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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오도마(O'Domar)
Album: 선전기술 X
Released: 2023-10-18
Rating:
Reviewer: 남성훈
[선전기술 X]엔 오도마의 첫 앨범 [밭]과 사뭇 다른 결의 음악이 담겼다. 그러나 둘 사이엔 연결점이 있다. [선전기술 X]는 [밭]을 연장해 나간다. '쇼미 목걸이를 걸친 업계의 텐프로'라는 자조 섞인 자아로 한국 힙합 시장을 그려낸 오도마는 3년이 지난 뒤 다시 자신과 주변을 살핀다. 그런데 앨범 안에서 이를 풀어내는 아이디어와 구체화한 과정 및 결과물 모두 범상치 않다.오도마는 마치 [밭]이 [선전기술 X]의 전제였다는 듯, [밭]에서의 모습을 기이하게 확장한다. 미디어를 통해 인지도는 얻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밭] 속 화자 덕분에 타이틀부터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선전기술' 이라는 용어를 뜯어보면 랩과 힙합 자체를 지칭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동시에 이른바 ‘선전기술’의 상당수가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기 때문에 래퍼들의 허상을 고발했던 가사가 그 이면을 채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훨씬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축은 앨범 전체의 프로덕션을 책임진 프로듀서 팀 가짜인간이다. 가짜인간은 다양한 장르 요소,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사운드소스, 독특한 내레이션을 콜라주하고 급진적 변주를 반복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전개가 전혀 불안정하거나 산만하지 않다. 곡마다 핵심이 되는 구간에서 대중적 익숙함이 느껴진 덕분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상업적 노림수와는 거리가 멀다.
메시아적 이미지로 종교적 서사의 도입부 같은 “Doctrine”부터 어쿠스틱하고 청량한 기운의 “기호2”, 박진감 넘치는 타격감으로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몇 곡 등, [선전기술 X]의 프로덕션은 상당히 다채롭다. 다만, 이는 여러 레퍼런스 스타일의 충실한 구현보다는 편곡에 따라오는 공감각적 경험,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끌어내는 장치에 가깝게 느껴진다.
의도적으로 흐름을 끊는 변주와 장면을 전환하는 듯한 스킷(Skit) 연출도 이를 뒷받침한다. 후반부 카와이 켄지나 류이치 사카모토 특유의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편곡의 목적도 선명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앨범 전체를 거치며 가짜인간의 프로덕션은 미디어 경험을 통해 어느새 익숙해진 무언가를 듣고 경험한다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 설계, 장치, 작동을 전부 묶어 또 다른 의미의 ‘선전기술’을 구현한 것이라 받아들여도 억지스럽지 않다.
오도마의 가사는 가짜인간의 프로덕션과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낸다. 앨범 전체를 통해 현대 사회 속 개인의 혼란을 풀어냈다. 총 12분에 달하는 초반 두 곡 “Doctrine”과 “기호2”가 맞물리며 드러나는 주제 의식이 가장 감탄을 자아낸다. 오도마는 대뜸 정치, 이념, 종교를 아우르는 세상의 온갖 이슈를 나열하며 선동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바로 이어서 삶의 소소한 행복과 걱정거리를 이야기한다.
그는 초과잉 정보 사회에서 개인, 특히 청년층이 떠안아야 할 문제는 과연 무엇이냐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허무하게도 이 시대가 주는 답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음에도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약속하는 ‘떠나세요 종말이 없는 땅으로 스페이스X’지만 말이다.
“3H 정책”부터는 본격적으로 그 범위를 래퍼인 자신으로 한정한다. 한국 힙합 시장의 시스템, 구성원의 부조리를 과감한 어조로 폭로하고, 자신의 태도와 예술가로서의 순수성을 방패로 내세운다. 오도마의 강직한 철학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현준의 압도적 퍼포먼스가 귀를 사로잡는 “Hating mainstream is also too mainstream”과 이를 앞뒤로 둘러싼 “광고”, “K.U.J”가 뭉쳐 만드는 구간에 담은 산업 속 대중가수로서의 혼란 역시 생생하다.
오도마의 랩은 언뜻 인상적인 강점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많은 양의 가사를 유려한 플로우와 탄탄한 라이밍으로 심심하지 않게 풀어냈다. 앨범의 마지막 “선전기술”에서 전복적인 메시지를 도발적으로 내뱉고 곧이어 쏟아지는 허망함과 싸우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침전하는 여운을 드리운 연출도 훌륭하다.
그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개인의 양면성을 언급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전기술 X]가 조명한 것은 모든 걸 피할 수 없고, 심지어 자신도 보여줘야만 하는 정보 과잉이 결핍으로 이어지는 현 시대상이 아닐까 싶다.
감상을 마치면 어느 한 래퍼의 모습이 아닌 동시대 공통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목적이 뚜렷하고 잘 짜인 가짜인간의 독창적 프로덕션과 오도마의 과감한 가사로 채워진 [선전기술 X]는 한국 얼터너티브, 레프트필드(Left-Field) 힙합 걸작으로 기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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