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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저드(jerd)
Album: Bomm
Released: 2023-05-06
Rating:
Reviewer: 장준영
저드(jerd)가 처음 등장했던 때가 기억난다. 신보가 그리 많지 않았던 어느 1월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처럼 [Too Many Egos](2019)가 발매됐다. 힙합과 알앤비를 뒤섞은 프로덕션에 보컬과 랩의 경계를 영리하게 넘나드는 퍼포먼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전년도에 이목을 끈 제이클레프(Jclef)가 떠오를 정도로 기분 좋은 에너지와 완성도에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아티스트였다.첫 정규 앨범 [A.M.P.](2021)도 마찬가지였다. 숨김없는 이야기는 여전히 생동감 넘쳤고, 깔끔하며 폭넓은 프로덕션과 이전보다 능숙해진 보컬 기술까지 훌륭했다. 정규 앨범 단위의 호흡에서도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저드를 들여다본다. 첫 앨범으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놓은 [Bomm]은 무척 흥미롭다. 지난 두 결과물에서의 장점과 특징을 품었으면서 달라진 지점도 다수 눈에 띈다. 그 단서는 첫 선공개 곡이었던 "Bridal Shower"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희미한 붐뱁 비트로 시작한 곡은 점차 건반과 현악 소스를 비롯한 트랙이 풍성히 쌓여 감흥을 자아낸다. 보컬이 감정을 쏟아낸 직후엔, 전개를 완전히 뒤바꾸어 댄서블한 비트에 샘플 소스를 여럿 등장시킨다. 상이한 사운드임에도 일관된 무드가 이어져 변주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를 물씬 활용한 프로덕션이다. “Bridal Shower”처럼 힙합과 알앤비에 기반을 두면서 여러 장르를 끊임없어 섞고 융화시켰다. 그 결과 전보다 얼터너티브한 곡이 늘어나면서 훨씬 풍부하며 탁월한 앨범이 주조됐다. 신스팝과 펑크(Funk)로 주도하는 "X됐어", 짱유를 등판시켜 세련된 붐뱁 비트에 일렉트로닉 소스로 뒤틀고 변주를 준 "영업 안 합니다"가 대표적이다.
특히 “홍시”가 압권이다. 얼터너티브 록의 접근법이 돋보인다. 디스토션 걸린 기타를 필두로 악기 샘플의 사용, 거칠게 설정한 소리의 질감이 강렬하다. 진득하게 이끄는 전개와 풍부한 사운드가 일관되게 이어지며, 시원시원한 가창과 겹겹이 쌓은 코러스가 더해져 자연스레 몰입감이 높아진다. 더불어 홍시의 특성을 짚어 자신의 상태와 비교하는 씁쓸한 노랫말 덕에 감흥이 배가된다('한 입 베어 물면 나는 꽤 떫지 / 익어가야만 아는 맛일 테니 / 기다리다가 다 얼어붙었지').
연달아 배치된 "Bomm"도 흥미롭다. 헤비한 베이스와 오토튠을 풍부히 활용한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공허한 심리를 드러낸 내용에 맞게 어두운 무드를 적절히 자아내는 샘플 소스에 공간감을 조성하는 타격감 있는 트랩 비트가 빛난다.
[Bomm]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강점은 가사다. 저드는 데뷔 초부터 자신에 대한 고찰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에 능하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에 고민하고, 연애와 일에서 얻은 경험을 곱씹고 되돌아보며, 흔들리는 자신을 붙들고 내일로 나아가려 한다. 이번 역시 흐름의 양상은 비슷하더라도 훨씬 더 어두운 생각과 방황하는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당황하고 방황하는 순간이 앨범 전반에 배치됐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혹은 할 수 있는) 20대의 불안하고 우울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감정처럼 느껴진다. 공감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은 치밀한 표현이다. 비슷한 소재가 종종 반복되더라도 어휘와 문장을 다채롭게 구성하여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Bridal Shower”에선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어감을 살리고, 라임을 맞추며 ‘-소’, ‘-요’, '-죠'를 비롯한 종결 어미를 듬뿍 활용한다. 당황스러워하며 흔들리는 감정이 문법의 변주와 만나 더욱더 그득히 느껴진다. “X됐어”에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는 노랫말에 맞게 욕을 후렴구로 맛깔스럽게 활용했다. 행동과 상황을 자세히 풀어내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낸 “영업 안 합니다”, 덤덤하고 담백하게 내면의 소리를 써 내려간 “Vans”에선 꾸밈이 없기에 오히려 세련되고 독특하게 들린다.
이처럼 말맛을 살리기 위해 신경 쓴 가사가 앨범 내내 가득한 덕에 김현식의 곡을 커버한 "비처럼 음악처럼"도 이질감 없게 들린다. 애절하게 내뱉는 보컬과 함께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이야기가 앨범 전체의 맥락과 어우러지고, 언어가 주는 감흥도 끊기지 않는다.
데뷔 이래로 음악적인 성장과 내면의 성숙은 아티스트에게 양분이 되었고, 결국 수렴되어 [Bomm]이 되었다. 우울감, 한탄, 후회와 다짐으로 뒤섞인 소재는 깊이 있는 가사와 깔끔한 퍼포먼스, 그리고 뛰어난 프로덕션이 하나로 묶이며 걸출한 완성도를 이룬다. 여느 '말없이 왔다가 가는' 앨범 사이로 저드의 봄이 명료히 남는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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