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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hino XL
Album: Here to Save You All
Released: 1996-04-09
Rating: +
Reviewer: 양지훈
한국에서는 지누션 3집 참여를 계기로 치노 엑셀(Chino XL)이라는 래퍼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알려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도 지누션의 앨범을 접하면서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지인들 중에도 동일한 경우를 적잖이 발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앨범의 주인공인 지누션을 주눅 들게 만들만큼 극도의 타이트함을 과시하던 치노 엑셀의 랩은 그야말로 충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시의 신선한 충격에도 국내에서 치노 엑셀의 인지도는 지극히 낮은 편이다. 투팍(2Pac)과 디스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투팍의 사진이 등장할 때마다 'Chino XL, fuck you, too!'라는 익살스러운 댓글을 가끔씩 찾아볼 수 있을 뿐, 치노가 소유한 막강한 랩 스킬에 대한 열띤 대화는 드물다. 언어를 막론하고 랩을 한다는 사람에게 있어 일종의 롤 모델(Role Model)이 될법한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그는 언제나 낮은 인지도에 머물러 있다.정확한 발음을 근간으로 하는 딜리버리가 치노 엑셀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자신만의 장점을 갖고 있었던 치노는 데뷔 앨범 [Here to Save You All]에서부터 그러한 강점을 십 분 발휘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주로 빠른 랩을 구사하면서도 항상 정확한 발음을 유지하기에 이따금씩 고(故) 빅 엘(Big L)을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직유와 은유적 묘사를 즐기는 와중에도 마디마다 거미줄처럼 배치한 라임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며, 변화무쌍한 플로우까지 갖췄다. 또한, 고지능자의 모임인 멘사(Mensa)의 멤버답게 사용하는 단어의 폭이 광범위한 래퍼로 정평 나 있으며, 그러한 성향 은 본작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데뷔 앨범은 비 위즈(B Wiz), 컷마스타 커트(KutMasta Kurt) 등 몇몇 측근들만을 프로듀서로 기용해 협소하게 제작됐지만, 앞서 언급했던 치노의 모든 강점이 집약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비트가 깔린 가운데, 치노 엑셀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라임과 플로우를 쏟아낸다. 스피디한 랩과 확실한 완급 조절을 느끼고 싶다면 초반부의 "No Complex"가 제격이다. 치노는 유명 인사들을 언급하며 계속해서 무언가에 비유하곤 하는데, 'Your style's too old to do me like Aaliyah and R. Kelly', 'You'll never eat Chili cuz I'm an arsonist like Left-Eye(TLC의 레프트 아이가 방화를 저질렀던 사실에서 착안한 가사)‘와 같은 재치 있는 구절은 놓치기 아까운 대목이다. 게스트 래퍼의 참여는 앨범 전체를 통틀어 세 곡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웨스트 코스트의 출중한 리릭시스트 래스 캐스(Ras Kass)와 닥터 옥타곤(Dr. Octagon)으로 불리는 쿨 키스(Kool Keith)가 참여한 곡은 각각 중/후반부를 책임진다. 특히, 치노와 래스 캐스가 주거니 받거니 랩을 하며 불꽃을 뿜는 "Riiiot!"은 투팍과 디스를 유발했던 곡으로 유명하다. 푸에르토-리칸과 아프로-아메리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야기한 혼란을 토로하는 "What am I?"는 치노의 자전적인 곡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What am I, I'm confused, can't decide / What am I who am I what am I / Black or white, I can't identify'를 연신 외치는 와중에도 치밀하게 짜인 라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처럼 그의 데뷔 앨범은 어둡고 음산한 비트와 치노의 랩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며, 단 한 번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70여 분의 러닝타임을 메운다.
조악한 레코딩 상태를 거론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비판이 있긴 했지만, [Here to Save You All]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래퍼의 훌륭한 데뷔작이다. 한국의 힙합 리스너 중 대다수가 이 앨범이 안겨주는 임팩트에 심취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데, 사실 앨범의 인지도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15년이 지난 현재, [Here to Save You All]은 미국에서도 저평가된 앨범으로 분류되곤 한다. 힙합 리스너라면 누구나 감탄할만한 랩이 담겼지만, 그에 상응하는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본작은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펀치라인과 타이트한 라임이 담긴 앨범이다. 래퍼를 자청하는 이들 중에서 빠르면서도 정확한 발음, 그리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라임을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Here to Save You All]을 교본으로 삼길 권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교본이 될 것이다.
Track List
01. Here To Save You All
02. Deliver
03. No Complex
04. Partner To Swing
05. It's All Bad
06. Freestyle Rhymes
07. Riiiot! (feat. Ras Kass)
08. Waiting To Exhale (feat. Gravitation)
09. What Am I?
10. Feelin' Evil Again
11. Thousands
12. Kreep
13. Many Different Ways
14. The Shabba-Doo Conspiracy (feat. Kool Keith)
15. Ghetto Vampire
16. Rise
17.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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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완전 내 스타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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