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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 Lowlife Princess: Noir
김효진 작성 | 2022-12-20 00:1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59 | 스크랩스크랩 | 45,915 View

Artist: 비비(BIBI)
Album: Lowlife Princess: Noir
Released: 2022-11-18
Rating:
Reviewer: 김효진









세상은 불공평하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한다. 어떤 연인 관계는 꼭 사랑이 빌미가 된 갑을 관계 같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해도 누군가는 직업으로 멸시받는다.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불평등마저 존재한다.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는 공익 메시지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누군가의 죽음은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불평등과 불공평이 자리하는 곳.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인생이며 삶이다.

 

만약 이 지독한 불합리 속에서 미천한 계급으로 태어난다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까. 비비(BIBI) [Lowlife Princess: Noir]에서 낮은 곳을 대변하는 듯한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향해 정치적이거나 공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다. 불공평한 세상을 향한 혐오와 복수심으로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고 가시로 온몸을 치렁치렁 휘감은 채 자신을 쉽게 보는 자들에게 똑똑히 경고한다. “나쁜X”을 보게 될 거라고.

 

비비가 음악에 배치한 속어는 비비의 입에서 내뱉어졌기에 더 뚜렷하게 존재감이 드러난다. ‘나쁜 년’(“나쁜X”)이 그렇다. 음악에서 ‘bitch(나쁜 년)’는 주로 타자를 향한 말이다. ‘이라는 표현은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남성과 남성 사이에서도보다 더 격이 낮은 표현으로 쓰인다.따라서 누군가를 강하게 깔보고 싶을 때 통용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비의나쁜 년은 스스로를 가리킨다. 누군가를 멸시할 때 쓰이는 단어(나쁜 년, 미친 년)로 본인을 칭하면서 더 큰 임팩트를 주고, 그가 쌓은 이야기와 해당 단어가 맞물리면서 비비라는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더욱 확장된다.

 

‘나쁜 년이 안기는 충격효과는 앨범 속 이야기에 더 깊이 몰입하게 한다. 화자는 결핍 덩어리다. “가면 무도회에 낄 수 없는 계급으로 태어났을 것이고 그로 인해 치졸함이나 열등감과 친근했을 것이다. ‘쳐 담아도해소되지 않는 외로움(“Lowlife Princess”)을 끌어안고 살아가며 채워지지 않는 애정을불륜으로라도 채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는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그걸 안다. 자신을나쁜 년이라고 칭하면서 술과 친구가 되고사랑을 무맛이라 노래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Loveholic’s hangover”). 그래서조또라는 속어가 노랫말로 쓰여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나잇을 즐기는 사람이자 걸레짝이 된 누군가의 마지막 종착지인 사람, 그러한 캐릭터의 화자라면 응당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남성의 성기는 자신의 즐거움을 채워주는 작은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 말이다. 오히려 강한 한국어 표현을 피하고자 영어로 욕설을 하거나 다른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면 어색했을 것이다. 이처럼 비비는 한국어 속어를 활용하여 이야기의 맥락을 탄탄하게 세우고 이해도를 높인다.

 

촘촘하게 짜인 서사뿐만 아니라 프로덕션 또한 훌륭하다. 전작 [인생은 나쁜X]의 아쉬움을 단번에 날린다. 라틴 리듬에 타격감 있는 베이스가 인상적으로 배치된나쁜X”, 최후의 왈츠를 묘사한 듯한가면무도회”, 얇은 하이햇 사운드와 처절한 보컬 퍼포먼스가 섞여 섬뜩함이 깃든 “Lowlife Princess”, 신나게 마구 달리는 록 스타일의 “City Love”까지 비비의 한껏 펼쳐진 음악적 역량이 돋보인다.

 

특히불륜조또에서는 프로덕션과 보컬 퍼포먼스, 서사의 맥락 모두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먼저, “불륜에서는 스타카토로 끊어 연주되는 피아노 사운드 위에 비비가 노랫말을 한숨에 내뱉는다. 두 요소가 한 데 섞여 미묘함을 자아낸다. ‘불륜이라는 비도덕적 행동을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로 포장하는 아이러니를 음악으로 가시화한다.

 

또한, “조또는 앞서 언급했듯이 원나잇을 즐기는 화자가 쓸 법한 단어로 무심하고 냉담한 구석이 있는 표현이다. 곡의 진행도 그와 닮았다. 인트로부터 점층적으로 진행되다 터질 것처럼 고조되더니 후렴구에 와서 둔중한 베이스 라인만 남는 식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곡은 태연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 터뜨리는 듯 후반부에 등장하는 브라스와 힘껏 내달리는 피아노 사운드가 쾌감을 선사한다.

 

비비는 확실히 탄탄한 스토리텔러다. 음악으로 이야기를 쌓는다. 구체적인 설정과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캐릭터를 눈앞에 당도하게 하고 리스너를 단숨에 매혹한다. 그래서 자꾸만 그 여인을 바라보게 만든다. 축축하고 눅눅한 곳에서 결핍을 품은 채 홀로 위태로운 춤을 추는 그 여인을, 마스카라가 번진 눈으로 거울을 보며 혼자 웃다 울다 모든 걸 토해내듯 소리 치는 그 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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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등록
  • 김지성
    1. 김지성 (2023-01-01 10:56:20 / 175.223.15.***)

      추천 5 | 비추 1

    2. 언제나 솔직한 리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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