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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Sings Woman'은 리드머의 김효진 필자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여성 알앤비 아티스트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삶과 내면세계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형형색색의 카드가 섞이고 섞이다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은 경건한 마음으로 몇 장의 카드를 고른다. 낯선 얼굴을 한 사람이 내 과거에 대해 읊는다.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 어떤 상태구나, 하면서. 또다시 카드를 뽑는다. 그 사람은 다시 이야기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고.
점괘는 늘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삶이란 하나의 선과 같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걸어갈 길에 대한 힌트가 보인다. 하지만 점을 보는 것은 꽤 수동적인 행위다. 누군가 내 미래에 대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야 한다. 단순히 생년월일 같은 간단한 정보로 나의 모든 걸 알 수 없고, 신기 같은 건 정녕 존재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데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타로로 미래를 엿보는 건 비교적 주체적이다. 타로 마스터는 카드를 섞어 펼칠 뿐 미래가 담긴 카드를 뽑아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다.
지셀과 대화를 나누던 초반엔 타로 마스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78장의 카드를 섞다 펼쳐 몇 장의 카드를 신중히 고르는 사람.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고 나아갈 길을 짚어내는 사람 같다고. 그저 주어진 것에 성실히 매진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주체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모습이 꼭 그래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처음의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지셀은 타로가 보여주는 미래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의 모습에 대한 확신으로 카드 속 그림을 직접 그릴 줄 아는 사람, 미래를 주체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이다.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감은 모두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온다. 어제와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새로운 내일을 만드는 주체는 지긋지긋한 지금의 ‘나’다. 지셀은 그걸 깨달은 듯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성 그리고 음악의 색깔 이런 것에 대한 해답이 다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꽤 됐거든요. 그걸 믿고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셀은 현재를 발판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I. THE WORLD (세계)
: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희미한 빛 하나를 따라가는 일
“과거를 돌아보면, 저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사람 같아요.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절 말리셨어요. 성인이 되어 일을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투자해 줄 수 있을 때 너는 거기에 올인을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인 거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해서 얼마나 번다고 하시면서요. 나름대로 버팀목이 돼 주신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친구들이랑 비교해 보니 제가 주어진 길만 걸은 사람 같은 거예요.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고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각성하게 된 거네요.
대학교에 가고 나서도 제 모습이 똑같더라고요. 그러다 성인이 된 지 좀 지나고 나서 얼핏 느낀 게 어떤 위기가 닥치거나 제 삶에 무슨 사건이 벌어졌을 때 크게 패닉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때마다 바로 해결책을 못 세우고 ‘어떡하지? 큰일 났다’ 전전긍긍하면서 패닉에 빠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더라고요. 그걸 한 번 인지하고 나니까 그 태도를 바꾸고 싶어졌어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는데 아직 완벽히 바뀌지는 않았어요. (웃음) 그래서 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계획이 있으면 그래도 덜 불안하니까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요? 음악 활동에서든 삶에 있어서든지요.
1인 레이블 설립을 준비 중이에요. 제가 사실 지금까지 많은 레이블에 소속됐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소속 아티스트로서 있게 되니,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소속 아티스트는 많은데 레이블의 인력은 한정적이잖아요. 아무리 제가 허슬을 하려고 마음먹고 계획을 세워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렇죠. 아무래도 다른 아티스트와 활동 시기가 겹치면 인력 운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맞아요. 저도 활동이 딜레이됐던 경험이 꽤 있어요. 다른 소속사를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다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가능만 하다면 나 혼자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1인 레이블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된 상황이에요?
아직 제대로 법인이 세워진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팀을 꾸렸고, 함께 일은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제 매니지먼트는 EMA에서 맡고 있는데, 마케팅이나 음악 프로덕션 같은 매니지먼트 외 나머지 부분들은 잘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각각 맡아서 해보려고요. 한 번 실험해 보고 싶기도 해요. 이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갈지 궁금하거든요. 저도 처음 하는 거다 보니 서툰 면도 있고 잘 모르는 부분도 있겠죠. 그래도 계속해 보고 싶어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소속사 개념이 불분명한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굴러가죠. 약간 벗어난 이야기지만 해외 진출 욕심도 있나요?
네. 해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고민도 많이 하고 있고요. 음악을 많이 발매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더 허슬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제 리스너들 중 대다수가 해외 팬들이라서요. 해외에서 여러 활동을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해외 진출이란 말이 옛날에야 거창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너무 당연시되어 있고 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 활동도 좋지만 제가 음악을 정말 많이 듣고 좋아했던 곳이자 제가 어릴 적 자랐던 미국에서도 활동하고 싶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도 해보고 싶고요.
음악 활동을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잖아요. 회사에 다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제가 공부를 오래 했었거든요.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나니 박사 과정을 밟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친오빠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당시 저희 친오빠가 소속돼 있던 회사에 공연 기획 부서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그쪽으로 관심이 생겨서 공부보다는 업무 경험을 좀 쌓아보자 싶어 그곳에 입사하게 됐어요.
음악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겠네요.
어느 날 사무실에서 멜로디 없는 트랙을 들은 적 있어요. 혼자서 이런 식으로 멜로디 나오면 멋있겠다고 생각하고 그다음 날 멜로디가 입혀진 트랙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어제 느꼈던 바이브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싶은 거예요. (웃음)
그 길로 바로 음악을 시작했나요? (웃음)
그렇게 장비를 사기 시작했죠. (웃음) 처음엔 일과 병행하면서 취미로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저렴한 장비들만 구매했었어요. 비싸지 않은 마이크랑 저렴한 스피커, 맥북이랑…. 집에서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시작하게 된 거죠. 정말 취미로 해야지 싶었는데, 완벽한 취미라는 게 애매하긴 하더라고요 제가 노래를 완성하고 나니까 발매하고 싶은 단계까지 가더라고요. 그래서 소속된 회사가 없을 때 제네시스(Jenesis)라는 이름으로 발매도 했었어요. 지금은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힘들지만… (웃음) 그래도 특별한 도움 없이 해낸 거라 뿌듯했죠. 그 덕분에 밀리언마켓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고요.
취미로 시작해서 직업을 갖게 된 것 자체가 본인의 음악적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단 느낌이 드는데요.
사실 작곡은 그때 처음 해본 거긴 한데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거기서 플루트를 배웠어요. 그러다 학교 밴드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봤는데, 제일 잘하는 사람을 앉히는 1번 자리에 앉게 된 거예요. (웃음) 학교 행사에서 솔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그랬었죠.
플루트는 왜 그만둔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 분위기가 아예 다르더라고요. 학생은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 같아요. 한국 학교로 오면서 지금은 클래식 악기에 관심을 둘 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됐죠.
한국식 교육의 폐해네요.
맞아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공부 외에도 운동이나 음악에 할애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II. THE LOVERS (연인들)
: 이토록 평범한 사랑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곡들을 들어보면 지금과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고집이 진짜 셌던 거 같아요. 음악적 고집은 지금도 분명히 있지만, 피드백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큰 차이인 거 같네요. 그땐 어두운 음악에 빠져 있었거든요. 즈네 아이코(Jhené Aiko)의 [Sail Out]라는 앨범을 자주 들었어요. 그 EP가 굉장히 어둡거든요. 사랑에 대해서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트라우마나 비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고요. 그 당시에 같이 자주 듣던 위켄드(The Weeknd) 앨범도 다크한 앨범이었어요. 마치 ‘내 심장의 색깔이 블랙’이었던 것처럼 행동할 때였어요. (웃음) 밝은 음악도 기피하려고 하고요.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내 안에 있는 가장 어두운 것만 말하려고 했어요.
당시 주변 사람들은 어떤 피드백을 줬나요?
“네 목소리에 청량한 부분이 있으니 그걸 활용해 보는 건 어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 있어요. 그럼 그걸 한 번 시도해 보기도 해야 하잖아요. 전혀 듣지 않았었죠. (웃음) 그땐 굉장히 폐쇄적이었던 거 같아요.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모든 피드백을 다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교적 열려 있는 마음이에요. 저도 다양한 걸 시도해 보고 싶고요.
저는 ‘지셀’이라고 하면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전에 ‘개인적인 고민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려고 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읽었어요. 그 결과물이 “Way U Are”더라고요. 개인적인 고민을 사랑으로 풀어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참… (웃음) 빅 나티(Big Naughty)가 쓴 가사를 제외하고 제 가사만 봤을 때는 사랑에 대한 말들은 없어요. “Way U Are”는 정말 저를 위해 쓴 곡이거든요. 코로나가 한창 심각하던 2020년에 그 가사를 썼어요. 모두가 다 우울해하는 시기였잖아요. SNS만 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까 자꾸만 타인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거예요. 주변에서 주는 피드백도 건강하게 해석하지 못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고요. 그때 명상도 해보고 일기도 써보고 책도 읽어보고 여러 가지를 하다가 “Way U Are” 트랙에 가사를 한 번 붙여봤어요. 제가 저 자신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그런 내용으로요. 사람들은 단순히 예쁜 가사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눈물 찔끔 나오는 그런 노래예요. (웃음) 빅 나티는 이 곡을 받고 사랑을 떠올릴 영감을 받았나 봐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게 저는 또 새로워서 두 가사를 같이 담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Way U Are” 외에도 연인 관계를 그리는 가사가 많은 편이에요. 음악을 듣다 보면 연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라는 사람의 성향이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저 자신이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로맨티스트’라는 말을 들으면 자상하고 뭔가 더 챙겨주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런 모습의 로맨티스트를 말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저는 연인끼리 주고받는 사랑이 단순히 친구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감정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관계에서 강한 동기 부여를 받기도 하고 색다른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다른 시각을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설명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이별을 겪었을 때도 힘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 항상 사랑과 고통이 붙어있는 필연적인 관계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요. ‘연인 관계는 왜 이렇게 아이러니할까?’ 하며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가사들이 많이 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만큼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스타일 같았어요. 가사를 읽어보면요.
그랬던 적도 있는 거 같아요. 데뷔곡인 “받지마”부터 “Language”까지는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썼거든요. 제가 그 사람한테 미련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제가 겪었던 가장 어려웠던 만남이었어요. 주제를 찾을 때 그때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 어려웠어요?
한 3년 정도 만난 친구였는데, 저를 생각해 주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모두 “이 관계는 너한테 건강한 만남이 아닌 거 같아” 하면서 헤어지길 바랐어요. 저 자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3년이나 그 관계를 놓지 못했거든요. 사실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까지 들으면 그 사이에서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기억들이 많았던 연애였어요.
이번에 발표하는 싱글 곡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오나요?
연인 관계를 비유하긴 했는데 그 사람 이야기는 아니에요. (웃음)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을 조금 섞어 가사를 썼어요. 어느 파티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전 연인을 마주친 거예요. 처음엔 저를 못 본 척하더라고요.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니 가까이서 아무렇지 않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 친구가 엄청나게 당황하더라고요. 못 볼 사람 본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웃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상황이 정말 아이러니하더라고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는데 헤어지고 나니 만나면 안 될 사람처럼 된 거잖아요. 마치 적처럼요. 그래서 곧장 가사를 썼죠. 사실 이 곡 가사가 진짜 안 풀리던 시기였는데 그 일을 겪고 술술 써졌어요. 가사 잘 쓰려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말았죠. (웃음) 그래서 곡 제목도 “Enemy”예요. 고맙게도 제미나이(Gemini)가 피쳐링해 주었고요.
“Enemy”처럼 연인 관계를 그리는 곡 내용 때문인지 남자 아티스트와 협업이 많아요. 피처링 아티스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무조건 무드예요. 그런 느낌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처음 드는 느낌. “Language”의 경우, 제가 트랙을 듣고 창모 같은 굵은 베이스 톤을 가장 먼저 떠올렸어요. 멜로디를 만들고 난 뒤에 다시 확신했죠. 이 곡은 창모한테 들려줘야만 한다고요. 그래서 저랑 친하게 지내는 아티스트 중에 창모와 친한 아티스트가 있어요. 그 분한테 부탁했어요. 한 번만 들려주면 안 되겠냐고. 제가 원래 이런 부탁을 잘 안 하려고 하거든요. 부탁을 들어 주는 사람도 사실 불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냥 무작정 그 아티스트한테 “이 노래 틀고 창모 님 귀에다 이어폰 한 번만 꽂아주라. 진짜 한 번만 부탁할게. 싫다고 하면 서운함 없이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물러날게” 했거든요. 그땐 확신 같은 게 있었어요. 창모도 이 노래를 좋아할 거라는 확신. 다행히 좋아해 줘서 같이 작업할 수 있었어요.
WHEEL OF FORTUNE (운명의 수레바퀴)
: 미래의 ‘나’는 결국 지금의 ‘나’이기에
대화하면 할수록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그런데 제가 저라는 사람을 돌아봤을 때 엄청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제 MBTI가 ENFJ인데 그 중 F(감정형)가 90% 이상 나와요. (웃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F 대화 특징 있죠.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감정적인 공감을 우선시하는 대화 양상이요? 고민이나 걱정 같은 걸 말하면 “너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고 먼저 말해주는.
맞아요. “네가 잘못했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같은 반응도 중요하긴 한데 일단 일차적인 공감이 우선시되어야 해요. (웃음) 그러다 보니까 대화하면서 찾는 게 공감대였던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런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고요. 저도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할 때 최대한의 공감을 먼저 건넨 뒤 제가 해줄 수 있는 위로를 건네려는 사람이에요. 노래를 만들 때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제 성격의 연장선이고 확장된 영역인 거겠죠. 저는 모든 사람이 우울로 가라앉을 때 공감대 하나만으로 얻는 힘이 되게 크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본인도 음악으로 그런 힘을 받은 경험이 많아서일까요? 그런 공감대를 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제가 어릴 때 즈네 아이코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요즘 쓰는 가사는 셀프 힐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제가 한창 들을 때에만 해도 사랑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트라우마에 대해 주로 썼거든요. 사랑 얘기만 하는 게 음악은 아니지만 가장 공감대를 많이 형성할 수 있는 게 사랑 후에 남은 상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듣고 많이 공감했었죠.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즈네 아이코 같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어요. 음악적인 색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감사한 이야기죠. 어쩔 수 없이 즈네 아이코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가장 오랫동안 빠져서 들었던 아티스트니까요.
‘사랑’보다는 ‘공감’이 지셀의 음악 세계의 중추가 되는 것 같네요. 사랑이 결국 공감을 위한 키워드니까요.
조금 세부적으로 생각해 보면 사랑의 비관적인 면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랑의 달콤한 모습을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쓸 때보다는 어두운 면을 이야기할 때 훨씬 더 연결됨을 느끼거든요. 제가 음악을 시작했던 첫 순간을 떠올려 보면, 음악이 저의 심리적인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기 전인 더 어렸을 때를 돌아봐도 그래요.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 내용이나 그 곡에서 전달되는 무드를 통해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를 많이 받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음악이라는 게 저에게는 치유랑 공감, 위로의 개념으로 인지돼요. 음악엔 그럴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집으로 돌아갈 때 앞에서 언급했던 “Way U Are”를 다시 들어야겠어요. 치유에 집중해서요.
그 노래에서 ‘시간이 널 빼놓고 빠르게 흘러가더라도 오늘의 너의 모습은 어제와 다르지 않길’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사예요. 사실 시간이 나를 빼놓고 흘러갈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이건 제 성격인 것 같은데요. 항상 다급하고 가끔 뒤처져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저 자신한테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아요. ‘너’라고 말하지만, 그 문장의 청자는 결국 ‘나’예요.
달라지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어요?
저는, 뭐랄까, 철이 들고 싶지도 않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누군가는 “쟤는 나이 들어서도 아직도 저러고 살아?” 이런 말을 할지언정 제가 행복하다면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순수함을 최대한 잃지 않고 싶은 게 저의 욕심이라면 욕심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마냥 순수할 수는 없기는 하죠. (웃음) 그래도 순수한 생각이나 마음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 순수한 꿈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넷플릭스에 취직해서 조연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주연은 톱 배우가 하니까 힘들 테고 조연으로… (웃음) 어느 정도 음악 활동을 하다가 노후를 보낼 때는 넷플릭스 조연 배우로 살아 보는 거죠. 그렇게 살면 노후를 재밌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혹시 연기 경험이 있어요?
이번에 ”Enemy” 뮤직비디오 촬영하면서 해봤어요. 대사도 없었고 그렇게 어려운 연기도 아니었지만요.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연기 너무 어렵다. 근데 너무 재밌다!’ 였어요. 정말 나중에! 언젠가 넷플릭스에 오디션을 보러 가지 않을까요? (웃음) 정말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귀여운 꿈 같은데요. (웃음) 그럼 음악적으로는 어떤 목표나 꿈이 있나요?
이게 정말 식상한 대답일 수 있는데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여러 장르를 융합한 음악이요. 제가 알앤비 가수로 정의돼 있지만 저는 저 스스로를 팝(Pop) 가수라고 생각하거든요. 알앤비라는 장르를 거부한다기보다 할 수 있는 장르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싶은 마음이에요. “얘는 이런 음악을 하는 애야” 보다는 “이다음엔 뭐가 나올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듣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죠.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고요. 아티스트만의 개성이 부족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쵸. 저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웃음) 제가 생각하는 대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긴 합니다. 사실 다양한 음악을 해도 제 캐릭터와 색깔은 분명하게 있을 걸 알아요.
역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하네요.
한때는 정말 방황을 많이 했었어요. ‘내가 음악을 해도 되는 걸까?’ 부터 시작해서 곡 하나를 내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떡하지, 이번에 이걸 보여줬으니까 다음에는 어떡하지, 하면서 패닉 상태에 많이 빠지곤 했었어요. 요새는 비교적 안정적이에요. 심리적으로요.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성 그리고 음악적 색깔이나 그러 고민에 대한 해답이 다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꽤 됐거든요. 그걸 믿고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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