그의 랩은 화려한 삶을 사는 랩스타보다는 가족을 지키고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보통 직장인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는 자신이 ‘유명한 래퍼’는 아니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데에는 문제없어진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양극화가 심해진 씬에서 ‘보통의 래퍼’라는 특별한 위치를 점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드머 (이하 ‘리’) : 앨범 발표와 ‘더 배틀 2022’ 참여, 그리고 곧 쇼케이스까지, (*주: 쇼케이스는 9월 17일에 진행됐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요제이제이케이 (이하 ‘제’) : 평소보다는 조금 일이 있는 편인데 그렇다고 막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이런 건 아닙니다. (웃음)
리 : ‘더 배틀 2022’는 SRS처럼 프리스타일 랩 배틀 대회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제 : 원래는 프리스타일 관련해서 제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프리스타일 씬이) 안 움직여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문화를 억지로 이식시키려고 하는 건가?’ 싶어서 한 번 냅둬보자고 생각한 거죠. 이게 정말 자생이 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문화라면 내가 없어도 다시 굴러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미세먼지가 불더니 다음에는 코로나가 오고… 더 이상 길에서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 뒤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코로나 상황이 조금 풀리면서 옛날에 SRS 같이 진행했던 루고(Lugoh)가 연락이 왔어요. 그 친구가 현재 바운드(Baund)라는 회사에 속해 있는데, 그쪽에서 랩 배틀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어요. SRS는 이름 자체에 ‘스트리트’가 있기 때문에 타이틀을 다르게 해야 했어요. 많은 분들이 SRS를 랩 배틀 대회의 성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길거리 블록 파티에 가까운 형태를 꿈꿨던 행사예요. 그래서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SRS라고 할 수 없죠. SRS에서 ‘배틀’의 성격만 가져와서서 진행을 해보자 해서 ‘더 배틀 2022’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리 : 꽤 오랜만에 정규 앨범 [비공식적 기록 III]를 발표했어요. 전작으로부터 약 2년만이고, 시리즈로서는 무려 9년만인데요. 앨범 소개를 간단히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제 : ‘비공식적 기록’ 시리즈는 인생에서 어떤 반환점이 있거나 한 챕터가 끝났다고 느꼈을 때 ‘초심을 다져야 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내는 앨범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제이제이케이의 힙합’, ‘힙합에 빠져들었을 때의 그 느낌’ 같은 것들을 되새기는 성격의 프로젝트죠. 데뷔 앨범이 첫 번째 시리즈고, 길거리 프리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함과 동시에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인생의 변화가 느껴져서 [비공식적 기록 II]를 냈었죠.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예요. 어느 날 뒤돌아 보니까 제 커리어가 딱 15년 째가 됐더라고요. 제가 한창 밀어붙였던 ADV 크루도 사실상 음악 활동을 접게 됐고, 프리스타일, 싸이퍼 같은 문화도 거의 사라지게 됐죠. 이런 상황에서 주변을 돌아 보니까 계속 랩을 하고 있는 건 나밖에 없더라고요.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난 기분인데, 마침 15주년이 된 거죠. 요새 마음가짐이 그래요. 지금 나이가 37살인데요. 만약 2006년으로 돌아간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선택은 하고, 했을 것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식으로 앞으로의 커리어를 가져가 보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약간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마치 모든 시기가 ‘비공식적 시리즈의 세 번째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앨범입니다.
리 : 한국에서는 시리즈로 앨범을 내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것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브랜드를 이어오는 경우는 더욱 드문데,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제 :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2를 낼 때까지만 해도 비공식적 기록이 이렇게 긴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예상 못 했죠. 어렴풋하게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한 번씩 초심을 다질 때 ‘본연의 힙합’, 그냥 별생각 없이 내가 좋아하는 랩만 하는 그런 음악을 ‘비공식 시리즈’로 내야겠다라고요. 그런데 세 번째까지 오니까 좀 무게가 남달라진 것 같아요.
리 : 이번 앨범에는 약간 무거운 주제들도 있죠
제 : 근데 제 입장에서는 이전 앨범들에서 다뤘던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이번에는 (비교적) 덜 무거웠던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힙합’적이고 직설적인 주제들이어서 고민이 많이 없었어요. 그냥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힙합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비공식 시리즈’ 작업할 때는 늘 그랬어요. 본연의 모습에 가깝게 행동해도 되는 프로젝트. 그렇다 보니까 랩도 훨씬 더 편하고 기술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더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었어요.
리 : 지난 [비공식적 기록 II]는 믹스테입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그런데 1과 3은 정규 앨범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 : [비공식적 기록]을 뒤돌아 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신인 래퍼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는 믹스테입 같은 형태였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시에는 플랫폼도 없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CD도 찍고 음원도 올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규 1집이 된 거죠. 작업의 스케일이나 정신 상태를 생각해 보면 약간 좀 날 것의 믹스테입에 가까운 형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마음 안에서 ‘비공식 시리즈’는 약간 편하게 랩을 보여주는 믹스테입이라고 개념이 잡혔어요. 그래서 2도 믹스테입이라고 올렸던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정규처럼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이게 정규든 믹스테입이든 무슨 상관이야’ 싶어졌어요. 사람들이 무겁게 받아들이면 무겁게 받아들이는 거고, 가볍게 받아들이면 가볍게 받아들이는 거니까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규 앨범이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작업할 때) 정신 상태는 비슷하게 접근했지만. 그냥 정규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리 : 말씀한 것처럼 첫 정규 앨범 [비공식적 기록] 이후로 벌써 16년이 지났어요. 감회가 어떤지 궁금해요. 당시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랩을 할 거로 상상했나요?제 : 아니요. 아예 생각 자체가 없었죠. 그때는 단순히 랩이 재밌어서 맨날 하던 애였으니까요. 감사한 일이죠. 제가 막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연예인 급의 ‘랩 스타’는 아니잖아요. 그냥 일상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이렇게 오랫동안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 연예인이 되거나 아무도 모르는 일반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위치가 좀 오묘하죠. 홍대 바닥으로 오면 알아봐주기는 하는데 [쇼미더머니]로 힙합을 접한 친구들은 잘 모르는… 딱히 큰 레이블이나 집단에 소속된 적도 없이 16년 차로 꾸준히 음악을 해왔다는 게 한 번 빵 터진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감사한 거죠. 모든 걸 다 지키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거니까.
리 :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알 살아남은 래퍼’로서의 자부심.
제 : 맞아요. 자부심도 있죠.
리 : 셀럽으로서의 래퍼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래퍼’를 추구하는 듯한 대목도 많이 보여요. “내 랩은”에서 ‘내 랩은 가족이 누울 침대와 이불’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제이제이케이가 생각하는 래퍼란 어떤 직업인가요?
제 : 좋은 랩을 하면 래퍼죠. 다만 그 좋은 랩이 생활을 유지시켜주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잖아요. 그게 한국에서는 되게 어려운 일이죠. 셀럽 급의 래퍼라면 너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에게는 굉장히 어렵죠. 나머지는 대부분 투잡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고 봐야 하는데, 투잡을 하면서도 씬 내에서 이름이 알려지는 건 또 별개의 이야기죠. 그래서 단순히 래퍼는 정말 랩을 잘하고, 음악으로 계속 커리어 유지가 되는 순간부터 직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적이 나오는 래퍼냐 아니냐로 나뉘는 것 같고요. 다만 “내 랩은”은 ‘직업으로서의 래퍼’보다는 랩이라는 수단이 저에게 가져다주는 생활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곡이에요. 랩과 힙합이 이렇게까지 내 생활을 받쳐주고 있구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인 거죠.
리 : ‘먹고 사는 문제’가 [고결한 충돌] 이후로 제이제이케이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 것 같아요.
제 : 당연히 그렇죠. 생계의 유지와 발전과 가족의 안녕과… 이런 것들이 저한테 1순위예요. 이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 인생의 모든 밸런스가 흔들리는 거니까요. 어떻게든 이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다행히도 제 랩이 밸런스를 잘 유지해주고 있어서 감사한 거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랩에 묻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래퍼들도 분명 부딪히면서 살고 있을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더라고요. 제가 되게 좋아했던 힙합의 모습 중 하나는 ‘생활 밀착형’이에요. 힘들면 힘들다, 잘 살면 잘 산다고 말하는 거죠. ‘후드’의 생활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걸 저는 조금 더 한국적인 감성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리 : 저도 음악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굉장히 공감해요.
제 : 그게 제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굉장히 일상적이고 일반적이지만, 직업적으로는 독특한 케이스고… 래퍼들의 커뮤니티에서 봤을 때도 광징히 형이긴 한데 레이블 사장님 같은 위치는 아니고, 막 부자 래퍼는 아닌데 먹고 사는 데에는 별 문제 없는… 그냥 정말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레벨에 있는데, 힙합 커뮤니티 내에서는 독특해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처럼 살 텐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와 같은 사람을 위한 랩은 없으니까요.
리: ‘비공식적 기록’ 시리즈는 제이제이케이 개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 힙합 씬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두 번째 시리즈 때도 그렇고, 현재의 씬을 진단하는 듯한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Free Lesson”에서 그런 내용이 많은데요. 현재의 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 제가 예전에는 매사에 비판적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흘러가든 간에 지켜보려는 편에 가까워졌죠. 문화는 사회의 지형에 따라서 같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것을 옳고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 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쇼미더머니]도 처음에는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비판할 자격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판을 멈췄죠. 마찬가지로 이전엔 힙합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봤던 많은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문화는 계속 퍼지는 거고, 기존에 있던 문화와 겹치지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도 하니까요. 모든 게 어떤 생태계에 의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가는 거라고 느껴요. 틱톡 같은 플랫폼이 생기면 거기에 따라서 문화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이렇게 끊임없이 흐르고 섞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래퍼들이나 한국 힙합에 대해서 재단하려고 하는 태도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냥 제 취향에 맞고 안 맞고 정도가 있는 거죠. 이제는 현재 흘러가는 방향을 보고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무엇은 지켜내야 하고 무엇은 변화해야 될까 식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Free Lesson”은 래퍼들한테 ‘언더그라운드에서 살아남는 법’ 같은 메뉴얼을 던져주고 싶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랩을 해온 저 같은 케이스가 많이 없으니까요. ‘롱런하려면 이런 것들은 생각해봐야 해’라고 말해주고 싶었죠.
리 : “Free Lesson”에서 ‘힙합은 언제나 옳지만은 않을 수도 있으니 앞뒤 잘 가려’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힙합 씬의 펜타닐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악재들이 겹쳐지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은연 중에 있는 힙합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제 : 타당한 욕을 먹고 있는 것 아닐까요? 나쁜 짓을 했으니까요. 이상한 짓을 하니까 이상한 취급을 당하죠. 뭐 어쩌겠어요. 그런 모습들이 안타깝죠. 그 구절은 비단 한국 힙합만 뜻하는 게 아니라 미국 힙합까지 다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제가 경험한 힙합이라는 것이 인간적으로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끌어다주는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이건 모든 문화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유교 문화도 좋은 면도 있지만, 발전을 가로막는 부분도 있는 것처럼요. 힙합의 문화적인 모습이 다분히 미국의 ‘후드’스러운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한국 사회에 무분별하게 이식되었을 때 이런 안 좋은 사건들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문화가 기존 우리의 삶에 알맞게끔 정착이 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저렇게 하니까 내 삶도 저래야 해’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때 생기는 부작용이랄까요. 저도 힙합 문화에서 우리가 받아들였을 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멋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든 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거죠. ‘힙합은 무조건 이래’ 하면서 맹신하는 순간 그건 종교죠.
리 : “Free Lesson”에서는 랩 레슨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어요. 랩 레슨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제 : 안 좋은 시선이 옛날보다는 아주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배워서라도 실력을 늘리고 싶으면 할 수도 있지’ 이런 시선이 조금 생겼죠.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더 싫어하는 거 같아요. 대중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플레이어들이 왜 싫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멋이 없다고 느끼나봐요.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죠. 어떠한 예술도 다 교육의 형태로 역사와 함께 해오지 않았나요? 재즈도 그랬고. ‘흑인 문화는 그러면 안돼’라고 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요. 랩이 교육의 형태가 되지 않을 이유를 못 느끼거든요. 특히 우리가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하는 순간부터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언어 구조가 다르잖아요. 모든 랩의 기술적 포인트를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구사해내고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랩을 가르칠 때 다룰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랩을 교육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랩이 기술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기술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행위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랩이 굉장히 복잡하고 기술적이고 창의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전문가로서의 영역이 존재하고, 모든 걸 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해설 못하는 사람과 해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저는 제가 하는 랩을 해설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랩을 교육하는 거죠. 굳이 왜 이걸 멋이 없다고 보는지 모르겠어요.
리 : 미국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의 예술로 보는 거죠.
제 : 정말요? 진짜 재밌겠네요. 최근에 MIT에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랩 전공 교수로 갔어요. 아주 최근 일이죠. 더 이상 랩 레슨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안 그러는데’라고 말할 수 없게 된 거죠.
리 : 제이제이케이의 레슨을 통해 배출된 신인들도 꽤 많아요. 던 말릭(Don Malik)부터 스월비(Swervy), 최근에는 콰이(KWAII) 같은 신인들도 있어요. 이렇게 실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해낸 비결(?)이 있을까요?제 : 이건 제가 좀 민망한 부분이 있어요. 미안한 부분도 있죠. 이 친구들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제 레슨이 꼬리처럼 달려있는 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 친구들이 레슨을 졸업한 지가 꽤 됐어요. 콰이도 몇 년 전에 졸업했거든요.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지금 그 친구들은 자기 능력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서 잘 된 거예요. 제 레슨은 모험을 떠나기 전에 배낭을 챙겨주는 정도죠. 그 친구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과 성향이 파악되면 그것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슬쩍 밀어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본인이 정말 열정이 있고 욕구가 있으면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물론 기본기적인 부분은 투철하게 가르치는 편이죠.
리 : 지금도 레슨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제 : 네. 오늘도 이따 하러 갑니다. (웃음)
리 : 레슨은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인가요?
제 : 저는 이게 저의 꿈이에요. 오히려 래퍼로서 원대한 꿈은 없어요. 더 대단한 래퍼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꿈이죠. 오히려 레슨은 비즈니스적으로 더 오피셜하고 더 큰 사이즈로 정착시키고 싶어요. 몇 가지 꿈이 있지만 그중에 아주 큰 축에 해당되는 것이라서 (레슨을) 관둘 것 같지가 않아요.
리 : 오히려 래퍼보다 더 오래할 수도 있겠네요?
제 : 랩이란 행위 자체는 10대 때부터 했지만, 공식적인 데뷔는 [비공식적 기록]을 낸 2006년부터 거든요. 그런데 레슨은 그것보다 전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공식적인 커리어로 보자면 레슨이 더 길죠. (웃음)
리 : 레슨생 외에 최근에 눈 여겨 보고 있는 신인들이 있을까요?
제 : 세인트 파블로(Saint Pablo)라는 친구 되게 좋아해요. 덥덥이(dubdubee)라는 친구도 재밌게 들었고요. 그리고 아주 어린데 프로듀싱하는 선 진(Sun Gin)이라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랑 같이 랩하는 권설이라는 친구도 있어요. 둘다 10대들인데 스무살 넘으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한 캐릭터들이에요.
리 : 선 진은 이번 앨범에도 참여했죠?
제 : 맞아요
리 : 꾸준히 신예 프로듀서들과 작업하는 것 같아요. [고결한 충돌] 때는 코드 쿤스트(Code Kunst),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때는 돈 사인(Don Sign.) 등, 당시에 막 떠오르던 신인들과 작업했죠. 이번에도 선 진을 비롯한 신인 프로듀서가 대거 참여했어요.
제 : 그러게요. 지금의 코드 쿤스트가 그 코드 쿤스트였다는 게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오래 활동하다 보면 이렇게 신기한 광경을 많이 보게 되네요. 제가 처음에 앨범 작업 시작할 때 한국에서 ‘네오 붐뱁(Neo Boom Bap)’으로 많이 알려진 드럼이 거세된 샘플링 사운드에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구현할 수 있는 프로듀서들을 많이 디깅했죠. 당시만 해도 그런 스타일을 시도하는 프로듀서가 많이 없어서 좀 찾기가 어려웠어요. 기존 프로듀서들한테 설명해도 기존의 붐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구현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가 있거나 구현이 가능한 프로듀서들로 좁혀지게 됐죠. 스콸로웨이브(Squalowave)는 평소에 눈 여겨 보고 있던 프로듀서여서 의뢰를 맡기게 됐어요. 선 진도 ‘네오 붐뱁’스러운 사운드를 표방하는 프로듀서여서 작업을 하게 됐죠. 스위치윗아웃버튼(Switchwithoutbutton)은 디젤(dsel)과 딥플로우(Deepflow)가 바다 빙(Bada Bing!)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몇 곡을 공개했는데 그중에 곡이 하나 있어서 연락을 하게 됐고요. 하이포템프(Hypotemp)는 예전에 던 말릭이랑 같이 작업해서 알게 됐어요. 알고 보니까 키스 에이프(Keith Ape)와 주로 작업을 많이 했더라고요. 원래 그쪽(?) 사운드가 주인데, ‘네오 붐뱁’ 사운드도 구현이 가능하고, 집도 가까워서 의뢰하게 됐죠. 류배(Ryubae)는 딥플로우에게 소개받았어요.
리 : 비슷한 맥락으로 피처링 게스트도 비교적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래퍼들이 많아요.
제 : 우선 서리(30) 친구들은 맨날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이 있어요. 손 심바(Son Simba)는 커리어 첫 시작 때 제가 샤라웃 치면서 알게 된 케이스예요. 굉장히 장시간 알고 지냈으니까 편안한 사이죠. 그래서 쿤디 판다(Khundi Panda)도 자연스레 알게 됐죠. 쿤디는 제가 예전에 진행했던 어티비(UH!TV)에서도 소개한 적 있고요. 디젤은 잘 모르던 사이였지만, 심바랑 쿤디를 아니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어요. 에이체스(A-Chess)는 저랑 큰 연은 없지만, 제가 에이체스의 랩을 예전부터 되게 좋아했었어요. [쇼미더머니]에서 유명해지기 전에 스내키 챈(Snacky Chan) 형과 에이체스가 같이 한 곡이 있는데, 그걸 듣고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기억해뒀다가 이번에 컨택했는데 쿨하게 응해줬죠. 오이글리(oygli)는 여러 의미에서 저와 가장 거리가 멀죠. 평소에 연이 아예 없어요. 지금까지도 실물로 만나서 인사를 못 나눴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냥 멋있다고 생각하는 래퍼여서 섭외했어요. 저한테 없는 간지거든요.
리 : 랩 스타일이 완전 다른…
제 : 맞아요. 완전 느긋하고 쿨하고. 쫀득쫀득하면서도 여유 있게 뱉잖아요. 그 쿨함이 제가 참 오랫동안 갖고 싶었지만 구현하지 못한 그런 간지예요. 저랑 완전 반대이지만, 태도적으로는 이해가 되서 늘 멋있다고 생각하는 래퍼였어요. “시쳇말”이라는 곡은 제가 일부러 텐션이 높은 순부터 느긋해지는 순으로 (래퍼들을) 배치했어요. 맨 마지막에 오이글리가 끝내면 제일 멋있겠다 싶었죠.
리 : “시쳇말”은 최근에는 잘 나오지 않는 스타일의 단체곡이에요. 어떻게 기획한 거예요?
제 :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그런 단체곡이 잘 없었는데, 요새는 또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허클베리 피 (Huckleberry P) 형의 “Wolves”도 그렇고. 그래서 좀 빨리 꺼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이런 힙합 앨범에 단체곡 하나 정도 있어야 멋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비트를 듣고 벌스를 딱 썼는데 이건 나 혼자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리 : 아까 이야기한 ‘힙합’스러운 앨범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제 : 맞아요. 제가 좋아했던 힙합의 모습을 조금 더 충실히 구현한 거죠. 저는 앨범을 만들 때 늘 도전하는 편이었거든요. 새로운 주제나 해보지 않은 스타일의 음악을 실험적으로 도전하는 맛에 앨범을 만들어왔죠. 그래서 [비공식적 기록]을 만들 때만큼은 그냥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충실한 편이에요. 이런 단체곡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힙합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리 : 인디펜던트 래퍼로서의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이전엔 회사에 소속된 적도 있잖아요. 현재는 아예 인디펜던트로 노선을 정한 건가요?제 : 노선을 정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작업하는 중간에 디제이 켄드릭스(DJ Kendrickx)가 여러 작업을 도와줬어요.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인디펜던트지만 중간 쯤부터는 완전한 인디펜던트가 아니게 된 케이스죠. 서류상으로는 인디펜던트예요.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긴 한데 약간 팀처럼 켄드릭스가 같이 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적절한 인디펜던트’라고 할까요? (웃음)
리 : 그럼 회사와의 계약에도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인건가요?
제 : 열려 있긴 한데 예전보다는 니즈가 많이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소속할 수 있으면 좋지’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웬만해서는 인디펜던트가 편하지’라는 마음이에요.
리 : 인디펜던트로 활동할 때의 장단점이 있을까요?
제 : 장점이라고 하면 자유죠. 사실 금전적인 이유 외에는 굳이 회사를 해야 되나 싶긴 해요. ‘인디펜던트가 편하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죠. 음악에 투자 비용을 쓸 만큼 쓰고 리스크도 스스로 감당할 마음이면 굳이 회사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시장이 작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이 커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홍보처도 많다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그렇지만 한국 언더그라운드 시장 규모가 한 명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거든요. 특히 힙합이라는 장르는 마니악한 편이어서 홍보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기껏해야 웹진에 기사를 올리거나, 돈을 조금 투자한다 치면 SNS에 올리는 거죠. 창의적으로 (마케팅) 접근을 해서 다른 루트를 계속 뚫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제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회사에서) 굉장히 창의적으로 홍보를 해준 것도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도 앨범 내면 해야 할 것들을 의례적으로 했을 뿐이죠. 회사 이름에 따라서 (음원 사이트) 메인에 잘 띄워주느냐 아니냐 정도예요. 회의를 통해서 참신한 홍보 방식을 제안했던 회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만나봤어요. 저는 돈을 떠나서 재밌는 일이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돈 문제는 회사가 걱정할 일이지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재밌는 일을 함께한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돈만 된다면 나 혼자 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거죠. 제가 [비공식적 기록 II] 때 “360도” 뮤직비디오를 처음 찍었어요. 그 이후로는 뮤직비디오가 단 한 편도 안 나왔어요. [고결한 충돌]이나 [지아천깨] 둘 다 반응이 좋았던 앨범인데 뮤직비디오를 못 찍었죠. ‘아끼자’라는 태도여서 제 욕심이랑 상관없이 벌어질 수가 없는 일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엔 켄드릭스가 저랑 마음도 잘 통하고 ‘재밌는 일 많이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이어서 “내 랩은” 뮤직비디오를 찍게 됐죠. 그래서 이런 분위기라면 굳이 회사와 계약해야 되나 싶은 거예요.
리 : 오래한 만큼 비즈니스적으로 아니까 인디펜던트로 일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제 : 그럴 수도 있겠죠.
리 : “Free Lesson”에도 계약에 관한 가사가 있잖아요.
제 : 맞아요. 스스로 잘 해나가야 계약을 하든 말든 유효한 움직임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신인들이 계약할 때 ‘회사에서 뭘 해주지 않을까’라는 걸 제일 많이 생각하거든요. 거기에서 많은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아니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줘’ 이런 마음 있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그 마인드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막 하려고 하는데 회사가 뒤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차라리 나아요. 그냥 입 벌리고 가만히 있는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요.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죠.
리 : [비공식적 기록] 시리즈가 나온 것이 9년 만이에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JJK 개인과 씬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데, 지금의 모습을 예상했나요? 당시에는 씬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었어요?
제 : 그땐 언더그라운드가 많이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다른 부분은 점칠 깜냥이 안 됐죠. 그때는 많이 있었던 홍대 앞의 소규모 공연들이 사라지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랬고요. 지난 수 년 간 거의 없어졌죠.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대신 또 다른 일들이 많이 벌어졌던 거죠. 다만 제가 좋아했던 문화니까 사라지는 모습이 아쉬웠던 거고.
리 :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 [쇼미더머니]가 (그런 변화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쇼미가 나빠’가 아니라 그냥 그런 흐름이었던 거죠. 실제로 쇼미가 성행한 뒤로는 길거리 사이퍼의 규모가 엄청 줄었었어요. 미세먼지가 있기 전에도요. 왜냐하면 새로 유입되는 래퍼들이 굳이 랩을 즐길 이유가 없어진 거예요. 방송에 나와서 잘 돼야 하는 게임이지 즐기는 게임이 아니게 됐거든요. 랩을 하는 것 자체가 재밌고 멋있는 게 아니라 잘 되는 게 멋있는 거다라는 개념으로 바뀌었어요.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하루 공연하는 모습은 어린 래퍼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게 된 거죠. 실력 키우고 준비해서 쇼미 나가서 잘 되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걸 안 좋게 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냥 하나의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미래를 점치지 않으려고 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지금 있는 현상으로부터 내가 뭘 배울 수 있을까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는 편이에요. 재밌는 게 최근에는 다시 홍대 씬이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예요. 이전에는 니즈가 없어서 사라졌는데, 코로나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다시 공연을 찾기 시작한 거죠. 너무 대중적인 코드의 음악에 피로를 느낀 분들이 다시 날 것의 거친 랩을 반가워하는 분위기도 느껴져요. 화려하고 대중적인 힙합과 제가 좋아하는 (날 것의) 힙합이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춰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굳이 나쁘게 보지 않으려고 해요. 조금 더 밸런스가 맞춰지면 좋겠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을 생각해보면 현 상황이 굉장히 이상적이지 않냐고 생각하는 거죠.
리 : 그렇다면 씬의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 10년 후 JJK 개인의 모습은 어떨 것이라고 예상해요?
제 : 10년 뒤요? 제가 감히… (웃음) 10년은 제 그릇을 넘어서는 기간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저는 10년 전의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질문했으니) 생각해볼게요. (웃음) 저는 문화의 형태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사회와 경제의 흐름에 굉장히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생각해요. 요새 세계 경제가 너무 안 좋잖아요. 사회 분위기도 안 좋죠. 지구 자체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10년 후까지는 아니지만 몇 년 후에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좀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2010년 초반 홍대 앞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요? 그때 낭만도 있었지만, 사실 모두가 가난했었거든요.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메인스트림의 돈이 흘러들어오지도 않았고. 쇼미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메인스트림의 돈이 흘러들어와서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친구들도 알게 모르게 경제적 이득을 봤다고 생각해요. (리 : 낙수 효과처럼…?) 맞아요. 그렇지만 기업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힙합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투자도 거두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2010년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전망이에요. 지금 음악을 시작하려고 하는 친구들은 전략을 잘 짜야 되겠다 싶어요. 섣불리 계약하면 피 보기 딱 좋은 시즌이거든요. 쇼미 덕분에 한순간에 랩스타가 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봐야할 시점이에요.
리 : 굉장히 현실적인 진단이네요.
제 : 물론 이건 저의 망상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꼭 강조해주세요. (웃음) 그리고 10년 뒤를 생각하면 인구 자체가 줄 테니까 힙합으로 유입되는 수도 줄지 않을까요? 힙합이 그때도 매력적인 문화로 남아있다는 전제 하에요. 인구 수가 줄면 아이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부모와 그렇지 못하는 부모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진짜 부자이거나 진짜 가난한 신인이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혼혈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혼혈 래퍼가 많아지면 엄청 색다른 주제가 나올 수도 있겠죠.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을 담은 랩이 나온다면 진짜 매력적이겠죠. 또 기후 변화 때문에 삶의 양상이 굉장히 달라져서 식량 문제가 피부에 와닿는 수준이 된다면 굉장히 컨셔스한 주제의 랩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런 망상들을 평소에 자주 해요. 현실을 기반으로 한 망상이니까 그중에 하나 쯤은 현실로 일어나더라고요. 10년 뒤면 진짜 상상을 못하겠네요. 이전엔 코로나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아무도 상상 못 했잖아요.
리 : 굉장히 재미있는 망상이었습니다. (웃음) 그럼 다음 ‘비공식적 기록’ 시리즈는 언제가 될까요?
제 : 계획은 당분간 없어요. 인생이 흘러가는 순간마다 하는 프로젝트여서 ‘언제 해야겠다’라고 미리 정해두진 않아요. 한동안 ‘비공식적 기록’ 시리즈처럼 편하게 뱉는 랩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리 : 그럼 계획 중인 다음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제 : 앨범 단위는 아니고요. 싱글 단위로 몇 가지 계획 중입니다. 아직 프로듀서들과 컨택하는 단계예요. 현재는 쇼케이스 준비 등 [비공식적 기록 III]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도 하나 더 나올 계획이고요. 이전에 하던 ‘어티비’ 콘텐츠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제 : [비공식적 기록 III]가 나왔습니다. 많이 소비해주시고, 마음에 든다면 제 소식 많이 따라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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