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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Lil Wayne
Album: Tha Carter 4
Released: 2011-08-29
Rating : +
Reviewer: 예동현
좋거나 싫거나 릴 웨인(Lil Wayne)은 이미 현 세대 최고의 랩 슈퍼스타의 위치에 올랐다. 2000년대 후반부의 랩 역사의 절반 이상은 릴 웨인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으며, 발매 첫 주에만 백만 장 이상을 팔아 치운 [Tha Carter 3]를 통해 상업적 성과는 물론 비평적으로도 왕관을 차지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왕자로 대관식을 치른 건 아니다. 최고의 자리엔 늘 질투와 시기가 함께하는 법이라고는 하나, 그만큼 엄청난 사랑과 맹목적인 비난을 동시에 받는 뮤지션이 힙합 역사에 있었나 싶을 정도다.그를 향한 비난은 주로 이러저러한 이유다. 그의 특이한 목소리에 트집을 잡거나, [Tha Carter] 이전까지는 가사를 대필해서 써왔기 때문에 그의 실력에 의심을 제기하거나, 10대에 일찌감치 데뷔해 캐시 머니 레코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릴 웨인의 커리어를 볼 때 그의 가사에 등장하는 거리에서의 허슬(Hustle)이 진실하지 않다거나, 오토튠과 서던 크렁크가 진한 사운드가 너무 상업적이고 천박하다는 등등이다. 반면, 그를 호평하는 이들은 위지(Weezy, 릴 웨인의 애칭)의 랩은 날 것과 같은 역동성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창의성을 가지고 있으며, 멜로디 감각과 송 메이킹 능력이 탁월하고 표현력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혹은 그냥 좋거나, 그냥 싫을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청자도 아마 위의 의견들과 일치하는 점이 한두 군데는 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중요한 건 릴 웨인이 그를 향한 비난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번 최상위의 커리어를 올린 뮤지션들이 자신의 커리어에 어떤 위대함을 더하고자 각별히 관리하는 것에 비해 그는 여전히 특유의 괴벽과 기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서던 클래식으로 꼽히는 [Tha Carter 2]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작업량을 과시하며 자신을 발전시켜왔다. 릴 웨인의 믹스테잎은 트랙의 순서만 바뀐 채 수많은 DJ로부터 쏟아져 나왔고 기대감이 절정에 달하다 못해 팬들이 지쳐갈 무렵 발매된 [Tha Carter 3]로 마침내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록 프로젝트 [The Rebirth]를 발매했고 이 앨범은 평단과 팬들의 뭇매를 맞았지만, 위지는 괘념치 않았다. 잠깐의 감옥 생활 이후 출소와 함께 발매된 [I Am Not a Human Being]에서는 힙합으로 돌아왔지만 역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특히, 두 개의 사이드 프로젝트의 판매량이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릴 웨인의 천하가 잠깐의 일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예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힙합 팬들에게 릴 웨인의 디스코그라피는 이제 [Tha Carter] 시리즈와 그 외의 프로젝트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상대로 열기가 뜨겁다. 이미 두 곡의 탑 텐 싱글과 한 곡의 골드 싱글을 내놓고 시작한 이번 앨범은 발매 일주일 전에 유출되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음에도 첫 주 예상 판매량이 96만 장에 육박한다고 하니 과연 릴 웨인답다는 감탄이 앞선다. 하지만 방법은 좀 바뀌었는데, 지난 앨범에서 달달하고 중독적인 싱글 “Lollipop”을 전면에 내세우고 “A Milli”와 “Got Money”를 양 옆에 배치한 채 위풍당당하게 차트에 무혈 입성했던 양상과는 좀 다르다. 우선 전작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A Milli”의 후속 격인 “6 Foot 7 Foot”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다음 하드코어 트랙 “John”을 통해 몇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희미해졌던 그의 입지를 다시금 단단히 다진다. 이제 탁월한 팝적 감각의 멜로디컬한 랩 싱글이 나와야 할 타이밍에 나온 것은 어쿠스틱 발라드 “How To Love”이다. 하지만 이게 의외로 대박을 쳤는데 차트 5위에 플래티넘 싱글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거둬버린 것이다. 거기에 제이지(Jay-Z)를 겨냥한 디스(Diss)가 담겨 있는 “It’s Good”으로 또 다른 화제거리를 제공했다.
앨범 발매 이후에는 드레이크(Drake)와 함께한 “She Will”이 발매와 동시에 차트 3위로 데뷔하는 진기록을 연출한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내세웠지만, 각 싱글의 성격은 모두 다르다. 클럽용 업 템포 트랙들을 중심으로 했던 전작의 차트 퍼포먼스와는 달리 이번에는 차분하거나 무거운 분위기에 알앤비를 대폭 차용한 트랙들이 앨범의 전면에 있다. 이 때문에 릴 웨인의 파괴적인 랩과 기이하고도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기대했던 팬들은 이 앨범이 전작보다 심심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앨범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세련된 메인스트림 힙합 비트가 주로 채워졌던 [Tha Carter 3]와 좀 더 서던 랩의 거칠고 진득한 느낌의 [Tha Carter 2]의 중간 정도의 포지션을 취한다. 전체적으로 다운 템포 트랙에 비해 업 템포 트랙의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때문에 이 앨범은 릴 웨인의 지난 앨범들과 비교해서 가장 차분한 느낌이다. 장중하게 시작해 서서히 밟아 올라가는 “Blunt Blowin”을 시작으로 미니멀하고 스피디한 “Megaman”을 지나 릴 웨인식 라임 융단폭격트랙 “6 Foot 7 Foot”까지 앨범은 가속페달을 밟는다.
한 템포 쉬어가다 못해 고요한 느낌마저 드는 “Nightmare Of The Bottom”의 조곤조곤하게 들리는 래핑을 차근차근 쫓아가다 보면 곡 전체에 도배된 재치있는 표현에 감탄하게 될 것이며, 이어지는 앨범의 백미인 “She Will”과 마주하게 된다. 최근 영 머니(Young Money)의 공간감 넘치는 비트에 이어지는 웨인의 대단한 가사는 가히 곡 전체가 펀치 라인으로 점철된 수준이다. 웨인의 재치는 주로 이런 식이다. 흔한 라인을 먼저 읊조리고(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like a hula hoop) 그 가사를 살짝 뒤틀어(Karma is a bitch? Well just make sure that bitch is beautiful) 표현하면서 전체적인 가사의 구성에 반전의 묘미를 형성하는 방법, 혹은 어떤 오브제의 특징을 빌어와 자신의 상황에 절묘하게 대입시키는 방법(I’m Ray Charles To The Bullshit)이다. 올해 나왔던 메인스트림 랩 싱글 가운데 이만큼 훌륭한 곡은 많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곡은 거의 없었다. 이런 다채로운 표현들은 앨범 여기저기에 널려 있으며, 이 때문에 웨인의 랩에 대한 세부적인 감상을 건너뛰고 비트만으로 앨범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이 앨범의 진가를 알 수 없다. 릴 웨인의 이번 앨범은 전작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나 훨씬 성숙하고 섬세하다.
“John”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초반부와는 반대로 점차 다운 템포로 침잠한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앨범의 분위기가 초•중반 부의 상승과 중•후반 부의 하강으로 구성되면서 업 템포와 다운 템포가 적절히 분배되었던 전작들에 비해 약간 활기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전작에서 “Lollipop”이 위치했던 바로 그 자리에 배치된 “How To Love”은 의미심장하다. 앨범 내내 고함지르기도 하고, 속사포 같은 랩을 쏘아붙이거나 노래하듯 흐느끼던 릴 웨인의 기이한 목소리는 이 곡에 이르러 순정파 로맨티스트로 분한다. 그는 화성인(Martian)으로 규정지었던 자신의 캐릭터를 과시하지만, 전혀 그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칭 ‘살아 있는 최고의 래퍼(Best Rapper Alive)’의 기행에 가까운 어쿠스틱 발라드는 올해 메인스트림에 등장했던 컨템포러리 알앤비송 가운데 가장 탁월한 수준이며, 보컬리스트로 보기 어려운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호소력이 있다.
여러 가지 이슈가 될만한 트랙이나 히트 싱글이 많아서 잘 부각되지는 않지만,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 가운데 하나는 “President Carter”다. 위지는 거의 모든 곡에서 수감생활을 통해 약간은 어두워진 그의 정신상태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심어놓았는데 이 곡에서 그런 면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의 성공에는 그늘이 있다. 릴 웨인은 뻔뻔한 척 능청을 떨며 애써 무시하지만, 그를 향한 수많은 시선, 시기와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무관심한 듯 냉철하게 세상을 통찰한다. 디럭스 에디션(국내 정식 라이센스 버전에도 정식 수록)에 수록된 “Mirror”도 이와 비슷하다.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참여한 이 트랙은 브루노 특유의 호소력 짙은 고음의 목소리와 넓은 공간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비트가 마치 푸지스(Fugees)의 클래식 트랙 “Ready Or Not”을 연상케 한다. 그 위를 차분하게 교차하며 읊조리는 릴 웨인의 자기 고백은 그의 성공과 자존심 뒤편에 있던 외계인 엠씨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젊은 히트메이커와 결합하며 뻔한 팝 트랙을 만드는 대신, 자아성찰을 이뤄내고 그 무거운 분위기를 브루노의 팝적 감각에 기대어 편하게 풀어낸 웨인의 균형감각은 인상적이다.
앨범은 구성상 몇가지 약점을 드러내지만, 눈여겨볼만한 위지의 또다른, 혹은 새로운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위지의 인간적으로 성숙한 내면과 수감 이후에 생겨난 불안감과 초조함, 몇가지의 새로운 전략적 방향 등은 그의 이전 커리어에 비교해볼 때 충분히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그 가운데 “Intro”, “Interlude”, "Outro”는 하나의 대곡을 세 파트로 분리하여 배치했다는 점이 놀랍다. 대단한 게스트 진용을 피처링 아티스트가 아닌 그야말로 손님의 위치에 두면서 [Tha Carter] 시리즈가 현 세대 랩 게임의 가장 대단한 프랜차이즈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역시 중반부에서 앨범의 허리를 튼튼하게 받치지 못하는 어중간한 트랙들이다. “How To Hate”는 티-웨인(T-Wayne) 프로젝트의 취소가 다행스러울 정도로 별다른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고 그저 자리만 차지할 뿐이고, 중후반부에 집중된 미드템포와 레이드-백(Laid-Back) 트랙들은 분출되려던 에너지를 급격하게 제거해버린다. 각개의 곡들이 수준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John” 이후에 앨범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하나쯤은 파워풀한 곡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럼 마무리하기 전에 [Tha Carter 3]가 발매된 2008 년부터 그가 거둔 성과들을 잠깐만 돌이켜보자. 2008년부터 릴 웨인은 그야말로 수백 곡을 작업했다. 앨범 석장을 비롯해 믹스테잎, 피처링 참여까지 정말 엄청난 활동을 보였는데 그 가운데 ‘Feat. Lil Wayne’이 찍힌 25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탑 40에 이름을 올렸다. 그 중 7곡이 탑 텐이었으며 넘버원 싱글이 한 곡이다. 본인의 디스코그라피로 넘어가 보자. 릴 웨인은 2008년부터 [Tha Carter 4]까지 네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중 11곡이 탑 40에 랭크되었으며, 9곡이 탑 텐, 1곡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그 중 다섯 장의 멀티 플래티넘 레코드과 네 장의 플래티넘 레코드, 한 장의 골드 레코드를 차지했는데 넘버원 싱글이었던 “Lollipop”은 무려 5백만 유닛 이상이 팔려나갔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다. 하물며 릴 웨인은 “She Will”에서 표현했던 대로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아직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 괴짜 왕자가 과연 어디까지 자신의 집권을 이어갈 수 있을까?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불태웠던 성공 때문에 그의 이른 몰락을 점쳤던 사람들은 좀 더 오래 지켜봐야 할 것임은 확실하다. 왜 신작에 대한 소개가 다 끝난 뒤에 그의 영광을 이야기했느냐고? 릴 웨인의 업적은 역사책 앞쪽의 과거도 아니고 이 앨범이 그 마침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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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놈..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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